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미국 노동부가 집계한 올해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7.9% 오르며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상무부가 3월 30일(이하 현지시각) 발표한 2월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PCE) 역시 전년 대비 6.4% 상승, 1982년 이후 40년 만에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구인난은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한 요소로 꼽힌다. 인플레이션을 촉발시킨 공급망 병목현상도 코로나19 확산으로 선착장 내 작업인력을 구하지 못해 항만 내 물류 정체가 심화된 영향이 컸다. 기업들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직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임금 인상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대졸 신입 직원에게 억대 연봉을 주는 곳도 생겼다. 그런데 기업의 인건비 부담 증가는 제품 또는 서비스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을 가중시킨다. 지난 3월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최근 미국 월가 투자은행(IB)과 대형 컨설팅 회사, 정보기술(IT) 회사에서 대졸 초임으로 10만달러(약 1억2400만원) 이상을 주고 있다. 미국 빌 클린턴 정부의 노동부 장관 출신인 ① 로버트 라이시 UC 버클리 정책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 사태가 미국 구직 시장에서 노동에 대한 공급과 수요를 재편했다”고 진단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고용주들이 노동자들의 이직을 걱정하는 상황이 됐고, 과도한 임금 인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글의 필자인 토드 부크홀츠 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팬데믹 이후 나타난 노동 공급 감소가 임금 인상을 이끌며 인플레이션의 한 원인이 됐다”며 사람들의 노동 시장 참여율을 높이는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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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부크홀츠경제학자 겸 법률가 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전 백악관 경제정책 보좌관,‘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아이디어’ 저자
토드 부크홀츠경제학자 겸 법률가 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전 백악관 경제정책 보좌관,‘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아이디어’ 저자

지난 몇 년간 은퇴한 미국인은 수백만 명에 이른다. 이들이 피클볼(테니스 비슷한 운동) 라켓 대신, 망치나 렌치, 아니면 연필을 들었더라면 인플레이션은 덜했을지도 모른다. 중앙은행의 통화 공급 확대, 과도한 정부 지출, 공급망 대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물가가 급격히 치솟고 있다. 1979년 이후 이 같은 물가 상승은 처음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구인난은 심화됐다. 2000만 명 이상의 한창 일할 나이인 미국인이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점심 때까지 틱톡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며 시간을 허비한다. 그들은 미국 노동부 통계 조사관들에게 ‘지금은 일하고 싶지 않다’고 호소한다. 집 안 소파에서 내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게임 회사인 엑스박스를, 집에서 머물며 암호화폐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를 번창하게 돕겠지만, 이들로 인해 노동 시장 참여율이 낮아지면서 국가 경제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런데, 몇 가지 노동 정책 변화만으로도 미국 내 1130만 개 일자리를 채울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자가 주장하는 노동 정책은 크게 세 가지다. 공적연금의 문제점을 바로 잡고, 직업면허와 자격 편중주의를 억제하고, 긱 워커(gig worker·조직과 정해진 출퇴근 시간 없이 수입을 올리는 노동자)들과 ② 플랫폼 경제를 위축시키는 지나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일하기 싫어하는 노동자들을 일터로 불러내야 한다. 

우선, 노동계층의 양극단에 있는 노인층과 젊은층을 일터로 불러모아 인플레이션의 주요한 원인을 완화시킬 수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89세의 나이에도 영화를 감독하고, 윌리엄 샤트너는 90세에 용감하게 우주에 간다. 이러한 놀라운 성과에도 불구하고 경제 활동을 멈춘 은퇴자는 지난 15년간 30%나 늘었다. 노인층은 얼리버드 디너 할인에 반응하듯이 세금 인센티브에 반응한다. 아쉽게도 미국의 사회보장제도는 다시 일을 시작한 은퇴자들에게 매달 주는 공적연금(보조금)을 줄이는 등 페널티(불이익)를 준다. 예를 들어 62세의 은퇴자가 다시 연간 1만9560달러(약 2400만원) 이상을 벌 경우, 공적 보조금은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진다. 또 66세 이후에는 소득세율이 30% 이상으로 올라간다. 그럼 은퇴한 노년층이 굳이 왜 일을 하겠는가? 

현재 미국의 경우, 은퇴자 한 명에게 지급되는 보조금은 2.7명의 현역 노동자의 세금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 출산율은 감소하고 있고 이 의존도는 더 심해질 것이다. 2035년에는 한 명의 은퇴자가 2.3명의 현역 노동자에게 의존하게 된다.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같은 나라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고령자의 경제 활동을 유도하기 위해선 세금이나 공적연금 페널티를 완화해야 한다. 

