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2021년 8월 2일(이하 현지시각) 국제통화기금(IMF)이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역대 최대 수준인 6500억달러(약 778조4400억원) 규모의 특별인출권(SDR) 발행안을 승인했다. 이날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IMF 역사상 최대 규모의 SDR 증액일 뿐 아니라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한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SDR은 IMF가 발행하는 화폐와 비슷한 개념이다. 다만 IMF와 회원국, 국제기구 등 공적 부문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SDR 보유 국가는 국제수지 악화 시 SDR을 다른 회원국의 달러화나 유로화, 엔화, 영국 파운드화, 위안화로 교환할 수 있다. IMF가 신규 SDR을 발행하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였던 2009년에 2500억달러어치를 발행한 이후 처음이다. 이날 승인된 SDR 발행안은 2021년 8월 23일부터 발효됐다. 새로 증액된 SDR은 발효 당시 회원국들이 IMF에 기여한 비율에 따라 배분됐다. 배분된 SDR의 57.8%를 선진국이 차지했고, 나머지 42.2%는 개발도상국에 돌아갔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SDR을 할당받은 선진국이 자금을 필요로 하는 개발도상국에 이를 넘기도록 실행 가능한 방법을 해당 회원국과 적극적으로 협의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코로나19 재확산에도 개발도상국 지원 방안이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 사진 셔터스톡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 사진 셔터스톡
자야티 고시 미 매사추세츠 애머스트대 경제학 교수 현 국제개발경제학회(IDEAs) 사무총장, 현 다국적기업 조세개혁을 위한 독립위원회(ICRICT) 회원
자야티 고시 미 매사추세츠 애머스트대 경제학 교수 현 국제개발경제학회(IDEAs) 사무총장, 현 다국적기업 조세개혁을 위한 독립위원회(ICRICT) 회원

세계 경제 회복을 더디게 하는 주원인은 부유한 나라와 나머지 국가 간 불평등이다. 현재 세계는 ① ‘K 자형 회복’ 현상을 보인다. 부유한 나라와 다른 국가 간 재정변화 대응이 크게 차이가 날 경우에 주로 나타난다. 2021년 4월 국제통화기금(IMF)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장기화하면서 경제 성장이 저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은 2020년에 팬데믹 이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6% 이상 공공 지출을 늘렸다고 추정했다. 신흥국은 평균보다 1% 이상 공공 지출을 더 늘렸으며, 개발도상국은 늘릴 여유가 없었다. 

2021년 10월, 코로나19가 다시 대유행하면서 중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부채가 늘었고 재정 상태는 악화했다. 이들은 공중보건 등 필수적인 공공 지출 분야에도 지원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2021년 8월 IMF가 역대 최대 수준인 6500억달러(약 778조4400억원) 규모의 ② 특별인출권(SDR) 발행안을 승인했다. 이는 개발도상국이 저성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됐다. 다만 SDR은 각국의 GDP와 밀접한 IMF 할당량을 적용받아 차등 분배된다. 개발도상국과 중진국은 대략 2500억달러(약 303조2500억원)를 지원받았는데, 이는 4000억달러(약 485조2000억원) 가까이 할당받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심지어 선진국은 이 금액을 잘 쓰지도 않았다. 이처럼 SDR 할당제는 명백히 구식이고 비논리적이다. 특히 오늘날 거대한 국가 간 불평등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그런데도 극심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개발도상국에 SDR은 ‘생명줄’이었다. 추가적인 경제 하락을 막는 데 분명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2021년 8월부터 80여 개국은 IMF 부채를 갚거나 보건·복지 분야 등 긴급한 분야에 투입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SDR을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SDR은 다른 국제적 재정 지원보다 이점이 많다. SDR은 국가 외부 부채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는다. IMF나 다른 국제기구에서 빌린 채무와는 달리 제약도 크지 않다. 또, 다른 다자간 기구 자금 지원은 주로 제외시키는 중진국을 포함해 모든 국가가 SDR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이자율이 0.1% 이하 이므로 사실상 이자부담이 크지 않다. 사실상 긴급히 돈이 필요한 국가가 이보다 더 쉽게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을 생각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많은 국가 수장은 SDR을 더 할당받기를 원한다. 2021년 11월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에서 미아 모틀리 바베이도스 총리는 기후 변화를 위해 20년간 매년 5000억달러(약 606조5000억원) 규모의 SDR을 승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2009년 열린 ‘코펜하겐총회(COP15)’에서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의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매년 1000억달러(약 121조3000억원)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기적인 SDR 배분은 SDR이 필요한 국가가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달성하는 데 쓰일 수 있다.

