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현지시각),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등 세 지역에 대한 동시 공격을 감행했다. 폭격으로 수많은 무고한 우크라이나 국민이 목숨을 잃고, 난민이 됐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포화는 전 세계를 긴장에 빠뜨렸다. 미국과 독일, 호주, 일본 등은 국방 예산 증액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번 침공은 중국과 갈등을 겪고 있는 대만의 안보 의식을 깨우기도 했다. 미국이 러시아를 대상으로 경제 제재를 펼치고,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했지만, 미군을 직접 투입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대만인은 “중국이 대만을 상대로 ‘무력 통일’을 시도하더라도 미국이 나서지 않을 수 있다”며 “스스로 국방력을 키워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대만의 자주국방 강화 분위기는 내부 설문조사 결과만 봐도 드러난다. 대만 싱크탱크인 대만민의(民意)기금회가 3월 14~15일 20세 이상 국민 10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미군이 개입할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34.5%뿐이었다. 지난해 10월 설문조사(65%)에 비해 30%포인트 이상 감소한 셈이다. 필자 아베 신조는 “미국의 대만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며 “이제는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3월 24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인권 상황과 관련해 제출한 결의안에 대한 표결이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국제 사회 비난을 희석하기 위해 제출한 결의안은 찬성 2표(러시아, 중국)에 기권 13표로 부결됐다. 이 결의안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인권적 위기 상황이 종식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사실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다. 사진 AP연합
3월 24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인권 상황과 관련해 제출한 결의안에 대한 표결이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국제 사회 비난을 희석하기 위해 제출한 결의안은 찬성 2표(러시아, 중국)에 기권 13표로 부결됐다. 이 결의안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인권적 위기 상황이 종식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사실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다. 사진 AP연합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세이케이대 법학부정치학, 전 자민당 총재,전 일본 국회 중의원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세이케이대 법학부정치학, 전 자민당 총재,전 일본 국회 중의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많은 이가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우려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대만이 비슷한 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처럼 대만과 중국 사이 군사력 차이는 상당히 크며, 양국의 군사력 차이는 매년 더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대만 모두 공식적으로 군사 동맹국이 없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두 나라 모두 위협이나 공격에 혼자 맞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와 중국이 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UNSC·안보리) 상임이사국이라는 거다. 두 국가는 안보리 결의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와 대만은 유엔 중재 기능에 의존할 수 없다. 러시아는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격으로 러시아 제재와 관련한 모든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지고 있는데, 중국이 대만을 침략한다 해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물론 우크라이나와 대만은 상당한 차이점도 가지고 있다. 대만을 둘러싼 상황은 훨씬 복잡하다. 대만은 동맹국이 없지만, 1979년 미국에서 제정·발효된 ② ‘대만관계법’이 있다. 미국의 국내 법인 대만관계법은 ‘미국은 대만이 충분한 자위 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필요한 만큼의 방위 물자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은 그간 ‘대만이 공격받을 경우 방어하겠다’고 말하기를 꺼려왔지만, 대만은 이 법을 보상(reward)처럼 여겨왔다. 하지만 이 법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두 번째 차이점은 미국의 ③ ‘전략적 모호성 정책’이다. 미국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이렇게 반응하겠다’라고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 등 야누스 같은 정책을 유지해왔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기 위해 군사를 배치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때는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지금껏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 정책 때문에 군사적 모험주의를 단념해왔다. 미국이 군사적 개입을 할 가능성을 타진해봐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책은 대만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대만인 사이에서는 ‘미국이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으며, 이는 대만의 급진적인 독립 지지 단체들을 단념시켰다. 

두 국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우크라이나는 의심의 여지 없는 독립 국가지만 대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대만에 대한 접근법을 다시 고려해야 할 때라는 것을 강하게 시사하기도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크라이나 영토주권에 대한 무력 침해일 뿐만 아니라 미사일과 포탄으로 주권국의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시도다. 국제 사회와 국제법, 유엔헌장 모두 이를 인정했다. 각국의 러시아 제재 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러시아가 국제법을 심각하게 위반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하는 나라는 없다. 

