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아우토반(Autobahn)은 자동차를 뜻하는 독일어 auto와 통로나 길을 의미하는 bahn의 합성어로 ‘자동차전용도로’라는 뜻이지만, 지금은 독일 고속도로를 의미하는 고유명사로 쓰인다. 독일 아우토반은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구상됐으나 실제 건설은 1933년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정당인 나치 정권 아래서 이뤄졌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막대한 전쟁배상금에 따른 극심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세계 대공황에 따른 불경기로 고통받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규모 공공 사업으로 히틀러 정부가 시작한 사업이 아우토반 건설이다.

아우토반은 단순히 빠른 속력만을 중시한 게 아니다. 경치와 주변 경관, 교량이나 커브의 안전성과 미적인 고려, 편리한 휴게시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유사시에는 비행기 활주로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 결과 아우토반은 세계 모든 나라가 참고하는 고속도로 모델이 됐다.

아우토반이 유명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속도제한이 없는 세계 유일의 고속도로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곳곳에 속도제한이 부분적으로 도입됐지만, 기본적으로는 속도제한이 없다. 아우토반은 독일 자동차 산업을 발전시킨 기반이 되기도 했다. 속도제한이 없는 고속도로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국민에게 안전하고 고속주행이 가능한 자동차를 제공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우토반이 독일 국민에게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는 사용료가 없기 때문이다. 독일은 계획단계부터 사람과 상품이 신속하게 이동하는 것뿐만 아니라 부의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이 도로를 사용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인프라로 구상했다. 전국을 종횡으로 연결하는 거미줄 같은 고속도로망은 신속한 물류 운송으로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주요 산업 정책적 수단이 됐다. 긴밀한 지역 간 연계는 지역 간 경제적 격차를 극복하는 지역 정책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고속도로 사용료를 부과하고 있는 이웃 국가 화물차가 독일을 거쳐 가는 경우가 늘자 2005년부터 7.5t 이상의 화물차에는 통행료를 징수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용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아우토반은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모델이기도 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4년 12월 독일을 방문했을 당시,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총리가 한국에도 아우토반을 건설하도록 제안했다. 박 전 대통령은 통일 전 서독 수도인 본과 쾰른을 잇는 아우토반을 시속 160㎞로 달리면서 엄청나게 놀랐고, 그 경험으로 고속도로 건설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1967년 제6대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선거공약으로 제시했고, 1968년 2월 착공한 경부고속도로는 1970년 7월 7일 개통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동차로 15시간 이상 소요되던 것이 5시간으로 줄었다. 이를 계기로 물류 혁신이 일어났고 수출 확대, 자동차 및 제철 산업 등 연관 산업의 발전이 급속히 진전됐다. 이어진 고속도로망 확충은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새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재정 준칙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부채 한도를 도입하자는 논의부터 정부 재정의 지출에 대한 기준 설정 등도 거론된다. 그러다 보니 도로, 교량, 터널 등 인프라에 대한 사용료 도입도 검토되는 모양이다. 한국에서는 고속도로 사용료를 징수한다. 심지어는 지방도로나 터널 등 곳곳에서 사용료를 내야 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도심 혼잡을 줄이거나 공해를 줄이기 위해서, 민간자본으로 건설했기 때문에 비용 지불을 위해서, 또 관리 및 추가 건설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사용료를 부과한다. 독일은 아직도 아우토반 사용료를 받지 않는다. 재정 수입이 많아서가 아니라 국민이나 기업의 부담을 늘리지 않기 위해서다. 재정 준칙을 설정하는 기준에 국민의 수혜와 부담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누구나 사용하는 인프라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 새 정부가 꼭 유념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