매년 SDR을 할당, 배분하면 IMF의 재정을 악화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총 SDR 자금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의 양적 완화로 자산 유동성이 25조달러(약 3경325조원)씩 증가한 것보다 매우 적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9430억달러(약 1143조8500억원) 규모의 SDR은 각국 중앙은행이 비축한 12조8000억달러(약 1경5526조원)의 7% 규모밖에 안 된다. 이는 전 세계 비축 금액에서 SDR 발행이 차지하는 비중을 30~50%로 제한하더라도 SDR이 더 발행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앞으로 SDR이 불필요한 선진국에 배정된 4000억달러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시급히 고민해야 한다. IMF가 초과 SDR 지원액을 보관하고 있으면 막대한 기회비용을 날리는 셈이다. 엄청난 낭비다. 일부 선진국이 총 1000억달러 규모의 SDR을 재분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이뤄지진 못했다. 초과 SDR 지원액을 어떻게 재분배할지를 서둘러 정해야 한다. 

다만 500억달러(약 60조6500억원) 규모의 ③ ‘회복·지속가능성 기금(RST)’을 설립하자는 IMF의 제안은 개발도상국이 SDR로 얻는 이점을 많이 박탈할 것이다. 우선, 그 양이 충격적일 정도로 작다. 설상가상으로 이자율이 가장 낮은 채무 형태로 발행되기 때문에 국가가 갚아야 한다. 역효과를 낸다고 증명된 IMF 융자 조건의 대상도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기금은 IMF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는 국가나 극빈국들만 대상이 된다. 즉, 개발도상국 대부분이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다. RST 설립안은 딱히 긍정적인 효과가 없는 사업일 뿐이다. 

RST보다 괜찮은 다른 제안도 있다. 선진국이 SDR을 보유할 권한이 있는 지역 개발은행으로 그들에게 할당된 SDR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아프리카개발은행 등은 SDR을 이용해 국가 자본 기반을 확대하고 개발도상국에 기후 위기 대응이나 예산 확보를 위한 재정을 지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경제학자 아비나시 페르소(Avinash Persaud)는 SDR 발행을 통해 매년 5000억달러 규모의 기후 금융 신탁을 만들자고 했다. 그는 각국 신탁 자금을 경매에 부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가장 많이 줄이기로 한 국가가 신탁을 입찰받는 방식을 고안했다.

만약 선진국이 그들의 SDR을 재분배하라는 제안에 지지부진한 반응을 보인다면 그들은 더 공평하고 지속 가능하게 세계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목표에 실패하게 될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에게 악영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고학력·고소득 노동자는 경제 침체에서 빠르게 회복하는 반면 저학력·저소득 노동자는 어려움이 심화하는 양극화 현상을 말한다. 임금이나 교육 수준에 따라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는 속도가 다른 경제 회복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인다. 팬데믹 사태를 예로 들자면 코로나19 이전에도 소득이 높았던 정보기술(IT)을 중심으로 한 부유층은 침체에서 빠르게 벗어나면서 K 자의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아랫부분은 저임금 노동자들이나 관광, 외식 등 코로나19 피해가 큰 전통 산업 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다. 

Special Drawing Rights. IMF 회원국들이 외환위기 등에 처할 때 담보 없이 인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IMF가 1969년 국제준비통화인 달러화와 금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했다. 1970년에 정식 채택됐으며 별명은 ‘페이퍼 골드(Paper Gold)’다. 쉽게 말해 IMF와 회원국, 국제기구 등 공적 부문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제3의 세계 화폐다. SDR 보유 국가는 국제수지 악화 시 SDR을 다른 회원국의 달러화, 엔화, 유로화, 파운드화, 위안화 등 5개 통화로 교환할 수 있다. IMF 회원국은 출자액 비율에 따라 SDR을 무상으로 배분받는다.

Resilience and Sustainability Trust. 저소득 국가와 중간 소득 국가의 빈곤 감소와 기후 변화 같은 중장기 과제를 위한 새로운 기금이다. RST 신청국은 출자할당액 조건을 준수해야 하며 IMF가 요구하는 개혁 프로그램에 동의해야 한다. 2021년 10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은 이 기금을 조성하는 데 지지하며 IMF 및 세계은행(WB)과 긴밀히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나라의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IMF에 RST의 조속한 설립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