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압력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2021년 11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6.8% 상승했다.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은 명백하다. 미 정부는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 3월부터 3조달러(약 3611조원) 규모의 신규 연방준비기금(현금과 동일한)을 마련해 가계와 기업에 지원금을 풀었고, 이후 재무부는 2조달러(약 2407조원)를 추가 발행해 지원금으로 썼다. 이에 따라 바이든 정부의 부양책 총 규모는 미 국내총생산(GDP)의 25%에 달한다. 물론 많은 지원금이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과 기업을 돕기 위해 쓰였지만, 상당 부분이 필요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렸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물가 상승을 원한다면 ①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면 된다고 말했다. 그것이 기본적으로 미 정부가 해온 일이다. 그러나 현 물가 상승은 궁극적으로 통화적 인플레이션이 아닌, 재정적 인플레이션이다. 이는 재정정책이 정치적 요인에 영향을 받으면서 과도한 재정 지출이 계속되면서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을 말한다.
(인플레이션 요인으로 알려진) ‘공급망 충격’ ‘병목 현상’ ‘수요 변화’ ‘기업의 욕심’ 등은 전반적인 물가 수준과는 별 관련이 없다. 소비가 줄어들면 항구는 막히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TV를 구매하려는 수요가 늘고 외식은 하지 않는다면, TV 가격은 오르고 외식 가격은 내릴 것이다. 반면, 물가와 임금이 함께 상승하면 인플레이션은 총공급과 총수요의 균형에서 발생한다. 시장의 상품과 서비스 생산 능력 또한 예상보다 낮아진다. 그런데 현재 경제의 상품과 서비스 생산능력이 예상보다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노동 공급 부족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인플레이션의) 핵심 요인이다. 사람은 돈이 많으면 일을 적게 한다. 많은 이가 구직에 나서지 않기 때문에 기업은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급속한 인플레이션에 매우 놀랐다. 연준은 꽤 오랜 시간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 문제에서 손을 뗐다. 이는 연준의 큰 실수였다. 연준의 중요한 역할은 시장 공급량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수요를 맞추는 것이다.
과거에도 비슷한 재정적 지원이 있었지만, 이번 부양책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긴 이유는 뭘까. 첫째, 부양책 규모가 과거보다 훨씬 컸다. ② 로런스 서머스 전 미 재무부 장관은 2021년 3월 바이든 정부의 대규모 부양책과 관련해 정확히 인플레이션을 예측했다. 둘째, 정책 입안자들이 코로나19 불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GDP와 고용이 줄어든 건 수요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팬데믹 기간 전 세계 사람은 경제적 지원 혜택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외식이나 여행을 주저하고 있다. 경제에 팬데믹은 눈보라와 같다. 눈보라가 칠 때 더 많은 돈을 풀수록 쌓인 눈더미에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일단 눈보라가 지나가고 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셋째, 과거 위기 때와 달리 정부는 대출이나 소비, 소득 확산 효과를 기다리기보다 기업과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직접적인 지원 정책을 펼쳤다.
인플레이션의 지속 여부는 앞으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에 달려 있다. 특히 재정정책이 중요하다. 이미 막대하게 불어난 부채를 떠안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국민은 추가적인 재정 적자를 받아들일까? 당연히 위험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예를 들어 GDP 대비 부채 비율이 100%를 넘는 상황에서 연준이 금리를 5%포인트 인상하면 부채에 대한 이자 비용은 약 1조달러(GDP의 5%) 증가할 것이다. 그 이자 비용을 제때 갚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은 더 심각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럽중앙은행(ECB)이 금리를 올리면 이탈리아의 부채가 늘어나 새로운 위기가 닥칠 수 있고, ECB의 대규모 정부 채권 포트폴리오도 위태로워질 것이다.
만약 재정적 인플레이션이 폭발하면 이를 통제하기란 매우 어렵다. 통화정책 입안자들이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고 하면 재정적 역풍뿐 아니라 정치적 위기를 맞을 것이다. 통화정책만으로는 재정적 인플레이션을 조절할 수 없다. 특히 장기적 경제 성장을 저해하고 세입 규모를 줄이는 한계세율을 높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유일한 해결책은 정부 재정 문제를 제대로 정리하는 것이다. 가격 인상 없이 수요를 충족시키고, 상향 과세표준 없이도 간접적으로 세입을 늘릴 수 있는 공급 지향 정책이 필요하다. 각종 규제, 노동법으로 인한 공급 제한, 사회 구조로 인한 근로 의욕 감소 등을 고려했을 때 보다 더 확실한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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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헬리콥터 머니’란 돈의 유통량을 늘리기 위해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해 가계와 정부 등 시중에 직접 공급하는 정책이다. 1969년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프리드먼은 경기 침체를 해결하기 위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중앙은행이 현금을 직접 공급하는 게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부채 증가 없이 정부 지출을 늘리는 효과가 있어 금융 시장을 통해야 하는 양적 완화 등 전통적인 통화정책보다 효과적인 경기 부양 정책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가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남용하거나 과한 현금 공급으로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다는 위험이 지적된다.
②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Lawrence Summers) 하버드대 교수는 긴축재정을 지지하는 ‘매파’로 분류된다. 그는 바이든 정부의 부양책과 관련해 인플레이션 위험을 경고해 왔다. 서머스 교수는 지난해 3월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1조9000억달러 규모 부양안과 관련해 “부양책이 필요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쓴 돈에 육박하는 막대한 유동성이 가져올 인플레이션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라고 했다. 같은 해 5월에는 한 콘퍼런스에서 “(미 통화·재정정책 담당자들은) 계속된 극도의 저금리가 유발하는 금융 안정성, 전통적인 인플레이션 위험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정책 수정 필요성은 매우 높고, 이 같은 조정은 갑작스레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연준과 백악관이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한 가운데 그의 예측이 적중한 것. 서머스 전 장관은 최근에도 미국 경제 침체 가능성을 경고했다. 지난해 12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진행한 한 행사에서 그는 “향후 24개월 동안 미국 경기가 후퇴할 가능성은 30~ 40%”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