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된 다양성의 도시 멜버른’이라는 자부심에 비해 1990년대 초반에 만든 기존 멜버른 로고는 촌스럽다는 평가가 있었다. 사진 멜버른
‘세련된 다양성의 도시 멜버른’이라는 자부심에 비해 1990년대 초반에 만든 기존 멜버른 로고는 촌스럽다는 평가가 있었다. 사진 멜버른
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브랜딩이란 브랜드 아이덴티티(지향점 또는 목표 인식)를 소비자가 잘 경험하게 만들어 소비자 인식을 브랜드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를 도시 브랜딩에도 적용하면 도시 브랜딩은 ‘특정 도시의 아이덴티티를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잘 경험하게 해서 그 도시의 지향점을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된다.

이처럼 브랜딩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통칭하는 말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원래 브랜딩이란 말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보다 좁은 의미로 쓰였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수립하고 브랜드 본질(에센스· essence)을 도출하는 부분이 브랜드의 개념적 요소에 관한 일이라면, 브랜딩 그 자체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표현적 요소만을 지칭했다. 쉽게 말해, 이름과 슬로건을 짓고 시각화하는 기술적 행위만을 브랜딩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즉, 브랜딩이란 넓은 의미로는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전체를, 좁은 의미로는 표현적 요소만을 일컫는다.


좁은 의미의 브랜딩 두 종류

사진 볼보(왼쪽)·푸르덴셜
사진 볼보(왼쪽)·푸르덴셜

앞서 말했듯, 좁은 의미의 브랜딩은 우리가 원하는 생각·연상·단어·문장·그림 등이 떠오를 수 있도록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는 표현 요소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버벌 브랜딩(verbal branding)’이다. 이는 이름을 짓고 슬로건을 도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디자인 가이드를 수립하고 로고나 심볼을 만드는 ‘비주얼 브랜딩(visual branding)’이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버벌 브랜딩과 비주얼 브랜딩은 소비자에게 주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예를 들어보자. 자동차 ‘볼보’의 브랜드 본질은 ‘안전’이다. 3점식 안전벨트 등 안전 장비를 최초로 개발한 곳도 볼보다. 또 볼보는 그런 안전 장비를 특허로 묶어두지 않고 모든 자동차 업체가 활용할 수 있게 했던 역사가 있는 브랜드다. 언행일치의 브랜드, 진정성 있는 브랜드라 볼 수 있다. 브랜드 본질로 안전을 오랜 세월 견지하고 있는 볼보는 버벌 브랜딩도 탁월하다. 볼보의 브랜드 슬로건은 ‘목숨을 생각하면 볼보(VOLVO for life)’다. 안전의 브랜드임이 바로 각인된다. 이는 버벌 브랜딩의 힘이다. 

또 다른 예를 살펴보자. 금융 기업 ‘푸르덴셜’은 생명보험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푸르덴셜은 버벌 브랜딩에 해당하는 이름 자체가 ‘신중함(prudential)’을 뜻한다. 금융 브랜드로서 믿음직하고 진중하다는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푸르덴셜의 비주얼 브랜딩, 심볼 마크는 바위에서 모티브를 따 왔다. 푸르덴셜 로고에 나오는 바위산은 ‘지브롤터(이베리아반도 남단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향해 뻗어 있는 반도) 바위산’으로 알려져 있다.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안정의 상징인 지브롤터 바위에서 영감을 얻어 바위산으로 심볼 마크를 만들었다고 한다. 소비자는 이 심볼을 보면서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과 진중함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체험하게 된다.


멜버른의 ‘M’은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전달하면서 여러 장소와 다양한 상황에서 융통성 있게 적용되고 있다. M의 내부 공간에 어떤 색과 패턴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응용할 수 있다. 사진 멜버른
멜버른의 ‘M’은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전달하면서 여러 장소와 다양한 상황에서 융통성 있게 적용되고 있다. M의 내부 공간에 어떤 색과 패턴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응용할 수 있다. 사진 멜버른

비주얼 브랜딩으로 성공한 도시, 멜버른

도시 브랜딩에서는 버벌 브랜딩과 비주얼 브랜딩이 일반적인 상품보다 더 중요하다. 도시라는 장소 특성상 직접 경험할 기회가 상품 브랜드보다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일반적인 소비재처럼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 브랜드의 간접 경험을 유발하기도 어렵다. 

