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사진 블룸버그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사진 블룸버그
김경원세종대 경영경제대학장 전 대성합동지주 사장전 디큐브시티 대표, 전 CJ 그룹 전략총괄기획 부사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김경원세종대 경영경제대학장 전 대성합동지주 사장
전 디큐브시티 대표, 전 CJ 그룹 전략총괄기획 부사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1│증시 버블 키웠지만 책임 피한 ‘앨런 그린스펀’

1913년 창립된 미국 중앙은행 시스템의 역대 수장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이름은 앨런 그린스펀일 것이다. 그는 1987년부터 2006년까지 19년 이상 긴 임기를 채우면서 공과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때 ‘신경제’라 불리는 미국 경제의 부흥기를 이끈 중앙은행장이라고 세계적으로 칭송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의 재임 말부터 지금까지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아주 높은 편이다.

1990년대 초부터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등장하며 전 세계의 물가를 잡아주자, 그는 이를 빌미로 사상 최대 규모로 돈을 찍어 내며 증시의 버블(거품)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는 관운이 참 좋은 사람이었다.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붕괴와 함께 미국 경제가 급격한 불황으로 빠져들며 그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높아질 즈음 9·11테러가 터졌고, 불황이 더 깊어지자 그의 책임론은 잦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다시 돈을 찍어냈고,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사태마저도 임기가 끝난 이후에 불거져, 그는 또 직접적인 책임 추궁 대상에서 벗어났다.

현 정부의 그간 경제 성적표는 어떨까. 성장, 고용 등에서 결코 합격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크게 줄어든 일자리,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 급증한 국가 부채와 세금 및 사회보험료 부담, 폐업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 등의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단지 국내 대기업들의 선전으로 수출 부문이 계속 선전을 해왔을 뿐이다. 그런데 이 정부도 참 운이 좋은 것 같다. 부진한 성적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이라는 핑계를 댈 수 있기 때문이다.


2│‘아무도 가지 않은 길’ 걸은 현 정부

로버트 프로스트는 미국의 계관시인(국가나 왕에 의해 공식적으로 임명된 시인)이다. 그는 1916년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라는 시를 발표했다. 이 시에는 “노란 숲속에 두 길이 갈라졌겠지/ 나는 두 길을 다 갈 수 없고 한 길만을 가는 것이 아쉬워/ (중략) 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 힘들 거라 생각하며/ 나는 먼 훗날 나이 먹어 어디에선가 한숨 지으며 말하리라/ 숲속에 두 개의 길이 갈라져 있었고/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라는 구절이 있다.

현 정부의 임기도 어느덧 끝나간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라고 했다. 실제로 출범 이후 ‘소득 주도 성장’의 기치 아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공공 부문 일자리 만들기, 노조 우대 등 정통 경제학 이론과는 다른 경제 정책을 펴왔다. 문 대통령은 임기 중반 한 신년사에서도 “경제 정책의 기조와 큰 틀을 바꾸는 일은 시간이 걸리고,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고 가보지 못한 길이어서 불안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덜 다니는 길’을 택한 결과 이미 한국 경제가 돌아오기 힘들 정도로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한숨도 지어진다.


3│차기 대통령을 향한 다섯 가지 제언

현 정부 임기 초에 필자는 모 경제지에 기고한 적이 있다. 새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에 대해 “정부 만능론을 믿지 말고 겸허한 자세로 시장과 기업을 존중하며 그 목소리를 경청해달라”는 당부의 내용이었다. 필자는 ‘겸허하고(Humble) 존중하며(Honor) 경청하는(Hear)’ 자세를 취해달라고 당부했다. 필자는 이를 ‘3H’라 불렀다. 물론 지금까지의 양상을 보면 이는 허공에 지른 소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3월 9일 치러질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여야 후보마다 여러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경제 정책에 관한 한 나랏돈을 경쟁적으로 더 쓰겠다는 것 이외에는 별 차별성을 느낄 수가 없다. “묻고 떠블로 가”라는 어느 영화의 대사가 생각날 정도다. 그런데 그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당부할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적어도 경제 정책에 관한 한 위에 언급한 ‘3H’의 자세를 지켜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부 만능론을 믿지 말고 겸허한 자세로 시장과 기업을 존중하며 그 목소리를 경청해주길 바란다.

