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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서울대 산업공학,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 ‘Quantitative Finance’ 편집장
김우창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서울대 산업공학,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 ‘Quantitative Finance’ 편집장

연말연시엔 모든 조직이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의 계획을 세우는 법이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2022년 1월 중순, 카이스트에서도 모든 학과의 학과장들과 보직교수들이 모여 2021년의 학과별 성취를 공유하고, 2022년의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를 가진 바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현재와 미래가 가장 압축적으로 논의되었을 이 자리에서 가장 자주 언급된 키워드는 다름 아닌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였다. 1992년 닐 스테픈슨의 소설 ‘스노우 크래쉬’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인 메타버스는 디지털로 구현된 가상공간에서 현실의 제반 활동, 즉 경제·사회·문화·정치 등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메타버스개념 자체는 상당히 오래된 것이며, 그 요소 기술을 뜯어보면 영역별로 이미 오랜 기간 상용 서비스가 제공되었을 정도로 새로운 것이 많지 않다. 현재 메타버스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로블록스, 포트나이트, 마인크래프트 등의 게임 역시 메타버스로서의 가능성 때문에 처음 주목을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게임으로서의 상품성을 먼저 인정받고, 2021년 전 세계적으로 시작된 메타버스 열풍에 힘입어 추가적으로 큰 관심을 받게 된 사례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의 메타버스를 상술이며 거품이라 비판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 메타버스는 이미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온라인 게임이나 소셜미디어(SNS), 증강현실(AR) 등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전 세계 대부분의 인구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활동의 중심축을 옮겼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불편함을 느꼈기에, 현재보다는 진보된 비대면 활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적 상황에서, 상업적인 성취를 노리고 이미 오랜 기간 존재하던 개념과 서비스를 메타버스로 새롭게 브랜딩하여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필자도 공감하는 편이다. 무엇보다도 기술적으로만 보면 2020년까지 사회적으로 아무런 관심을 받지 않던 메타버스가 2021년 들어 갑자기 세상을 지배할 기술로 자리 잡을 만한 큰 기술적 진보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초연결을 위한 통신 환경이나 가상현실(VR) 기기, 인공지능(AI) 영역에서의 성취가 눈부시지만, 2020년 불가능했던 메타버스가 2021년 가능해질 정도의 혁신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메타버스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는 암호화폐의 폭발적인 성장 흐름을 타고, 정부의 규제를 피해 자신만의 경제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게임 회사들의 상업적 욕망과 맞물려 여러 구설수를 일으킨 바 있다. 게임의 사이버머니를 NFT로 구현하고, 이를 메타버스로 포장하여 해당 암호화폐 가격을 가파르게 올라가게 하거나 출시 기업의 주가를 올리려는 시도가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이는 메타버스의 미래를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의 수를 늘리는 데 일조했다.

국내로 한정하면, 우리의 메타버스 열풍은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정부가 주도한 면이 없지 않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상당한 규모의 정부 예산이 메타버스 항목으로 책정됐다. 이는 공공기관이나 기업들이 메타버스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그것이 주는 실질적인 효익과는 관계 없이 다양한 메타버스 사업을 수행하는 데 주요한 동력으로 작동한 바 있다. 

대면 활동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하면 적은 예산으로 몸 고생 없이 다양한 행사를 치를 수 있으며, 언론에서도 그러한 메타버스 행사를 기사화해주는 분위기까지 있으니 하루가 멀다하고 메타버스 행사가 열리는 이유가 되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메타버스 행사는 네이버가 출시한 제페토 플랫폼을 활용하여 개별 참가자들이 온라인상에서 소통하는 수준인데, 따지고 보면 아바타가 움직인다는 것을 제외하면 과거 국민 SNS였던 싸이월드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런 행사를 주관했거나 참가해본 사람들은 모두 느꼈겠지만, 이런 것이 진정한 의미의 메타버스라면 딱히 큰 가치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메타버스의 가능성 

이러한 다양한 비판적 시각에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메타버스는 충분히 우리 삶을 크게 바꿔놓을 파괴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까지의 메타버스는 주로 유희 활동, 특히 게임 콘텐츠 소비를 위한 플랫폼으로 인지되고 있다. 물론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가 액티비전 블리자드(스타크래프트를 만든 미국 게임 회사)를 약 82조원에 인수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 게임 산업의 유망함은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그렇다고 이 때문에 메타버스가 우리의 일상을 바꿀 기술이라고 정의하기엔 모자람이 있다.

메타버스의 실질적인 가치는 게임과 같은 소비 활동보다는 제조, 의료, 모빌리티 등의 ‘물리적 생산 활동’이 메타버스를 통해 이뤄질 때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실제로 달성된다면 메타버스는 우리의 일상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메타버스는 본질적으로 사람들이 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도록 만드는 플랫폼이다. 지난 2년간의 코로나19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느꼈듯이 줌을 통한 비대면 소통은 그 한계가 명확하여 실제로 한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서 소통하는 것을 완전히 대체하는 게 불가능하다. 기술적으로 메타버스가 지향하는 지점은 소통과 협업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제조를 예로 들어보자. 이미 대부분의 공장은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동화되어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을 필요로 하며, 이는 공장 설계부터 공정 관리 등을 포함한 전체 제조 프로세스에 다양한 물리적 제약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뜨거운 AI 어젠다인 스마트 팩토리가 메타버스와 만난다면, 사람들끼리의 협업, 나아가 공장과 운용 인력 사이의 인터페이스가 순수하게 디지털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예시는 제조뿐 아니라 의료나 모빌리티 등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메타버스와 물리적 생산 활동의 결합은 인류의 노동 환경이 극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함의다. 인류가 꿈꾸던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메타버스를 통해 일부나마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물리적인 생산 활동이 메타버스상에서 일어나기 위해서는 메타버스에서의 활동이 디지털 세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현실 세계에 다시 피드백할 수 있는 수단이 반드시 필요하다. 

스마트 팩토리의 디지털 트윈 내에서 작업자들이 무언가 하더라도 이것이 공장의 물리적인 가동까지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소프트웨어적인 수단을 넘어 하드웨어와 인프라를 송두리째 바꿀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당장 현재의 가상현실 기기를 통해 현실과 가상세계를 완벽하게 통합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많은 기술적인 혁신 역시 선행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메타버스가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꿀 무언가가 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육체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에 우리의 삶이 오롯이 온라인에서 이뤄질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메타버스의 대표주자인 게임은 본질적으로 소비 활동이기에 그것이 새로운 즐거움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삶의 본질을 바꾸기에는 충분치 않다. 일상적인 생산 활동이 부분적으로나마 메타버스에서 일어나기 전까지는 앞서 언급한 비판은 계속 유효할 것이다.

지난 수년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AI 담론도 이제는 알고리즘 자체의 개발보다는 AI로 무엇(X)을 하여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가, 즉 AI+X로 그 논의의 축이 옮겨가고 있다. 메타버스가 새로운 소통과 협업의 플랫폼으로 자리잡고, 나아가 우리 사회가 메타버스의 세계적인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메타버스를 통해 어떤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선제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메타버스+X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김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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