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사태 이후 미국의 자발적 퇴직자 수는 점차 증가해 지난해 11월에는 453만 명에 이르렀다. 사진 셔터스톡
팬데믹 사태 이후 미국의 자발적 퇴직자 수는 점차 증가해 지난해 11월에는 453만 명에 이르렀다. 사진 셔터스톡
백재영IGM세계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세종대 교육학
백재영IGM세계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세종대 교육학

미국 노동 시장의 최대 이슈는 모두가 직장을 그만두는 시대, 즉, ‘대사직(The Great Resignation·大辭職)’이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사태 이후 미국의 자발적 퇴직자 수는 점차 증가해 지난해 11월에는 453만 명에 이르렀다. 이는 2000년 12월 통계를 집계한 이후 최고치다. 대사직은 텍사스 A&M대 앤서니 클로츠 교수가 만든 용어로,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처럼 하나의 용어로 자리 잡게 됐다. 클로츠 교수는 팬데믹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거나 원격근무를 하는 과정에서 일과 삶에 관한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된 근로자들이 더 나은 직장을 찾아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대사직이라고 할 만한 급격한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를 중심으로 퇴사율이 높아지는 추세다. 국내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538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상반기 퇴사율은 평균 15.7%였다. 이는 2020년 같은 기간보다 1.8%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퇴사율이 증가한 기업은 퇴사의 주요 원인으로 ‘MZ 세대 중심 조직은 이직 및 퇴사를 비교적 쉽게 하는 편(41.3%·복수 응답)’이라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일과 삶의 융합(Work-Life Blending)’을 줄인 말인 ‘워라블’, 본업 외에도 여러 부업을 하는 ‘N잡러’, 경제적 자립을 통해 빠른 시기에 은퇴하려는 사람들인 ‘파이어족’ 등 변화한 노동관이 퇴사율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한다.

국내외에서 퇴사 바람이 계속되면서 ‘직원 경험(Employee Experience)’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직원 경험이란 채용공고를 확인하는 순간부터 퇴사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직원들이 느끼는 생각과 감정 등 모든 경험의 총합을 의미한다. 직원 경험은 직원 유지뿐만 아니라 인재 채용, 직원 생산성, 직원 참여율, 직원 민첩성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사직 시대에 인재를 붙잡아 두려면 기업은 먼저 근로자가 직장을 떠나는 이유를 살펴보고 직원 경험을 제대로 설계할 수 있는 방향을 잡아야 한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맥킨지앤드컴퍼니의 보고서 ‘큰 소모 아니면 큰 매력? 선택은 당신의 것(Great Attrition or Great Attraction? The choice is yours)’은 퇴사 사유에 관한 고용주와 근로자의 생각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위 표를 보면 고용주는 거래 요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근로자는 관계 요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맥킨지앤드컴퍼니 연구는 대사직 시대에 근로자가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은 물질적인 측면이 아닌 정서적인 측면임을 시사한다. 이 말은 곧 조직이 관리해야 하는 직원 경험 영역이 정서적인 측면까지 확장됐다는 뜻이다. 정서적 측면에서 직원 경험을 향상하고 있는 기업의 사례를 살펴보자.



깃랩(GitLab)│아웃과 고립감을 낮추는 원격근무 가이드라인

소프트웨어 개발 및 협업 플랫폼 기업인 깃랩은 실제 사무실 없이 100% 원격근무 체제로 운영되는 회사다. 깃랩은 전 세계 65개국이 넘는 곳에 직원 약 1300명을 두고 있다. 깃랩은 2014년 설립 당시부터 원격근무를 운영해 온 만큼, 다양한 원격근무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깃랩의 원격근무 가이드라인은 직원의 정서 관리에 관한 지침을 제공한다. 여기에는 ‘정신건강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친구·가족과 교류할 수 있는 휴식 일정을 보장한다’ ‘긴 근무 시간은 장려하지 않는다’ 등이 포함된다. 대런 머프 깃랩 원격부문장은 “(직원에게) 늘 가족과 친구가 우선이고 업무는 2순위라고 강조하고 있다. 회사는 이런 부분을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깃랩은 원격근무로 발생할 수 있는 고립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잡담 시간을 운영하고 있다. 챗봇이 무작위로 선정해 준 동료와 매일 30분간 의무적으로 대화를 나누게 한다. 또한 구글 행아웃에 누구든지 들러 수다를 떨 수 있는 ‘랜덤 룸(random room)’도 마련했다.


힐튼(Hilton)│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직원을 위한 웰니스 프로그램

전 세계 100개국에 4600개가 넘는 호텔 지점을 보유한 힐튼은 2021년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3위로 선정됐다. 힐튼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직원들을 위해 ‘트라이브@힐튼(Thrive@Hilton)’이라는 온라인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은 직원들의 몸과 마음, 정신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과학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크리스토퍼 나세타 힐튼 최고경영자(CEO)는 프로그램을 처음 선보이는 자리에서 “(당신이) 손님을 섬길 때, 회사는 당신을 섬기고 싶다”라고 말했다. 

또한 힐튼은 ‘목적 있는 여행(Travel with Purpose)’이라는 특전을 제공한다. 이 여행 프로그램은 지속 가능한 체험을 제공하며, 힐튼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략과도 연계돼 있다. 힐튼 직원은 아이와 함께 리조트에 방문해 ‘산호 보호 프로그램’을 체험하는 등 지역사회 및 환경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게임빌(Gamevill)│정서적 안정 토대를 만드는 상담 프로그램

국내 모바일 게임 회사인 게임빌은 심리 상담 프로그램인 ‘상담 포유 서비스’를 제공한다. 직원이 행복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스트레스를 예방하고 해소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직원은 대인관계 문제와 불면증, 가정 문제,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 등 심리적인 모든 부분에 걸쳐 상담받을 수 있다. 상담 내용은 비밀이 보장되며, 상담은 대면 외에 전화, 화상, 메신저 등으로 이뤄진다.

코로나19 이후 근로자의 일에 관한 우선순위가 바뀌면서 대사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기업은 변화한 근로자의 상황에 맞춰 직원 경험에 관한 접근을 달리해야 한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시장조사 전문기업인 가트너의 인사 담당 부사장인 카롤리나 발렌시아는 “오늘날 직원은 단순히 근로자가 아닌 사람으로 대우받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깃랩과 힐튼, 게임빌처럼 직원의 정서적인 측면을 관리해보자. 당신의 회사 또한 인재가 모이고 오래 머무는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을것이다. 대사직의 시대, 기업은 인재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