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킥보드 시장은 장관 주도하에 규제가 완화되면서 빠르게 성장했으나, 많은 부작용을 안기고 다시 규제가 강화되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사진 셔터스톡
전동킥보드 시장은 장관 주도하에 규제가 완화되면서 빠르게 성장했으나, 많은 부작용을 안기고 다시 규제가 강화되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사진 셔터스톡
김우창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서울대 산업공학,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 ‘Quantitative Finance’ 편집장
김우창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서울대 산업공학,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 ‘Quantitative Finance’ 편집장

혁신은 원래 ‘정신혁고(鼎新革故)’에서 온 말인데, 유교 경전인 ‘주역(周易)’에서는 이를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세운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영어로 혁신을 의미하는 ‘innovation’은 라틴어 동사 ‘innovo’에서 파생되었는데, 그 의미는 ‘renew’ 혹은 ‘restore’로 기존의 것을 새롭게 바꾼다는 뜻이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혁신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완전히 새롭게 만든다기보다는 이미 있는 것을 개선하고 고친다는 것에 가깝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혁신은 기존 사회 시스템과 충돌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전 세계 어느 곳을 가도 혁신가들이 첫손에 꼽는 애로 사항이 규제임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혁신 없는 생존은 꿈도 꿀 수 없는 오늘날 혁신을 막는 규제를 타파해야 할 악(惡)과 똑같이 여겨지는 현상 역시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규제는 그저 혁신가의 발목을 잡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기하급수적으로 복잡다단해지는 시대에 규제는 사람들이 불합리하고 억울하게 피해를 보지 않도록 만드는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전면에 내세운 경제 분야 정책적 지향점 중 하나는 ‘4차 산업혁명’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자체는 이미 실현된 사회 변화라기보다는 다양한 미래의 청사진 중 하나에 불과한, 다분히 상업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용어였고, 국정 철학으로 직접 활용하기엔 모호한 점이 많았다. 때문에 당시 정부는 모든 국민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사례에 목말라했고, 인공지능(AI), 블록체인, 핀테크, 스마트 모빌리티같이 소위 ‘뜨는’ 신산업에 대한 전면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전동킥보드가 ‘장관님 관심 사업’이 된 것은 이런 연유였다. 중소벤처기업부 초대 장관인 홍종학 전 장관은 4차 산업혁명을 위한 혁신의 전도사를 자처했다. 그 결과, 스마트모빌리티 구현을 위한 전동킥보드 규제 개선은 부처 차원의 첫 번째 주요 사업이 됐다. 홍 전장관이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 2018년 당시, 전동킥보드는 원동기장치 자전거로 분류돼 차도에서만 운행해야 하고 운전면허증이 있어야만 운행이 가능했다. 또한 안전 기준 역시 자동차관리법의 적용을 받아 관련 업계가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러나 ‘규제 해결 끝장캠프’ 등을 통해 장관이 직접 적극적인 홍보와 행정을 펼친 결과, 2020년 5월 전동킥보드와 관련한 도로교통법이 전면적으로 개편됐다. 주된 골자는 전동킥보드를 ‘개인형 이동 장치’로 새롭게 규정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전동킥보드는 원동기가 아닌 자전거에 준하는 안전 규제를 받는 교통수단으로 거듭났다. 

차도 운행만 가능했던 기존의 규제와는 달리 자전거도로 이용이 가능해졌다. 최소 원동기운전면허 이상을 보유해야 했던 기존 규정 역시 면허 요건 자체가 폐지됐다. 나아가 안전모 등 보호장비 착용도 의무에서 권고로 완화되었으며,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 규정은 형사처벌 대상에서 범칙금 부과로 대폭 약화됐다. 동승자 규정도 없고, 어린이 운전 시 보호자 처벌 역시 규정에서 빠졌다. 심지어 도로 교통에 필수적인 등화장치 작동 규정마저 없어졌다. 만 13세 이상이면 누구나 면허 없이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고 차도와 자전거도로에서 자유롭게 전동킥보드를 탈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전동킥보드에 대한 규제가 전면적으로 사라지면서 관련 사업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전국 어디를 가든 대학가나 번화가라면 전동킥보드 업체의 공유 킥보드를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준비 부족한 규제 완화는 큰 비용 초래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자전거에 비해 훨씬 빠르면서도 바퀴가 작고 무게중심이 높은 전동킥보드는 급정거나 교통사고 발생 시 이용자가 쉽게 넘어져 머리와 얼굴을 다칠 위험이 클 수밖에 없다. 자전거라면 긁힌 상처로 끝날 일이 생명을 위협하는 사고가 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무엇보다 전동킥보드를 이용하지도 않는 보행자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됐다. 우리나라 자전거도로는 85% 정도가 보행자와 같이 이용하는 겸용 도로로 지정돼 있기에 실질적으로 전동킥보드는 보행자와 한 곳에 뒤섞여 운행하게 된다. 전 국민을 분노하게 했던 전통킥보드 관련한 사고들은 대부분 전동킥보드가 행인을 치어서 발생한 것이다. 

