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수도’ 상하이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속출하자 중국 중앙정부는 한 달 넘게 상하이를 봉쇄하고 있다. 대중교통 운행을 중단하고 시민 외출을 금지했으며, 건물 앞에 펜스까지 설치했다. 상하이시 측은 처음에 도시 봉쇄는 없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지만 3월 28일(이하 현지시각)부터 도시를 동서로 나눠 4일씩 8일간 단계적으로 봉쇄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당초 4월 5일 새벽에 해제하려고 했던 도시 봉쇄는 계속 연장됐다. 또 정부는 상하이 전체 시민을 상대로 코로나19 핵산(PCR)검사도 함께 했다. 봉쇄 기간이 길어지면서 중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공급망 혼란도 가중될 전망이다. 상하이는 중국의 경제·금융·항공·항만·물류의 중심지로, 연간 국내총생산(GDP)이 중국 GDP의 3.8%(2021년 기준)를 차지한다. 또 상하이 봉쇄로 물류가 막혀 중국은 물론 세계 경제도 큰 충격을 받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홍콩중문대 연구진은 상하이가 전면 봉쇄될 경우 봉쇄 기간 중국의 실질 GDP가 4%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상하이 보건당국은 이르면 5월 초부터 일부 지역의 봉쇄를 단계적으로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확진자가 발생한 지역은 지금처럼 철저하게 봉쇄한다는 방침이다. 필자는 중국 중앙정부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것을 알면서도 상하이를 봉쇄한 것은 중앙정부의 재(再)중앙화 의지를 확인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봉쇄로 인한 광범위한 경제·사회적 비용 책임은 누가 지게 될 것인지 질문하고 있다.
4월 19일의 중국 상하이.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기간에 차가 거의 다니지 않고 있는 도로. 블룸버그
4월 19일의 중국 상하이.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기간에 차가 거의 다니지 않고 있는 도로. 사진 블룸버그
낸시 첸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교수 현 노스웨스턴대‘차이나 랩’ 설립이사
낸시 첸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교수 현 노스웨스턴대‘차이나 랩’ 설립이사

2600만 명이 사는 중국 상하이는 지난 3월 말 중국 중앙정부로부터 도시를 봉쇄하라는 압박을 받고 도시를 봉쇄했다. 이런 극단적인 정책은 도시 전체에서 시행된 코로나19 핵산(PCR) 검사에서 확진자 비율이 높게 나왔기 때문에 시행됐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중앙정부가 완전한 도시 봉쇄보다 비용이 덜 드는 대책을 어떤 이유에서 택하지 않았는지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현재 우세종이 된 오미크론 변이가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감염 사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은 오미크론 변이로 인한 증상이 경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노인층 백신 접종률은 약 60%인데, 중국 정부가 집단 면역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메시지 전달력과 국민 동원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울 정도로 저조한 수치다.

게다가 완전한 도시 봉쇄 조치는 높은 경제적 비용이 요구된다. 경제학자들은 상하이 봉쇄가 올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을 4%나 하락시킬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리고 중국 정부는 처음에 상하이를 나흘간 봉쇄한다고 했다가 지금은 무기한 봉쇄로 갑자기 정책을 바꿨다. 이에 따라 추가적인 경제 불확실성이 대두됐다. 상하이 공무원은 장기화한 봉쇄 조치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반 시설(인프라)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고, 시민은 방안에 갇히기 전 충분한 식량을 비축해둘 수 없었다. 4월 20일 기준 상하이에서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17명이었다는 사실은 시민의 분노와 좌절감을 키웠다.

상하이를 봉쇄한 이유를 이해하는 데 두 가지 사실이 중요하다. 첫째, 중국 중앙정부는 글로벌 백신 리더가 되고 싶어 하지만, 흔히들 중국산 백신은 다른 나라에서 생산, 투여되는 백신보다 덜 효과적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만약 봉쇄 조치를 완화해서 백신을 맞은 중국인의 사망률이 다른 나라의 백신 접종 인구보다 더 높게 나온다면 중국은 공개적으로 난처한 상황에 부닥칠 것이다.

둘째, 중국 지도부 내에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위를 믿는 자와 분권 정치를 선호하는 자 사이의 끊임없는 경쟁이 존재한다. 1950년도에 중국에서 일어난 처참한 일률화 정책인 ①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이 지나간 다음, 1978년 이후 중국의 개혁 정부는 지방정부에 의사 결정을 위임했다. 지방정부는 경제 정책에 관해 훨씬 더 많은 자치권을 부여받았고 중앙정부와의 경쟁도 장려받았다. 이런 ② 재정연방주의(Fiscal federalism)는 성장을 촉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지만, 한편으로 지방정부가 자치권에 관한 맛을 알게 해줬다.

