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의 전자의무기록(EMR·Electronic Medical Record)을 활용하는 바이오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환자들의 전자의무기록(EMR·Electronic Medical Record)을 활용하는 바이오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김선진  플랫바이오 대표 서울대 의학 박사,  전 텍사스 주립대 휴스턴 MD 앤더슨 암센터  암생물학부 암전이 및  임상이행연구센터 교수
김선진 플랫바이오 대표 서울대 의학 박사, 전 텍사스 주립대 휴스턴 MD 앤더슨 암센터 암생물학부 암전이 및 임상이행연구센터 교수

환자들의 전자의무기록(EMR·Electronic Medical Record)을 여러 목적으로 사용 가능한 데이터로 전환하고 수집하겠다고 주장하는 바이오 업체가 많이 생겼다. 대개 수억 명의 환자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가 학문적으로 필요할 때 서로에게 제공해 각자의 목적에 맞게 이용하거나, 이를 산업화·상용화 할 수 있는 업체에 제공해 수익을 발생시키는 사업 모델을 표방하고 있다. 

전자의무기록의 탄생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필자가 전공의와 전임의로 근무하던 1980~90년대 초에는 환자의 의무기록과 처방전을 일일이 수기(手記)로 작성했다. 각종 검사 결과지는 환자의 의무기록부에 첨부돼 필요할 경우 일일이 손으로 들춰가며 확인해야 했고, 병원을 오래 다닌 환자의 의무기록은 법전보다 두껍기까지 했다. 일부 손실된 페이지도 많았다. 

이렇게 머리가 아닌 몸으로 고생하는 고된 전공의 생활에 한 줄기 빛이 되어준 것이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이다. 처음에는 병원 내에서 검사, 처치 등 진료 지시가 수기가 아닌 원내 전산망에서 교신되는 처방 전달 시스템으로 개발돼 환자 의무기록 전산화의 첫걸음마를 뗐다. 그 뒤 환자 의무기록을 전산화하여 기록하고 저장하는 체계가 개발·보급됐다. 

특히 대용량 데이터를 빠른 속도로 수집·저장·송수신하는 수단이 개발되면서 병원 전자의무기록 체계의 마지막 단계인 영상 이미지 전산화가 가능하게 됐다. 이로써 환자 및 전체 인구의 건강 정보를 디지털 형태로 전환해 체계적으로 수집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데이터 형태 표준화를 통해 운영 프로그램 간 호환성을 높였다. 인구 통계학, 병력, 약물 복용 및 알레르기, 예방 접종 상태, 검사실 검사 결과, 영상의학 이미지, 생체 징후, 나이와 성별 등 개인적인 통계 그리고 의료비 청구 정보를 포함하는 일정 범위의 데이터 기록을 네트워크끼리 교환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렇듯 전산화된 산더미 같은 의료 정보는 어디에 활용될까. 대용량 데이터는 인구의 건강·보건의료 현황을 파악하거나, 미래 의료 수요를 예측해 국가 연구 개발을 지원하고 정책을 만들고 보건 재정을 분배할 때 활용할 수 있다. 제약사도 약물 수요 패턴을 예측해 회사 주력 약품을 선정하고,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 전략을 수립하거나, 특정 질병의 치료 수요가 증가·감소하는 인구의 성별, 연령대 등을 파악해 보험료를 조정할 수도 있다. 학계에서는 데이터를 분석해 학회에 발표하고 논문을 출판할 수 있다. 


데이터 신선함 문제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계는 있다. 예컨대 환자 진료 자료나 일반인의 건강검진 자료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돼 특정 주체가 수익을 가져가는 것이 정당한가. 누군가는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법률이나 정책으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병원 진료나 건강검진 때 피험자 동의서에 ‘결과물이 상업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문구가 들어갈 때 환자나 일반인의 반응이 어떨지도 미지수다. 

또 법률·정책적으로 허용된다 하더라도 여기서 창출되는 수익에 대해 민사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아무리 완벽한 보안장치를 갖춘다 해도 개인 입장에선 민감한 개인 정보가 노출될 우려가 있으니 책임 소재와 보상에 대한 정책 역시 고민해야 한다. 또 환자의 건강 정보를 다루는 인력에 자격을 부여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비용 부담도 클 것이다. 

한편으로는 기존 통계 처리 방식보다 확실히 우월성이 있을지 여부도 아직은 미지수다. 이미 기존 통계학 방식으로도 의무기록 등 건강 정보를 분석하고 있다. 물론 모집단에서 비교집단을 선택할 때 소요되는 시간, 얻는 데이터의 양, 자료 처리 속도 등 행정 절차 간소화 측면에서 전자의무기록을 특정 형식으로 처리해 축적해 놓고 필요에 따라 꺼내 쓰는 것이 훨씬 편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존 방법으로 얻은 결과물과 전자의무기록 체계를 활용한 결과가 동일하거나 유사하다면 과연 투자 가치가 있을까. 또 앞으로 데이터 이용 시 승인을 받는 기준이 더 엄격해질 가능성도 있다. 

데이터의 신선함도 문제다. 진료, 건강검진 기록은 매일 쏟아지는데, 실시간으로 모든 결과가 특정한 형태의 데이터로 전환되고 저장되지 않는다면 어제까지 전환돼 저장된 데이터가 오늘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헌 것’이 될 수도 있다. 

의무기록의 문제점도 있다. 의무기록을 하는 목적은 의료비 청구를 위해서다. 국가 의료보험 체계를 갖추고 있는 국가는 의료기관이 환자 진료 후 국가에 진료비를 청구하고 받는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의료기관이 적절하지 못한 진료를 하고 부당한 진료비를 수령하지 못하도록 진료 행위에 대한 심사를 진행하고, 청구액을 삭감하거나, 그 액수가 많을 경우 기관에 대한 제재를 하기도 한다. 의료기관은 가능한 한 높은 수가를 청구하고 적법하게 삭감을 회피하고 실제 들어간 비용을 다 받기 위해 의무기록 작성 기준을 세우고 있다. 의료기관은 주 질환과 부 질환, 혹은 선행 질환과 합병증을 열거하고 치료 행위의 순서를 정하는 등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의무기록 내용을 변경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질병의 발병, 예후 등에 관한 분석을 왜곡할 수도 있다. 또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일반 질환의 데이터 이용 사업이 보험 적용을 받는 의무기록 이용 사업만큼 성공하려면 더 많은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전자의료기록 체계를 다루는 기업의 가치와 잠재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가 계속 데이터를 전환할 역량이 되고,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할 알고리즘을 독자적으로 혹은 협업을 통해 개발할 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의료 데이터 특성상 의료 행위가 계속되면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계속 생산될 것이고, 이를 계속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특정 소프트웨어에 의해 진료 현장에서 바로 전환된 데이터가 축적되는 시스템을 개발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전문인력이 계속 데이터를 처리하는 반복 작업을 해야만 한다. 어제까지 전환한 데이터양에 맞먹는, 혹은 훨씬 많은 양의 데이터가 오늘도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즉 기업은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재료가 있어도 그것을 어떻게, 어디에 활용할지 모른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러니 전자의무기록 체계 회사가 지금까지의 의료통계 방법을 폐기시킬 만큼 확실한 우위를 가진 결과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기존 시스템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정도의 결과물을 도출하지 못한다면, 단순히 더 많은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고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회사가 생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수익 창출과 회사의 가치는 공허한 구호나 희망가가 아니라 독창성과 역량 그리고 구체적인 수익 모델 유무에 달려있음을 기업은 명심해야 한다.

김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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