배경설명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대만 문제로 러시아, 중국과 날을 세우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병력을 늘리며 군사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고, 중국은 대만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등 서방 국가의 동진(東進)을 중단하라며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을 높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은 러시아가 2022년 초 병력 17만5000명을 동원해 우크라이나 침공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의 도발에 강력히 반발하며, 추가 행동을 하면 경제적 제재를 포함한 초강력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도 미국과 손잡으려는 대만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 왕이(王毅)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2021년 12월 20일(이하 현지시각) “대만이 미국에 의존해 독립을 추진하려 하고, 미국은 대만을 이용해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며 “미국의 잘못된 언행은 양국 국민의 이익을 훼손하고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충격을 준다”고 비난했다. 중국은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군용기를 보내는 방식으로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와 중국이 동시에 우크라이나와 대만을 공격할 경우, 미국이 안보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2021년 12월 21일 모스크바의 국가 국방통제센터에서 열린 국방부 확대 간부회의에 참석한 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함께 군용품 전시회장을 방문했다.  사진 AP연합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2021년 12월 21일 모스크바의 국가 국방통제센터에서 열린 국방부 확대 간부회의에 참석한 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함께 군용품 전시회장을 방문했다.  사진 AP연합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현 컬럼비아대 지속가능개발센터 디렉터, 현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 네트워크 대표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현 컬럼비아대 지속가능개발센터 디렉터, 현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 네트워크 대표

미국, 러시아, 중국이 우크라이나와 대만 문제를 두고 맞붙고 있다. 두 사태는 해결 가능한 문제지만 먼저 각국의 이해 관계 존중이 필수적이다.

먼저 우크라이나를 생각해보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격으로부터 주권과 안전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러시아의 안보를 훼손할 권리는 없다.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와 미국 두 국가의 지나친 욕심의 결과다. 러시아의 욕심은 ①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때 도를 넘어섰다. 러시아는 당시 우크라이나의 산업 중심지인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점령했고, 지금까지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에너지, 산업 인력, 시장 등에 의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연합(EU) 경제와 더 긴밀히 협력하려는 합리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EU와 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이 나토 가입의 디딤돌이 될까 봐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욕심도 과하다. 2008년 조지 W. 부시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나토 가입을 제안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국경선에 동맹군을 주둔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이 도발적인 제안은 미국의 군사적 동맹국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됐다. 하지만 나토는 당시 러시아가 가입국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을 언급하며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 합병에 나선 목적 중 하나도 나토가 러시아 흑해 해군 기지와 함대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는 여전히 의제로 남아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두고 계속해서 반대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정부와 나토 관계자들은 ‘나토 가입은 우크라이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카자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번복하는 것은 1938년 영국의 ② 유화 정책과 다를 바 없다’며 러시아 반대편에 섰다.

‘우크라이나는 군사동맹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미국 정치인은 미국의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 미국은 1823년 ③ 먼로주의(Monroe Doctrine)를 통해 ‘중남미에 유럽의 간섭을 허용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1959년 쿠바에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킨 피델 카스트로가 소련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미국과 척을 지자 미국은 격렬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라틴아메리카와 전 세계에서 미국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쿠바가 소련에 넘겨졌다”며 중앙정보국(CIA)에 침공 계획을 마련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존 F. 케네디 정부 때 피그스만 침공, ④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도 이어졌다.

이처럼 모든 국가는 단순하게 군사동맹을 선택할 수 없다. 한 국가의 군사동맹이 종종 이웃 국가의 안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와 핀란드는 나토에 가입하지 않으면서 안정과 번영을 누렸다. 우크라이나는 당시 오스트리아와 핀란드처럼 현 사태에 신중해야 한다.

대만 사태도 비슷하다. 대만은 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권리를 지닌다. 대만을 향한 중국의 일방적인 군사 행동은 전 세계 안보와 경제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에 경고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대만의 분리독립을 이끄는 것과 관계 있는 건 아니다.

최근 일부 대만 정치인은 독립 선언을 고려하는 모습을 보였고, 일부 미국 정치인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비판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16년 12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완전히 이해하지만, 중국과 교류를 끊는다고 한다면 우리가 왜 그 정책에 구속돼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12월 9~10일 미국 주도로 열린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대만을 공식 초청했다. 앞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유엔 회원국에 “대만의 유엔 체제 참여를 지지해달라”고 요청한 데 이은 것이다. 이런 미국의 움직임은 대만과 중국간 긴장감을 높인다.

다시 강조하지만 ‘대만이 독립을 선언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안보 분석가들은 역사를 돌이켜봐야 한다. 미국은 분리독립을 두고 남북전쟁을 겪었고, 분리독립주의자들은 패배한 바 있다. 만약 중국이 캘리포니아주 분리독립 운동을 지지한다면, 미국도 중국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대만의 군사적 긴장감은 옌스 스톨텐베르그(Jens Stoltenberg) 나토 사무총장이 “나토가 중국에 대응할 것”이라는 뜻을 내비친 뒤 더욱 심화했다. 소련의 위협으로부터 서유럽을 보호하기 위해 시작된 동맹(나토)이 ‘아시아 내 미국 군사동맹’으로 재탄생하면 안 된다.

우크라이나와 대만 사태는 평화롭게 그리고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 있다. 나토는 우크라이나 가입 문제를 더는 의제로 다루면 안 된다. 그리고 러시아는 침략을 멈춰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원칙을 준수하면서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무역 정책을 자유롭게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미국은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대만의 분리독립을 반대할 것인지, 나토를 이용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건 아닌지 말이다. 중국은 대만을 향한 일방적 군사 행동을 멈추고, 많은 대만인이 위협으로 느끼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시스템을 재고해야 한다.

모든 이해 당사국이 상대의 안보에 대한 합리적 이해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한, 세계 평화는 없다. 강대국들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최고의 방안은 우크라이나와 대만을 향한 상호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긴장 완화 조치를 택하는 것이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러시아가 2014년 3월 무력을 동원해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병합한 것을 말한다. 당시 우크라이나의 자치 공화국이었던 크림반도는 러시아와 합병을 결정하는 주민투표에서 90% 이상의 찬성이 나오자 러시아와 합병을 결정했고,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림반도의 러시아 연방 병합안에 최종 서명하면서 합병 절차가 완료됐다. 국제적 비난이 일었고, 유럽연합(EU)과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상대국의 적극적인 정책에 대해 양보·타협을 위주로 하는 무마 정책. 영국이 1939년 9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독일의 히틀러에게 취한 일련의 양보 조치가 전형적인 유화 정책으로 꼽힌다. 당시 영국은 유럽의 평화 유지를 위해서 유화 정책을 행한다고 밝혔으나, 독일과 소련의 개전으로 양국이 지칠 것을 기대했다는 시각이 나온다.

제임스 먼로(James Monroe·1758~1831)가 미국 대통령 때인 1823년 밝힌 외교 방침. △ 유럽 국가는 남북 아메리카에 새롭게 식민지를 얻어서는 안 된다 △ 유럽 국가는 서반구의 독립국에 유럽 구체제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 미국은 유럽의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기초한다. 먼로주의는 19세기 말부터 미국만이 남북 아메리카 질서 유지를 위해 간섭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소련이 중거리 핵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고 하면서 미국과 소련이 대치하고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사건을 말한다. 1962년 10월 22일부터 11월 2일까지 12일간 벌어진 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소련 간의 가장 큰 갈등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