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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설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서울대 로스쿨, 변시 4회, 현 국제상업회의소젊은 중재인 포럼북아시아 지역 대사
박설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서울대 로스쿨, 변시 4회, 현 국제상업회의소젊은 중재인 포럼북아시아 지역 대사


국제중재의 특성으로 흔히 ‘집행의 용이성’ ‘중립성’ ‘비밀 유지’ 및 ‘신속성’ 등을 꼽는다. 그런데 국제중재 절차가 생각보다 신속하지 않고 오래 걸린다는 점은 꽤 이전부터 지적돼 왔다. 국제중재 기관인 국제상업회의소(ICC)는 중재판정문을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26개월에 달한다는 통계를 2020년 발표했다.

물론 국제중재의 장점이 신속성만은 아니다. 여러 국가 당사자가 분쟁 해결 조항을 합의해야 하는 경우, 중재는 각 당사자의 자국 법원에서 하는 소송보다 중립적이고 공정할 수 있다. 아울러 중재판정은 외국에서도 집행이 용이하고 비밀 유지가 원칙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국제중재 절차는 여전히 활용 가치가 있고 필요하다. 특히 국제중재가 항소 절차 없이 단심으로 분쟁을 해결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속성은 여전히 국제중재가 갖는 중요한 장점 중 하나이며, 이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와 대리인들이 절차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이에 국제중재를 통해 분쟁을 신속하게 해결할 방법을 살펴보기로 한다.


당사자 간 합의를 통한 신속성 보장

중재의 장점은 중재절차의 유연성에 있다. 법원에서 진행되는 소송의 경우 민사소송법 등 법령에 따라 그 절차가 이미 정해져 있지만, 중재의 경우 당사자들 간에 절차를 어떻게 진행할지 합의가 가능하다. 따라서 원한다면 당사자들이 중재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도록 일부 절차를 생략하거나 간소화, 또는 절차 간 간격을 좁히는 등 여러 방법으로 합의할 수 있다.

문제는 통상 분쟁이 발생하면 당사자 간 절차 합의가 어렵다는 점이다. 분쟁이 발생해 한쪽이 중재신청서를 제출할 경우, 통상 피신청인 입장에서는 중재절차를 늦추고 싶어한다. 문서 제출과 같은 절차도 상대방으로부터 정보를 많이 받아내야 하는 당사자는 이 절차를 생략하거나 간소화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분쟁 발생 이후 당사자 간 신속한 중재절차를 협의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분쟁이 발생하기 전 중재조항에 분쟁의 신속한 해결을 보장하기 위한 내용을 포함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대표적으로 중재절차의 특정 시점으로부터 중재판정문이 나올 때까지의 기간을 명시하는 방법이 있다. 실제로 당사자들이 중재조항에 이와 같은 기한을 정해둘 경우, 중재기관 및 중재판정부는 이를 가능한 한 준수하려고 하는 편이다. 중재합의에 반해 중재절차가 진행될 경우 중재판정 취소 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 그 기간이 현실적이어야 하며, 기산점이 되는 날짜를 명확히 해 해당 조항의 해석에 대한 불필요한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분쟁이 시작된 시점’과 같이 여러 해석이 가능한 문구가 들어가서는 안 되고, ‘중재신청서가 접수된 시점’ ‘최종 심리 기일’ 등과 같이 비교적 명확한 시점이 들어가야 한다.

이 밖에 문서 제출 절차를 생략하거나 간소화하는 등 방법을 미리 중재조항에 정해둘 수도 있다. 다만 중재조항의 해석에 대한 불필요한 분쟁을 막기 위해서는 중재조항에 대한 충분한 내부 검토 및 당사자 간 협의를 거쳐 최대한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중재규칙 내 신속 절차 활용