결국 정부와 국회는 관련법이 개정된 지 불과 7개월이 지난 2020년 12월, 법을 개정했다. 면허 요건, 연령 제한, 동승자 탑승, 음주운전, 지정 차로 등 운행에 필요한 거의 모든 요건을 새롭게 정의한 새로운 규정은 기존보다 훨씬 강력한 규제를 담았다. 덕분에 ‘장관님 관심 사업’이자 4차 산업혁명의 선두주자였던 전동킥보드 사업은 짧은 전성기의 막을 내렸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는 오롯이 인생을 걸고 사업에 뛰어든 혁신가, 정부를 믿고 쌈짓돈을 해당 사업에 투자한 투자자 그리고 우리 국민에게 전가됐다.

전동킥보드 규제와 관련한 일련의 사건은 혁신과 규제가 상호배반적이 아님을 시사한다. 바람직한 혁신은 기존의 것을 새롭게 바꾸는 데 끝나지 않고,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함과 동시에 부작용을 최소화해 선의의 피해자를 줄이는 경우에만 달성 가능하다. 이를 위해 혁신가는 앞을 보고 내달리되, 규제는 그 속도와 방향을 조절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따라서 혁신과 규제는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

혁신에 주력하다 보면 이따금 명백한 경고 신호를 놓칠 때도 있다. 2020년 5월 도로교통법 개정 전에도 전동킥보드의 안전과 관련한 다양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바 있고, 심지어 주관 부처인 행안부는 적극적으로 개정에 반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권 초기, 높은 지지율을 등에 업고 정권 차원에서 추진한 정책들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으며, 중소벤처기업부같이 집권당 소속 전 국회의원 출신 인사가 장관으로 있는 부처는 뜻하는 바를 거의 모두 이룰 수 있었다. 전동킥보드의 급속한 성장과 추락은 짧은 시간 안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하는 정치인 출신 인사의 조급증에 어느 정도 기인했음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전동킥보드 논란과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건강한 혁신을 통한 국가적 지속 가능성 확보가 시대적 과업인 현시점, 전동킥보드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공무원, 특히 ‘늘공(늘상 공무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치인 출신 인사들, 즉 ‘어공’이 각 부처의 수장으로 임명돼 앞으로 치고 나갈 때, ‘늘공’들은 해당 정책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해 큰 부작용이 예상되면 이를 보완하고 수정하고, 필요하다면 반대하는 역할까지 수행해 줘야만 한다.

20세기 우리나라의 경제적 성취는 소위 ‘엘리트 공무원’들의 활약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산업 구조에 대한 이들의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집중 육성할 산업을 미리 정의하고, 이를 위한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과거 우리의 성공 방정식이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전공자나 혁신가조차도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구체적인 사항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상이 복잡다단해졌다. 무엇보다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된 현시점에서 과거 선진국을 모방하는 ‘패스트 팔로어(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을 따라가는 전략)’ 방식이 더 이상 통하기 어렵다.

따라서 엘리트 공무원들은 더 이상 쇼를 진행하고 만들어가는 ‘진행자’가 아닌,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고 선의의 피해자 발생을 방지하는 ‘심판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옳다. 혁신가와 정치가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되, ‘늘공’들은 그들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혁신 과정에서 발생할 부작용을 미리 인지해 속도 조절을 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진행자’가 아닌 ‘심판자’로서의 엘리트 공무원들의 역할을 기대한다.

김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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