이런 추세에 맞서기 위해 중앙정부는 2000년대 초반부터 거둬들이는 세금 대부분을 관료제 확대와 조세 집행 강화 같은 중앙 집권화에 투자했다. 그러나 지방정부의 이익이 항상 중앙정부의 이익과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에 재(再)중앙화는 많은 지방에서 인기를 얻지 못했다. 최근 ③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예로 들자면, 민족주의자들은 무역전쟁을 지지했지만 상하이와 같은 해안 제조업 도시들은 경제 손상을 입었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 스스로는 절대 추진하지는 않을 투자를 자원을 동원해 밀어붙일 수 있기 때문에 재중앙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급격한 인프라 개발처럼 말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중앙집권적 권력의 이점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1차 시기에 보여준 중국의 코로나19 대응이다. 빠른 봉쇄와 격리 의무화, 대규모 검사를 통해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감염률과 사망률을 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구 밀집도를 가진 중산층 국가가 달성한 대단한 업적이다.

그러나 상하이는 대규모 도시 봉쇄를 거부했다. 중국에서 가장 큰 경제 도시이자 1978년 이후 개혁의 빛나는 보석으로 여겨지는 상하이는 자유사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상하이 시민은 중국에서 가장 교육을 많이 받고 여행을 즐기는 부유한 집단이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에 상하이는 종종 연간 28%에 달하는 1인당 소득 증가율을 경험했다. 이는 베이징에 있는 중앙정부에 막대한 이득을 안겨줬으며 상하이가 중국 내 다른 도시보다 더 큰 발언권을 갖는 것을 익숙하게 만들었다. 경제와 행정 관리에 있어서 상하이 시민은 종종 베이징 시민보다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당연하든 안 하든) 이런 믿음은 상하이 경제 중요성과 맥을 같이한다. 이는 중앙정부가 상하이를 섬세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상하이가 팬데믹 1차 시기에 중앙정부의 봉쇄 조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상하이는 현재 더 유연한 접근방식을 추구해 전체 도시를 봉쇄하기보다는 개개인의 구역이나 건물을 봉쇄했다. 오미크론 감염자가 불가피하게 계속 나왔을 때는 서구 국가에서 많이 볼법한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를 나눠주는 방안을 도입했다. 중국이 궁극적으로 상하이 리더십을 압도했다는 사실은 중앙집권자들이 분권화된 지방정부 지지자에게 자신들의 권력을 확고히 하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누가 봉쇄로 인한 광범위한 경제·사회적 비용을 책임질 것인가. 감염률이 높아지도록 내버려 둔 상하이에 책임을 물을 것인가, 아니면 도시를 갑작스레 봉쇄로 몰아넣은 사람들에게 물을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중국의 재중앙화 노력이 가져올 미래를 알리는 지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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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마오쩌둥(毛澤東) 전 중국 주석 주도하에 1958년부터 1960년 초 사이에 일어난 경제 고도성장 정책이다. 노동력 집중화 산업을 추진했다. 중국 내부적으로 7년 안에 영국을, 8년 혹은 10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는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공업 생산 지표를 높였다. 급격한 공업 노동력 수요에 따라 농촌에서 과도한 인력을 강제로 차출했고, 그 결과 도시 인구가 급격히 늘어 필수품이 부족하게 됐다. 노동력을 잃은 농촌의 농업 생산력은 급격히 저하됐고, 여기에 흉년까지 겹치면서 1960년에는 2000만 명이 아사했다. 결국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을 포기했고, 이는 그의 권위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재정연방주의는 정부 기능과 재정 관계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또는 주정부)가 나눈 것을 뜻한다. 즉, 재정 분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용어는 1959년 독일 태생의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머스그레이브가 도입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재정이 분권되면 지역 차이를 고려할 수 있고 정책 계획과 행정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이어졌던 미·중 무역전쟁을 말한다. 2018년 3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미국의 화웨이 제재와 중국의 희토류 수출제한 시사 등으로 관세에서 기술 문제로 확대됐다. 또 미 국방부가 2019년 6월 내놓은 보고서에 대만을 국가로 명시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뜨리면서 체제 문제로까지 확산했다. 이후 무역전쟁은 환율전쟁으로까지 번졌지만, 이듬해 10월 11일 양국이 무역 협상에서 부분적으로 합의하면서 휴전 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2020년 1월 15일 미·중 양국이 서명한 1단계 무역 합의를 이행하지 않자 미국은 2월 7일 중국 33개 기업·기관을 수출통제 대상에 올리는 등 압박의 강도를 단계적으로 높였다. 이 때문에 미·중 간 2차 무역전쟁 발발이 우려되고 있다.

낸시 첸 / 정리 : 이다비 기자, 김보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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