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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 프랑스 경제학자 장 바티스트 세이가 주창한 ‘세이의 법칙’은 공급을 중시하는 고전학파의 견해를 보여주는 대표적 이론이다. 이 이론이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가 공급 능력이 수요보다 적은 시대였기 때문이다. 고전학파 경제학이 유행하던 18세기 말에서 19세기 말까지 유럽 평민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생산 능력이 사회 내 수요를 감당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던 탓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선진국에서는 공급 능력이 수요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를 알아채고 유효수요 부족 문제를 경제침체 원인으로 제시한 사람이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다. 지금은 기술 발전과 더불어 많은 나라가 총수요보다 큰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대부분 선진국은 수요 확대를 경제 정책 목표로 둔다. 민간 소비를 확대하기 위해 보조금을 주고 기업 투자 확대를 위해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경기가 활성화하고 일자리가 늘어야 소득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고전학파의 경제이론이 적용되는 지역도 있다. 일부 개발도상국과 빈곤국들이다. 이런 국가들은 생산 능력이 부족해 국민이 영양 부족과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필요한 물건을 수입할 돈이 없어 해외원조에 의존한다. 필수소비나 생산설비 건설도 외부 도움이 있어야 개선이 가능하다.

북한도 생산 능력이 수요보다 적은 국가다. 생산 부족 국가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식량 부족이다. 북한은 2021년 유엔에 제출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을 위한 ‘자발적 국가 검토(VNR)’ 보고서에서 식량 생산이 최근 10년 이내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해 북한의 곡물 부족 수요가 110만t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은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계획대로 달성하지 못한 원인으로 국경 봉쇄와 경제 제재, 자연재해와 감염병 전파 사태를 지적했다. 2021년 북한은 김정은 취임 후 두 번째 5개년 계획을 통해 대규모 건설 계획을 제시했다. 2021~2025년 평양에 매년 1만 가구씩 주택 총 5만 가구를 건설한다는 게 골자다. 가장 먼저 착공한 송신지구와 송화지구에는 이미 80층짜리 아파트들이 들어섰다고 한다. 문제는 주택건설 사업이 소비확대 정책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부족한 자본과 자원을 절약해 생산을 확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경제 정책이 엉뚱한 방향으로 설정돼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북한은 올해 들어 한 달도 지나기 전 이미 여섯 차례, 도합 10발 미사일 발사를 감행했다. 미사일 한 발당 발사 비용은 100만~150만달러(약 12억~18억원)로 추산된다. 국방도 경제 측면에서는 소비재다. 정부가 나서서 매우 비싼 소비를 한 셈이다.

국가는 부족한 자본을 성장 효과가 가장 높은 산업에 투자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은 부족한 자본을 생산 부문 대신 소비 부문에 집중 사용하고 있다. 이런 정책을 지속하면 경제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은 아직 공급이 수요보다 적은 ‘결핍 경제’다. 세이의 법칙이 적용되는 고전학파적 이론을 적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케인스주의적 수요 확대 정책을 쓰고 있다.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을 외부 탓으로만 돌리기 어려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