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아메리칸재단 연구원인 더글러스 맥그레이는 1990년대 포켓몬과 헬로키티가 수많은 나라에 수출된 사례를 들면서 국민총매력지수가 높은 나라로 일본을 꼽았다. 사진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뉴아메리칸재단 연구원인 더글러스 맥그레이는 1990년대 포켓몬과 헬로키티가 수많은 나라에 수출된 사례를 들면서 국민총매력지수가 높은 나라로 일본을 꼽았다. 사진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능력이나 성실함, 운만 있다면 우리는 성공할 수 있을까.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는 ‘끌림’, 즉 매력이 결정적인 조건이라고 했다. 매력은 새로운 자본으로 취급된다. 2010년 캐서린 하킴 런던정치경제대 사회학과 교수는 ‘매력 자본(Erotic Capital)’이란 개념을 발표했다. 그는 매력 자본을 경제 자본, 문화 자본, 사회 자본에 이어 현대 사회를 규정하는 제4의 자산으로 규정했다. 아름다운 외모, 건강하고 섹시한 몸, 유려한 사교술과 유머, 패션, 이성을 다루는 기술 등 사람을 매력적이게 만드는 자원이 매력 자본이 된다.

매력은 국가 차원으로 측정되기도 한다. ‘조용한 권력’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국민총생산(GNP)과 비슷한 용어가 등장했다. ‘국민총매력지수’라고 불리는 GNC(Gross National Cool)가 그것이다. 이 용어는 2002년 미국 외교잡지 ‘포린폴리시’에서 뉴아메리칸재단 연구원인 더글러스 맥그레이가 처음 사용했다. 한 나라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계량화한 것이다. 정량적으로 측정한 결과는 보여주지 못했지만 21세기에는 한 나라의 국력이 경제력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한 나라의 매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새로운 생각거리를 던졌다. 맥그레이는 한 나라의 매력은 국민 생활양식, 가치관, 미적 감각, 철학, 이미지 등 문화적 가치를 뜻한다고 주장했다. 이때 맥그레이는 1990년대 포켓몬과 헬로키티가 수많은 나라에 수출된 사례를 들면서 국민총매력지수가 높은 나라로 일본을 치켜세웠다.


본격적인 ‘쿨 재팬’의 등장

일본 대중문화 콘텐츠를 높게 평가한 맥그레이의 기사는 당연히 일본 정부의 관심을 끌었다. 포린폴리시 독자층을 생각하면 일본 관료는 그 기사를 읽고 무척 고무됐을 것이다.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은 자국 콘텐츠의 수출과 브랜드 파워 구축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쿨(Cool·멋진, 매력적인)’이라는 단어는 일본 정부와 관료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1997년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가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멋진 영국)’를 주창하면서 소프트파워를 강화해 국가 이미지를 높였다. 성공적인 국가 브랜딩이었고 많은 나라가 부러워했다.

일본도 이를 따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냥 ‘쿨 재팬(Cool Japan)’을 내세우면 영국의 브랜딩을 베꼈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음도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때맞춰 일본을 모범사례로 칭송하는 GNC 개념이 등장했다. 이때의 쿨은 매력의 의미였다. GNC가 등장한 2002년부터 일본은 쿨 재팬을 간헐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일본이 쓰는 쿨은 영국의 쿨과는 다른 의미다’라고 주장하면서.

2010년부터 일본은 공식적으로 쿨 재팬을 내세웠다. 2010년 6월, 일본은 ‘쿨 재팬실’을 경제산업성 산하에 설치하는 것을 발판삼아 쿨 재팬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쿨 재팬의 가장 화려했던 순간은 2016년이었다. 2016년 8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폐막식에 ‘아베 마리오’가 등장한 순간이다. 차기 도쿄올림픽을 알리는 퍼포먼스로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일본 게임 캐릭터 슈퍼마리오 차림으로 등장한 것이다. 함께 공개됐던 도쿄올림픽 홍보 동영상에는 슈퍼마리오는 물론 도라에몽, 헬로키티, 팩맨 등 일본의 대표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아베 마리오는 일본이 정부 차원으로 힘을 쏟은 쿨 재팬 전략을 상징하는 이미지였다. 다만 이게 마지막 불꽃이었다.