세계적으로 도시에 브랜딩 개념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1990년대다. 1세대 도시 브랜딩은 문장(紋章) 형태가 주를 이뤘다면, 2세대에는 슬로건이 좀 더 부각됐다. 최근에는 도시명 중심의 비주얼 브랜딩이 3세대 도시 브랜딩을 이끌고 있다. 호주의 멜버른이 대표적인 예다.

멜버른은 호주에서 시드니 다음으로 큰 도시다. 호주에서 가장 유럽적인 도시로, 시민 자긍심이 매우 높다. 호주에서 산업적, 문화적으로 가장 앞서있기도 하다. 2009년 멜버른 시의회는 비주얼 브랜딩을 다시 하기로 한다. 기존 디자인은 함축성이 떨어지고, 특히 활용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멜버른의 핵심 가치인 다양성을 보여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세련된 다양성의 도시 멜버른’이라는 자부심에 비해 1990년대 초반에 만든 기존 멜버른 로고는 촌스럽다는 판단도 한몫했다. 

멜버른이 자랑하는 다양성은 멜버른 관광 가이드에 잘 나타나 있다. 멜버른의 철자 하나하나가 다양한 멜버른의 모습을 각각 담았다. M은 ‘뭄바(moomba). 이는 ‘함께 모여 놀자(Let’s get together & have fun)’라는 뜻의 원주민 말로, 다양한 이민자의 역사와 문화가 어울리는 도시라는 뜻이다. E는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호주를 대표하는 공연, 대중음악, 영화, 카지노 등 흥미로운 엔터테인먼트의 도시를 나타낸다. L은 ‘멜버니언(멜버른 시민)처럼(Like a Melbournian)’. 멜버니언은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자유롭지만, 질서 있는 삶의 여유와 배려를 보여주는 시민을 표현한다. B는 ‘배낭여행자의 천국(backpackers’ heaven)’. 저렴한 숙소와 무료 대중교통, 저렴한 식재료, 주립 도서관의 무료 편의시설 등 배낭여행자를 위한 최고의 도시를 뜻한다. O는 ‘오지! 오지! 오지!(Oz! Oz! Oz!)’ 오지란 호주 내에서 호주인을 뜻하는 단어다. 스포츠를 즐기는 호주인이 외치는 응원의 함성을 보여주면서 다양한 스포츠 행사가 열리고 누구나 스포츠를 즐기는 도시라는 것을 내비친다. U는 ‘도시의 밤(urban night)’. 살사댄스 클럽, DJ 볼링 바, 라이브 재즈 및 힙합 클럽, 카페와 레스토랑 등이 즐비한 밤이 심심하지 않은 도시를 보여준다. R은 ‘런웨이(runway)’, 호주를 대표하는 패션과 쇼핑의 도시이자 도시 전체가 패션쇼와 같이 다채롭다는 것을 뜻한다. N은 ‘가장 고상한(noble number 1)’. 트램 레스토랑, 와이너리 투어, 벌룬 투어, 기차로 떠나는 골프 투어 등 럭셔리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도시를 나타낸다. E는 ‘행사(event)’. 호주 오픈 테니스, 멜버른 푸드&와인 페스티벌, 호주 포뮬러 1 그랑프리, 멜버른 국제 영화제, 멜버른 프린지 페스티벌, 멜버른 컵과 스프링 레이스 카니발 등 연중 끊임없이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리는 도시를 자랑한다. 

이런 다양성을 함축적으로 담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내걸고 2009년 새롭게 도입된 멜버른의 비주얼 브랜딩은 실로 혁신적이었다. 대개 비주얼 브랜딩은 ‘이런 식으로 디자인해야 한다’는 규제 중심의 가이드를 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멜버른은 유연성과 응용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비주얼 브랜딩을 도입했다. ‘플렉시블 디자인’의 멋진 등장이었다. 멜버른은 첫 글자 ‘M’을 변주해 멜버른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담고자 했다.

도입 초기에는 M 한 글자 만드는 데 큰돈을 낭비했다고 비난하던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전달하면서 여러 장소와 다양한 상황에서 융통성 있게 적용되자 이제 M은 멜버른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아이콘이 됐다. M은 형태적으로는 간결하지만, M의 내부 공간에 어떤 색과 패턴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응용을 무궁무진하게 할 수 있다. 멜버른의 비주얼 브랜딩은 ‘로고 변화’ ‘유연한 로고 플레이’ ‘반응형 로고 디자인’이라는 기존에 없던 표현이 동반된,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