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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요즘 달러화 환율이 심상치 않다. 달러당 1300원대를 오르내리자 외환위기 재발 우려가 다시 대두되고 있다. 원화 가치 하락의 원인을 쫓다 보면 무역수지 적자의 배경인 수입 곡물과 에너지 등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을 마주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곡물과 에너지 공급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선물 시장에서 곡물 가격은 지난 3월 말 전년도 평균 가격 대비 곡물에 따라 30~60%까지 상승했다. 세계 곡물 수출 4위인 우크라이나의 생산량 감소와 수출 통로인 흑해 항로가 막혔기 때문이다. 러시아 역시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이며 보리, 옥수수, 해바라기유 등의 주요 수출국이다. 전쟁 이후 러시아 곡물 수출은 서방 제재와 자발적 수출 제한 조치로 급격히 감소했다. 곡물 가격이 급등하자 주요 곡물 수출국들이 수출 제한 조치를 하여 식품 가격 상승이 빨라졌고, 아르헨티나, 헝가리, 이집트, 불가리아, 인도네시아, 인도 등 곡물 수출국은 수출 통제를 선언했다. 이처럼 곡물이 귀할수록 각국이 자국의 자원을 무기화하는 경향이 강해져 국제 곡물 가격은 당분간 더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원유 가격(유가)도 상승하고 있다. 유가는 오래전부터 정치 상황에 의해 좌우됐다. 1970년대 1, 2차 오일쇼크는 중동 국가들과 이스라엘 지지국 간 정치적 갈등이 원인이었다. 그 이후 중동 지역에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유가가 영향을 받았고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사실상 원유 생산량을 담합해 결정하는 국제 카르텔로 기능하고 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의 원유 수출이 제한되면서 유럽 시장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유가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지난해 5월 대비 국제 유가는 배럴당 평균 40달러 올라 100달러를 넘어섰다. 

글로벌 시장의 곡물과 에너지 가격 상승은 국민의 생활물가를 상승시킬 뿐 아니라 우리나라 무역수지를 악화하는 주요 요인이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곡물 수요는 2104만t이며 이 중 70%에 해당하는 1558만t을 수입했다. 세계 곡물 수입국 7위에 해당한다. 곡물 자급률은 20.2%에 불과하다. 국제 곡물 시장의 가격 변동 충격이 그대로 국민 생활에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올해 2분기 식용 곡물 수입단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43.7%, 사료용 곡물은 47.3% 올랐다. 매달 곡물 수입을 위해 8억달러가 넘는 돈을 지불하고 있다. 

에너지 부문은 더 심각하다. 한국석유공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9억6015만 배럴을 수입한 세계 5위 원유 수입국이다. 석유 제품 수입까지 합하면 14억 배럴에 달하고 수출 규모는 5억 배럴이어서 순수입은 9억 배럴 수준이다. 현재 유가가 1년 전에 비해 배럴당 평균 40달러 상승했으니 단순 계산해도 360억달러의 무역 적자 요인이 발생한 것이다. 아울러 원자재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면서 19개월간 연속 무역수지 흑자 행진을 이어오던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적자로 전환했다. 올해도 1월과 3월에 적자를 시현했다. 이 추세라면 13년간 지속해온 무역수지 흑자가 적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무역수지 적자는 자본수지까지 악화시키는 단초를 제공한다. 외국인의 국내 투자 행태를 보면 무역수지가 흑자이면 환율 하락 이득을 기대하고 우리 시장에 투자를 늘리고, 무역수지 적자 시에는 환율 상승을 우려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그 결과 무역 적자는 더 큰 국제수지 적자를, 무역 흑자는 더 큰 국제수지 흑자를 유발하여 변동성을 확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에도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런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원화 가치 하락의 배경이다.

아직은 4월 말 기준 4495억달러(약 584조 3500억원)에 달하는 외환 보유액이 위기를 방어하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하지만 금융시장은 한 번 신뢰가 무너지면 돌이키는 것이 어렵다.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지 않도록 발 빠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 외환 시장 안정화는 윤석열 정부를 시험하는 첫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