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남북 단일팀 ‘코리아’가 1991년 4월 29일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체전에서 중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뒤 시상대 맨 위에 섰다. 왼쪽부터 이유성(남) 코치, 조남풍(북) 코치, 홍차옥(남), 류순복(북), 현정화(남), 리분희(북) 선수. 사진 한국프로스포츠협회
탁구 남북 단일팀 ‘코리아’가 1991년 4월 29일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체전에서 중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뒤 시상대 맨 위에 섰다. 왼쪽부터 이유성(남) 코치, 조남풍(북) 코치, 홍차옥(남), 류순복(북), 현정화(남), 리분희(북) 선수. 사진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채종훈 한국프로 스포츠협회 사무총장 전 대한항공 중국지역 본부장·한국지역본부 본부장
채종훈 한국프로 스포츠협회 사무총장 전 대한항공 중국지역 본부장·한국지역본부 본부장

기원전 490년, 한 젊은 병사가 산과 들, 언덕을 쉼 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페이딥피데스(Pheidippides). 페르시아군과 아테네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에서 아테네가 승리하자 42.195㎞를 쉼 없이 뛰어 아테네에 승전보를 전한 전령이 바로 이 병사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마라톤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시작됐던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엔데믹(endemic·감염병 주기적 유행)을 향해 가고 있다. 지루한 싸움이 그 끝을 보이고 있다. 누가 아테네의 페이딥피데스처럼 우리에게 승전보를 알려줄지 궁금해진다.

팬데믹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지난 2년간, 전 세계 국가들 간 교류는 제한됐으며, 이로 인한 세계 경제가 후퇴하였음은 물론, 국민의 피로가 쌓였다. 코로나19는 정점을 찍고 진정세를 보이는 양상이지만, 미·중 간 갈등으로 비화된 지정학적 갈등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심화되는 양상이다. 그야말로 지정학 혼돈의 시기다. 다가오는 엔데믹 시대를 맞이해 스포츠를 통한 정치·경제 외교의 회복을 제안해 본다.

과거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은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외교적 분쟁 해결을 위해, 민심을 하나로 뭉치기 위해, 스포츠를 활용하곤 했다. 스포츠는 공동체 가치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민국가의 형성 초기에는 국가와 민족의 통합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스포츠 경기는 국가와 민족 간 갈등을 완화하고 해소하는 공식적인 장(場)으로 기능해왔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앞다투어 올림픽은 물론 월드컵 경기 등을 자국에 유치하고자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중국이 북한에 군사적 지원을 했다는 이유로 미국은 세계 무대에서 중국을 고립시키는 외교 정책을 폈다. 그러나 1969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닉슨은 당시 중국과 소련 사이의 분쟁을 틈타 중국과 대화 창구를 만들고자 했으며,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 또한 미국과 관계 개선을 희망하고 있었다. 이때 탄생한 것이 그 유명한 1971년의 ‘핑퐁외교’다. 스포츠 교류를 통해 국가 간 관계를 개선한 대표적인 사례다.

1990년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통일축구대회 당시 한국팀 선수단 고문 자격으로 동행한 이회택(오른쪽) 고문이 아버지 이용진씨를 만나 감회 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 5세 때 아버지와 헤어진 이 부회장은 40년 만에 상봉을 했다. 사진 한국프로스포츠협회
1990년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통일축구대회 당시 한국팀 선수단 고문 자격으로 동행한 이회택(오른쪽) 고문이 아버지 이용진씨를 만나 감회 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 5세 때 아버지와 헤어진 이 부회장은 40년 만에 상봉을 했다. 사진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우리나라 역대 정부에서도 스포츠 교류를 통해 외교 관계 개선은 물론 남북 관계 개선을 지속적으로 시도해 왔다. 한·일 축구대표 정기 교류전 및 한·일 청소년 스포츠 교류 행사 그리고 남북한 축구대회 개최, 단일팀 구성 등이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특히 남북 간 관계 개선을 위한 스포츠 교류는 지속돼 왔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보면, 1990년 10월 11일과 23일 두 차례에 걸쳐 남북한 축구대표팀이 서울과 평양에서 펼친 축구대항전이다. 이 대회의 목적은 스포츠 교류를 통해 민족의 동질감을 회복하고 통일의 염원을 다시 한번 다짐하는 것이었다. 

평양에서의 1차전 때 당시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던 이회택 감독이 고문 자격으로 동행해 아버지 이용진 옹을 만나 남북의 스포츠 교류가 이산가족 상봉으로 이어져 7000만 겨레에게 희망을 주기도 했다. 

