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는 “사람들은 모든 것의 가격을 알지만, 어떤 것의 가치도 모른다”고 했다. 현 시장 경제도 비슷하다. 가치보다 가격에 집중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2018년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학자에게 수여하는 레온티예프상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한 필자는 “이제 세계 경제 시스템은 가격이 아닌, 가치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돌봄(care)이라는 가치가 중요하다. 돌봄은 넓은 의미로 인간의 건강한 삶과 건강한 지구 생태계를 뜻한다. 인간과 지구가 공존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돌봄, 건강 등이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 현재를 변화의 적기(適期)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인간의 건강과 자연 보호 활동 등으로 발생하는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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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나 마추카토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UCL) 혁신· 공공가치 경제학 교수 현 UCL 혁신·공공목적연구소(IIPP) 소장
마리아나 마추카토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UCL) 혁신· 공공가치 경제학 교수 현 UCL 혁신·공공목적연구소(IIPP) 소장

인간의 건강한 삶을 유지하게 하는 돌봄은 사회·경제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가치다. 돌봄은 인간을 넘어, 지구 환경 보호와도 맥을 같이한다. 돌봄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매일 일어나는 필수 요소이지만 저평가돼 있다. 돌봄, 보살핌은 주로 여성들의 몫이었고, 그들의 헌신은 1년에 한 번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에만 기억되곤 한다. 

팬데믹은 그동안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돌봄을 부각시켰고 그 역할을 확대하는 중이다. 이제 우리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점검해야 한다. 지구 환경과 지구상 모든 사람의 건강에 기여하는 경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런 변화를 위해 세계보건기구(WHO)는 보건경제위원회를 설립했다. 

하지만 현 경제 시스템은 정반대로 돌아간다. 건강, 돌봄을 경제 성장 수단으로만 보고 있다. 지구를 파괴하며 경제 성장에 나서는 것도 여전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경제 활동을 시장 가격으로 평가해 GDP(국내총생산) 같은 지표로 측정한다. 전 세계가 GDP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은 문제다.① 이제 시장 가격이 아닌 가치 중심으로 세계 경제가 돌아가야 한다. 

전 세계의 팬데믹 대응을 보자. 여전히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다. GDP로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지난해 각국 정부가 국방비를 늘리면서 전 세계 GDP는 약 2조2000억달러(약 2765조원) 증가했다. 그런데 세계 인구가 코로나19 백신을 맞는 데 필요한 약 500억달러(약 62조원)는 구하지 못했다. 단순 계산하면 팬데믹 종식보다 전쟁과 파괴에 44배나 더 많은 돈을 쓰는 사회다. 정상이라고 보기 힘들다. 이제 우리는 진정으로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을 바탕으로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WHO 보건경제위원회는 지구 및 인간의 건강을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제안했다. 먼저 물과 공기 같은 우리 삶에 필수적인 자연 자산을 보호하며 지구 생태계를 지켜야 한다. 두 번째는 공정을 촉진하는 사회의 기반과 활동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다. 다양성을 옹호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원하고 공동체가 번영하기 위해 사회적·물질적인 인프라에 투자해야 한다. 세 번째는 인간의 건강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신체적·정신적인 건강을 보장하고, 건강한 공동체 안에서 모두가 존엄하고, 동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고려해야 할 점은 더 있다. 인간의 건강과 환경 보호 활동 등으로 발생하는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우선 GDP라는 측정 기준이 획일적이고, 건강과 관련된 모든 요소를 포함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와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글로벌 차원의 조직 또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데이터를 다양한 지역에 걸쳐 투명하게 수집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강, 지구 환경 관련 측정 기준은 ② 빈곤, 평화, 환경 오염, 생태계 등 유엔(UN)의 17가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를 기초로 만들 수 있다.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 도시 구축 같은 정책 솔루션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주도 혁신의 사례가 될 수 있다.


정부의 역할을 보자. 정부는 혁신적이고 주도적이어야 한다. 기업만이 혁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건강, 환경 보호라는 미션을 수립하고, 기업들이 이 미션을 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혁신이 일어나는 게 중요하다. 탄소 중립 정책은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다만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려면 거시적이면서도 더욱 세심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정부가 무작정 재정 지출을 늘리기보다는 분명한 목표와 방향을 수립하고 대규모 투자를 통해 시장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인간과 지구의 공존을 다룬 ③ 영국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의 도넛 경제학 모델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 이 경제 모델을 잘 적용한 사례다. 암스테르담은 순환 경제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순환 경제는 원자재 소비를 줄이고 기존 자원을 다시 쓰는 전략이다. 주택 건설을 예로 들면, 건축 자재 재사용과 폐기물 배출 제로를 핵심으로 디자인한다. 정부는 국민이 저렴한 임대료로 장기간 살 수 있는 사회주택을 우선적으로 건설한다. 건설 시 기존 자재를 재사용하는 것은 그동안의 시스템으로 인한 한계가 있다. 건물을 지을 때부터 향후 자재를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어떤 모델이건 인간의 건강과 환경 보호 활동 등으로 발생하는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가치 개념 재정립은 불평등 해소, 녹색 경제로의 전환 등 오늘날 세계 경제가 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를 담을 수 있는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필자가 2017년 쓴 책 ‘가치의 모든 것(The value of everything)’의 핵심이다. 필자는 책에서 가치 창조(value creation)와 가치 착취(value extraction)의 메커니즘을 분석했다. 가치 창조는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활동을 의미하고, 가치 착취는 자원을 이전하고 거래하는 과정에서 부당하게 높은 이득을 취하는 것을 뜻한다. 

필자는 경제에서 가치 개념은 가치 착취가 가치 창조의 가면을 쓰고 부(富)를 착취하기 쉽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진정한 가치 창출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현 경제 시스템에서 각 행위자는 삶의 개선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가치를 창조하는 데 힘을 쏟기보다는 가격, 이른바 주가로 표현되는 수치에만 치중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시장이 정한 가격 이외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치의 모든 것’ 한글판은 2020년 출간됐다. 

2015년 제70차 유엔(UN) 총회에서 2030년까지 달성하기로 결의한 의제로, 지속 가능 발전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인류 공동의 17개 목표다. ‘2030 지속 가능 발전 의제’라고도 한다.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것(leave no one behind)’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인간·지구·번영·평화·파트너십이라는 5개 영역에서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빈곤, 질병, 교육, 평화, 기후 변화, 환경 오염, 일자리, 생물 다양성, 생태계 등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 목표로 제시한다.

케이트 레이워스 옥스퍼드대 교수가 2011년 발표한 경제 모델로, 인간과 환경을 함께 지켜내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도넛 모양으로 표현했다. 도넛 안쪽 고리는 개인 삶의 기본을 이루는 사회적 기초로, 그 안에 식량, 보건, 소득과 일자리, 평화와 정의, 사회적 공평함, 성 평등 등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기준을 배치했다. 이 고리를 넘으면 기아, 문맹 등 인간성 박탈에 이를 수 있다. 도넛 바깥쪽 고리는 생태적인 한계로, 그 너머에 기후 변화, 담수 고갈, 생물 다양성 손실, 대기 오염, 오존층 파괴가 배치돼 밖으로 나가면 치명적인 환경 위기를 맞게 된다.

마리아나 마추카토 / 정리 : 박용선 기자, 김보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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