둘째, 수십 년간의 데이터가 보여주는 대로 집값의 가장 큰 결정 요인은 부동산 수급보다는 금리였다. 금리 정책은 신중에 신중을 더하여 실행해야 할 것이다. 현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실업률 상승’ ‘자영업자 부담 증가→경기 부진→기준금리 인하→집값 상승→부동산 억제 정책 강화→경기 부진’이라는 악순환의 루프를 그대로 돌면서 십 수차례의 안정책을 내도 집값 폭등은 거듭됐다. 그런데 얼마 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자 일부 지역부터 집값이 조정받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금리가 더 올라가면 1990년대 초 일본처럼 집값이 폭락하며 현 정권에서 더욱 커진 가계부채 문제가 국가 경제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제는 부득이해 보이는 금리 인상도 속도를 최대한 늦출 필요가 있다. 다시 경기가 더 나빠진다 해도 이미 고령화 등으로 경기부양 약발이 다한 금리인하 정책은 함부로 쓰지 않기를 바란다.

셋째, 국내 소비를 진작시키고 자영업을 되살리기 위해서 ‘2동결’을 제언하는 바이다. ‘문재인 케어’ 등으로 이제는 일반 세금 부담만큼이나 올라버린 ‘건강보험료’와 미국(연방 기준)을 웃도는 최저임금은 차기 정부의 임기 동안은 동결을 권한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이 성공 못 하고 집값과 물가만 잔뜩 올린 단초는 바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다.

넷째, 재정 건전성 회복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기 바란다. 올림픽의 졸속 운영과 형편없는 코로나19 방역 등 요즘 일본의 국력이 쇠퇴해가는 모습이다. 그 큰 원인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나랏빚으로 정부가 쓸 돈이 없어 그렇다는 분석이 있다. 세수의 40%가량을 기존 채무의 원리금 상환에 쓰고, 사회보장비 등의 경직성 지출을 제외하고는 일본 정부가 재량껏 쓸 수 있는 돈은 예산의 6% 미만이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적인 한국도 이대로 가다간 이것이 남의 일이 아니게 될 것이다.

현 정부가 출범 당시에 비해 60% 이상 나랏빚이 늘어나는 등 국가 채무의 증가 속도가 매우 가파르다. 이마저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포함시키는 공기업 부채를 뺀, 과소 계상한 수치다. 현 정부도 이를 심각하게 보았는지 2021년 10월 기획재정부는 재정준칙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소위원회 상정도 안 됐다. 그 내용은 2025년부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60% 이하, 통합재정수지 적자를 3% 이하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국제기준을 제대로 적용하면 국가채무비율은 100%가 넘어가게 될 것이다. 차기 정부는 국회를 설득해 국가채무비율을 현 수준에서 동결하고 기본적으로 균형예산 원칙을 지키는 등 좀 더 엄격한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것도 고려해 봄 직하다.

다섯째, 한국 경제의 최대 관건인 출산율 제고 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여러 정권이 막대한 재원을 쏟아 붓고도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는 가임 여성들의 실질적인 수요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국가가 아이 셋 이상을 낳은 여성에 대해서 △대학 등록금까지의 모든 학비를 지원하고 △중대형 임대 및 분양 아파트에 대한 최우선 청약권을 보장하고 △5년 이상 ‘가족기획관’이라는 공무원으로 고용하는 등의 정책은 어떨까? 필요한 재원은 그간 효과가 별로 없었던 여러 출산장려책에 쓰였던 것을 돌려쓰면 충분할 것이다.

차기 정부가 이런 정책 기조를 유지한다 해도 현 정부하에서 이미 돌아오기 힘들 정도로 달라졌을 가능성이 큰 이 경제를 정상화시키고 체질을 강화시키는 일은 ‘극한직업’이 될 것이다. 더구나 차기 정부는 코로나19 같은 핑곗거리는 없을 것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길’이 있으면 그 길을 가는 것이 역사의 소명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