또 남과 북이 단일팀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한 1991년의 탁구와 축구에서는 ‘North’도 ‘South’도 아닌 ‘Korea’의 이름으로 하나가 돼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포르투갈에서 펼쳐진 20세 이하(U-20)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1991년 4월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 남북 단일팀이 구성됐다. 남한의 이유성 코치를 주축으로 남한의 현정화, 북한의 리분희가 분전한 남북한 단일팀은 여자단체전에서 세계랭킹 1, 2, 3위 선수를 앞세워 9연패를 노리는 ‘만리장성’ 중국을 저지하며 우승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의 남북 단일팀 돌풍은 1991년 6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로 연결됐다. 북한 안세욱 감독, 남한 남대식 코치와 18명의 선수로 구성된 단일팀은 조별 리그에서 강호 아르헨티나를 1 대 0으로 꺾는 등 1승1무1패, 조 2위로 8강까지 올랐다. 박종환 감독이 이끈 ‘붉은 악마’가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달성한 4강 신화를 잇는 이변이자 쾌거였으며, 남과 북이 가지고 있던 이질감 해소에 많은 역할을 했다. 동시에 남과 북은 하나가 된다면 세계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찬 사실을 국민의 가슴에 다시 한번 새기는 계기가 됐다.

이후로도 남북 간의 스포츠를 통한 관계 개선 시도는 지속돼 왔는데, 새 천년을 맞아 처음으로 열린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6년 토리노 올림픽 개·폐회식 그리고 최근에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북한이 동시 입장을 하기도 했다.

2018년 4월 8일 화성실내체육관에서 한국 여자배구 올스타와 태국 여자배구 올스타의 슈퍼매치가 열렸다. 한·태 슈퍼매치는 배구 경기와 문화교류 콘서트가 동시에 열리며 스포츠와 문화를 융합한 새로운 한류 콘텐츠의 성공적 사례로 남았다. 사진 한국배구연맹
2018년 4월 8일 화성실내체육관에서 한국 여자배구 올스타와 태국 여자배구 올스타의 슈퍼매치가 열렸다. 한·태 슈퍼매치는 배구 경기와 문화교류 콘서트가 동시에 열리며 스포츠와 문화를 융합한 새로운 한류 콘텐츠의 성공적 사례로 남았다. 사진 한국배구연맹

혼돈의 시대, 스포츠가 희망 되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미·중 간 갈등은 물론 남북 간 갈등, 사회적으로도 적대적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는 혼돈의 시대다. 세계 정치·외교 질서가 재편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지금, 스포츠 외교를 통해 북한은 물론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 관계 개선을 도모해 볼 만하다. 특히 올해는 제4회 한·중·일 스포츠장관회의가 한국에서 열린다. 스포츠를 상호 관계 개선의 장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꼬인 외교관계를 정상화할 뿐 아니라 스포츠가 흩어졌던 국민의 마음을 다시 하나로 모으고, 위축됐던 경제 회복에 활력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이제 본격적인 스포츠의 계절이 돌아왔다. 마침 팬데믹의 제한된 생활 환경에서 조금씩 예전의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프로 스포츠 경기가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방역 수칙 완화로 스포츠 경기장에서의 커다란 함성이 다시 울려 퍼지고 있다. 금지됐던 육성 응원과 함성이 가능해져 경기장마다 열기가 뜨겁다. 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팀과 선수들의 플레이에 뜨거운 박수와 목소리로 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다.

해외에서는 우리의 자랑 손흥민 선수가 아시아 선수 최초로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왕이 되었다. 밤잠을 설치고 숨죽여 경기를 시청한 수많은 국내 축구 팬의 가슴을 벅차게 했다. 우리 국민에게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만들어주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해외 골프 경기에서의 희소식도 지속적으로 들려오고 있다. 이렇듯 스포츠는 국위 선양은 물론 국민으로 하여금 희망을 갖고 재도약할 수 있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경제는 심리다’라는 말이 있다. 경제 문제를 경제로만 해결하지 말고, 스포츠를 통해 국민의 긍정 심리를 불러일으켜 많은 사람이 ‘자신감’과 ‘희망’을 되찾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경제 회복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아테네에 승전보를 알려 시민으로 하여금 희망을 꿈꾸게 한 페이딥피데스처럼, 스포츠가 상처받은 국민의 심리 회복은 물론 팬데믹으로부터 국민 승리를 알리고 다시 한번 희망을 꿈꾸게 하는 시발점이 되기를 소원해 본다.

채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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