2016년 8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폐막식에 ‘아베 마리오’가 등장했을 때는 쿨 재팬이 가장 화려했던 순간이다. 사진 올림픽 공식 유튜브, 일본 정부
2016년 8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폐막식에 ‘아베 마리오’가 등장했을 때는 쿨 재팬이 가장 화려했던 순간이다. 사진 올림픽 공식 유튜브, 일본 정부

‘쿨 재팬’의 한계

국가 브랜딩도 경제적 성과를 내야 한다. 문제는 경제적 성과가 브랜딩에 의한 결과로 나타나야지, 목표로만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은 2000년대에 자국 시장 축소와 경제성장 둔화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으로 쿨 재팬을 도입했다. 대중문화 콘텐츠를 중심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자는 의도였다.

쿨 재팬은 정부 주도 정책 슬로건이었고, 이게 쿨 재팬의 본질이다. 정부 주도 정책이니 쿨 재팬을 관장하는 조직도 정부 기관이었다. 쿨 재팬 기구 운영진이 대부분 정부 부처에서 낙하산으로 온 공무원인 만큼 전문성 부족으로 인한 실패는 예견됐다는 평가가 많다. 일본 대중문화 콘텐츠에 열광하는 사람은 세계 곳곳에 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가 직접 나서서 쿨 재팬 전략을 추진하게 된 것에는 착각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일본은 K팝 등 한국 문화(韓流)가 정부의 주도 혹은 지원으로 성공했다고 착각했다. 지금까지도 일본에는 방탄소년단(BTS)의 성공이 한국 정부 작품이라고 말하는 TV 프로그램 출연자가 있다.

일본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점하고 있던 소프트파워 시장을 한국이 잠식한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위기 원인을 엉뚱하게 진단했던 셈이다. 일본은 위기가 한국 정부 때문에 생겼다고 오해하고 자신도 정부 주도의 문화 사업을 펼치겠다고 결심했다. 일본은 쿨 재팬실을 만든 뒤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쿨 재팬 전략은 브랜드 전략이라기보다는 일본의 국가 정책이 됐다.

이후 문제는 점점 커졌다. 2013년 11월에는 쿨 재팬 전략을 더 강력히 추진한다며 정부 주도로 ‘쿨 재팬 기구’를 발족시킨 것이다. 이는 기업의 해외시장 개척을 지원하는 민관 합동 펀드였다. 당시 아베 총리는 쿨 재팬을 아베노믹스의 핵심으로 여겨서 쿨 재팬 전략 담당상이라는 특임 대신까지 새롭게 만들었다. 일본 정부와 민간기업이 출자한 펀드는 이제 거의 1조원에 가깝다고 한다. 하지만 리우데자네이루의 화려한 장면이 지나간 2016년 후반부터 쿨 재팬은 저항에 부딪혔다. 엄밀히 말하면 쿨 재팬 기구를 둘러싼 의구심이 커졌다. 콘텐츠 중심의 문화 산업을 대상으로 시작됐지만, 정부 주도 기구가 생기고 돈이 모이니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문화 콘텐츠만이 아니라 ‘일본적인 것’이라고 우기면 모든 것이 쿨 재팬 범주 안으로 들어왔다. 콘텐츠, 의식주, 서비스는 물론 첨단기술, 레저, 지역특산품, 전통상품, 교육, 관광, 헬스 케어 등이 쿨 재팬 대상이 됐다. 이로 인해 쿨 재팬은 문화 콘텐츠라는 실체보다는 추상적인 개념어가 돼버렸다.

쿨 재팬 기구는 투자에서도 실패했다고 평가받는다. 일본 정부는 쿨 재팬과 관련해 ‘브랜드 전략을 통해 경제적 성과를 가져온다는 의도가 있다’라고 하지만 투입 예산만 확대될 뿐 성과는 크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의도 또한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쿨 재팬의 실패에 대해 “관(官)이 주도하는 쿨 재팬 전략은 전혀 쿨하지 않다”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쿨 재팬은 일본 국민의 내셔널리즘(민족주의)만을 고양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