정부는 또 젊은층에게 더 나은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현재 미국 내 16~24세 청년의 노동 시장 참여율은 17%에 불과하다. 2000년에는 10대의 50% 이상이 여름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30%만 일을 한다. 일찍 노동 시장에 참여하는 젊은층에게 연금 혜택을 크게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 정부의 퇴직자 연금에 돈을 내는 16~24세의 청년이 미래에 은퇴할 시점에 연금 혜택을 크게 준다고 약속하면, 노동 시장으로 조기 유입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주요한 문제는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려는 모든 연령대의 노동자가 값비싼 면허 요건을 포함, 자격증을 갖춰야 하는 등 정부 규제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1950년대에는 미국 내 직업의 5% 미만만 자격증을 요구했지만, 지금은 25%가 자격증을 요구한다. 의사나 조종사가 자격증을 따는 것은 이해되지만 애리조나주에서 미용사가 1600시간의 직업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것에는 의문이 든다. 경찰이 1040시간의 직무 교육을 받는 것을 생각하면, 미용사의 직무가 더 위험하다는 것인가? 

높은 자격증 의존도는 사회적 비용을 높이고 노동의 신규 유입을 막는다. 긱 근무나 온라인 학습에서는 대학 학위 요건은 중요하지 않다. 미국 구직⋅구인 웹사이트인 인디드에 따르면, 최근 이 사이트를 통해 컴퓨터 관련 직종에 취업한 노동자의 72%가 코딩 부트캠프를 졸업한 사람이었다. 필자는 이들이 컴퓨터공학과 학위를 딴 지원자들만큼이나 업무 능력이 갖춰졌고 높은 성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구글의 한 이사는 필자에게 인재 채용 시 대학 성적은 쓸모없다고 말했다. IBM은 현재 미국 일자리의 절반은 적절한 기술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고 말했고, 글로벌 4대 회계 법인이자 컨설팅 업체인 어니스트앤드영(Ernst & Young)은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취업자들에게 취업의 문을 열어줬다. 학위나 자격증 같은 장벽을 없애는 게 노동 시장 활성화에 도움 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③ 긱 이코노미(gig eco-nomy)를 규제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뉴욕시는 최근 음식 배달 업체들의 이윤을 제한했다. 일정 액수 이상의 배달 매출을 초과한 경우, 영업을 일부 제한하는 것이다. 음식 배달 플랫폼을 활용한 업체들의 이윤을 제한하는 건 긱 이코노미 종사자들의 근로 의욕을 떨어뜨린다. 유럽연합(EU), 호주 그리고 캐나다 의회에서도 에어비앤비나 도어대시 같은 플랫폼 업체들을 겨냥한 규제를 준비하고 있다. 이는 노동 시장의 경색 원인이 될 수도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 정부의 현명한 노동자 정책은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완화시킬 것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문을 닫은 소기업 중 30% 이상이 다시 문을 열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건강한 사람은 지금 은퇴할 필요가 없다. 은퇴 후 집에서 피클볼 같은 활동을 하는 것은 먼 미래로 미뤄도 된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로버트 라이시(Robert B. Reich)는 하버드대 정치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UC 버클리 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 예일대 법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과거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라이시는 자신의 최신 저서인 ‘부유한 노예’를 통해 왜 경제 불황과 호황이 반복되는지, 그러는 동안 부자와 빈자는 어떻게 나뉘는지, 갈수록 심화하는 부의 불균형 현상이 정치나 경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문제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분석했다.

플랫폼 경제(platform economy)란 빅데이터나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디지털 플랫폼 기반 경제 활동을 뜻한다. 거래 당사자들이 플랫폼을 이용할 때마다 수수료를 플랫폼 운영자(중개업자)에게 지불하기 때문에 플랫폼 규모가 커질수록 플랫폼 사업자 이익이 극대화한다는 특성이 있다. 대표적인 플랫폼 경제의 예로는 아마존, 에어비앤비, 쿠팡, 배달의민족, 카카오택시 등이 있다.

‘임시로 하는 일’이라는 뜻의 긱(gig)과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미(economy)의 합성어다. 긱 이코노미는 조직에 속하지 않고 단기 계약을 맺으며 일하는 자유로운 근로 형태를 의미한다. 숙박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Airbnb)로 숙소를 제공하는 사람, 배달 중개 서비스 업체의 배달을 대행하는 사람 등이 대표적인 긱 이코노미 사례다. 1920년대 미국 재즈클럽에서 임시로 섭외한 연주자들의 공연을 ‘긱’이라고 불렀다. 연주자들은 긱을 하고 사례비를 받았는데, 이것이 긱 이코노미의 어원이 됐다. 긱 이코노미는 노동을 중개하는 방식이 디지털 플랫폼 기반이라는 점에서 기존 단기 아르바이트와는 개념이 다르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는 긱을 “디지털 장터에서 거래되는 기간제 근로”라고 정의한 바 있다.

토드 부크홀츠 / 정리 : 심민관 기자, 김보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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