주요 국제중재 기관은 중재규칙에 분쟁 규모 등에 따라 신속 절차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으므로, 이를 활용할 수 있다. ICC의 경우 분쟁 금액이 300만달러(약 36억원) 이하면 원칙적으로 신속 절차를 적용한다. 신속 절차에서는 중재판정부를 1인으로 구성하고 문서 제출 절차를 없애거나 간소화하며, 서면 제출 횟수를 제한하거나 심리 기일 없이 서면 심리만으로 진행하는 등 여러 조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중재절차를 정하기 위한 사건 관리 회의일로부터 6개월 이내 중재판정이 내려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한상사중재원도 신청 금액이 5억원 이하면 신속 절차를 원칙적으로 적용하도록 하고 있으며, ‘홍콩 국제중재센터’와 ‘싱가포르 국제중재센터’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런 기준에 해당하지 않아도 당사자들이 신속 절차로 중재를 진행하기로 합의하는 것이 유효하다. 또 신속 절차 대상이 아니라도 중재판정부가 일부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생략하는 등 조처를 할 수도 있다. 다만 당사자 중에 일방이 절차를 간소화하는 데 반대할 경우 이를 관철하기가 쉽지 않은데, 위와 같은 신속 절차 규정이 적용되거나 합의가 있으면 중재판정부가 절차를 가능한 한 신속하게 진행하도록 유도할 수 있어, 절차의 신속성을 보장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중재합의를 체결하면서 어느 중재규칙의 적용을 받을지 및 해당 중재규칙의 적용 범위와 관련해 별도 합의를 할 필요는 없는지 등을 상세히 살펴 전략적으로 유리한 중재합의를 체결해야 한다.


긴급중재인 또는 임시적 처분 활용해 조기 해결 시도

중재절차 자체를 간소화하거나 신속하게 하는 방법 외에, 중재절차를 통해 당사자 간 합의로 분쟁을 조기에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이 경우 긴급중재인이나 임시적 처분 절차를 활용해 긴급하고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 미리 판단을 받음으로써 합의에 여지를 두고 분쟁의 조기 해결을 꾀한다.

긴급중재인 제도는 중재판정부가 구성되기 전에 긴급한 보전 처분의 필요성이 있으면 긴급중재인을 선임해 그로부터 긴급처분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통상 중재판정부가 구성되는 데는 몇 개월이 소요된다. 때문에 이를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긴급한 사유가 있으면 긴급중재인을 선정해 그로부터 처분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ICC의 경우 사건 기록이 긴급중재인에게 넘겨진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긴급중재인이 처분하도록 하고 있다. 대한상사중재원도 긴급중재인이 선정된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긴급처분에 대한 결정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긴급중재인의 결정은 이후 구성된 중재판정부에 구속력이 없고, 중재판정문과 달리 법원에 의한 집행이 불확실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긴급중재 신청 및 처분을 통해 중요 쟁점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면 합의를 통해 분쟁이 해결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는 중재판정부에 의한 임시적 처분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중재기관은 중재규칙에 중재판정부가 임시적 처분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명시하고 있는데, 임시적 처분의 경우 긴급중재 처분과 달리 우리 중재법상 집행이 가능하다. 즉, 중재판정부가 구성된 이후에야 신청 및 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긴급중재보다 신속성 측면에서는 떨어질 수 있으나, 당사자들이 조기에 분쟁을 해결하도록 합의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쟁의 신속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


중재절차 신속성 관련 전략적 고려 필요

국제중재를 통해 분쟁을 신속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고, 각 사건에 적합한 방식이 있을 것이다. 물론, 신속한 분쟁 해결이 반드시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피신청인 입장일 때는 신속한 분쟁 해결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중재합의를 정하는 시점에서는 아직 자신이 신청인이 될지 피신청인이 될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신속한 중재절차를 위한 조치를 중재합의에 마련해두는 것은 양날의 검일 수 있다.

아울러 통상 신속한 분쟁 해결을 통해 비용 절감이라는 효과를 누리려고 하지만, 중재절차를 지나치게 긴박하게 정하면 주장과 입증을 충분히 하지 못하거나 무리한 절차 진행으로 더 큰 비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다만 중재절차를 통해 분쟁을 신속하게 해결할 방법을 숙지한 상태에서 계약과 분쟁의 특성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면 국내 기업의 국제 분쟁 대응에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