이와 반대로 중국은 대만을 자신들의 속국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미국의 포지션도 중국의 주장을 존중하는 쪽이다. 일본과 미국은 대만과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고 있지 않으며, 대부분의 국가가 대만을 주권국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중국 지도자들은 “중국의 대만 침공은 자국의 영토 중 한 곳에서 반정부 활동을 막기 위해 필요하며, 이러한 조치는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는 상황이 다르다. 

러시아가 2014년 크름반도(크림반도)를 무력으로 합병했을 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침해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는 궁극적으로 묵인했다. 이러한 전례에 따르면, 중국 지도자들은 국제 사회가 ‘국가 정복’보다 ‘지역 정복’에 대해 더 관대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보면,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 정책은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정책은 미국이 충분히 강하고, 중국의 군사력이 미국에 비해 한참 뒤처질 때 매우 잘 작동해왔지만, 지금은 이러한 상황이 아니다.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 정책은 중국이 미국의 의지를 과소평가하게 만들며, 대만 정부를 불필요하게 긴장시키고, 태평양 지역에 불안감을 조성한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볼 때, 미국은 이제 오해의 소지가 없고, 여러 의미로 해석되지 않는 성명을 내놓아야 한다. 미국은 ‘중국이 어떤 방법으로 대만을 침략하더라도 대만을 방어하겠다’는 뜻을 확실히 전해야 할 때가 왔다. 

필자는 일본 총리 시절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만날 때마다, 일본이 센카쿠 열도를 방어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전했다. 시진핑 주석이 잘못 판단하지 않도록, 우리의 의도가 변함없고 확고하다는 것을 전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우크라이나가 직면한 인류의 비극은 우리에게 쓰라린 교훈을 가르쳐주고 있다. 우리의 자유, 민주주의, 인권 그리고 법치를 수호하기 위한 우리의 투지와 대만에 대한 우리의 결의는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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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유엔의 핵심인 안보리는 회원국에 대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현재 유엔 안보리 이사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5개 상임이사국과 10개 비상임이사국 등 총 15개국으로 구성돼 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안보리 내에서 ‘P5(Permanent Five)’로 불린다. 임기가 영구적인 데다 안보리 결의를 거부할 수 있는 ‘비토(veto·거부)권’이 있기 때문이다. 5개 국가 중 한 나라만 반대해도 결의안 채택이 불가능해 권한이 막강하다. 이와 달리 10개 비상임이사국은 임기가 2년이며, 아시아·아프리카·유럽·중남미 등 대륙별로 1~3개의 이사국 자리를 차지한다.


대만 관계법 제정은 미·중 관계 변화가 시발점이었다. 1969년 1월에 출범한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중국과 소련의 분쟁을 기회로 삼아 중국과 대화채널을 열고, ‘핑퐁외교’를 시작했다. 닉슨 행정부는 지난 1972년 마오쩌둥 주석과 회동한 뒤 1979년 초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하에 대만과 단교했고, 대만과의 상호방위조약도 폐기했다. 미국은 같은 해 4월 국내법으로 ‘대만관계법’을 제정해 대만에서 무력 분쟁이 발생하면 이를 방어할 수 있도록 하면서 대만과 사실상 준(準)외교 관계를 유지해왔다. 

대만 관계법에 따르면, 미국은 대만이 충분한 자위 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방위 물품과 방위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유사시 미국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 셈이다. 이 법은 그 뒤 상호대표부 설치와 대만에 대한 미제무기 판매, 고위 관리 교류 등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중국은 대만 관계법에 대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저버린 채 실질적으로 두 개의 중국을 용인한 이중적인 태도라며 비난해 왔다.


민감하고 첨예한 이슈에서 전략적으로 특정한 견해를 밝히지 않고 애매모호한 태도로 위험 부담을 줄이는 행위를 말한다. 명확한 의도를 보여주지 않아 상대방을 긴장시켜 상대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데에도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