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를 연준 의장으로 지명한 이후 트럼프는 직간접으로 파월에게 경기 부양 압력을 넣었다. 파월은 2020년 2월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사태를 맞자 과감한 금리 인하와 양적 완화로 트럼프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 결과,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불과 14년 만에 연준의 통화 발행액은 무려 10배가 넘는 9조달러(약 1경1232조원)에 육박했다. 게다가 미·중 무역 전쟁에 따른 공급망 붕괴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가·곡물·원자재 가격이 모두 치솟아 미국은 상당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파월과 연준은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물가 상승이 계속 이어지자 파월은 지난해 말 “이제 진짜 위험하다”며 2022년 3월까지 자산매입 축소를 끝내고 기준금리 인상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런 파월의 태도로 인해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과 필자를 비롯한 미국의 유명 경제 인사들은 “연준의 인플레이션 대응은 실수”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필자는 이번 칼럼에서 파월이 ‘인플레이션 투사’로 불렸던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처럼 적극적인 긴축 정책을 발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롬 파월(왼쪽) 미 연준 의장과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사진 로이터뉴스1·블룸버그
제롬 파월(왼쪽) 미 연준 의장과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사진 로이터뉴스1·블룸버그
스티븐 로치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  뉴욕대 경제학 박사,  전 모건스탠리 아시아지역  회장, 전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연구원
스티븐 로치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 뉴욕대 경제학 박사, 전 모건스탠리 아시아지역 회장, 전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연구원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참 안쓰럽다. 미국은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이제 파월은 그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는 1980년대 연준 의장이었던 ① 폴 볼커가 자신의 롤 모델이라며 존경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폴 볼커를 매우 잘 알고, 파월은 폴 볼커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볼커는 전형적인 미국 공무원이었다. 그는 싼 담배를 피우고 구겨진 양복을 입었으며 워싱턴 권력층의 화려함을 몹시 싫어했다. 그는 치명적인 대(大)인플레이션을 공격하는 한결같은 통화 정책을 유산으로 남겼다.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연준 의장을 지낸 벤 버냉키의 지시로 새로운 도구인 대차대조표 조정, 특별한 대출 기관 그리고 결과 의존적인 정책 신호의 ② ‘선제적 가이드’ 등을 갖춘 현대의 연준과 다르게 과거 볼커의 접근법은 간단하고 직접적이었다. 통화 정책은 금리로 시작하고 금리로 끝났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네가 금리에 따라 행동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연준을 떠나라.”

물론 1980~81년 볼커가 기준금리를 전례 없는 수준(21%)으로 올리자, 그가 사퇴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많아졌다. 건축업자, 농부, 시민 단체, 국회의원이 탄핵을 외쳤지만, 볼커의 강력한 긴축 정책을 막진 못했다. 금리를 낮추기에는 이미 한잠 늦었기 때문이다. 당시 연준은 볼커의 전임자인 ③ 아서 번스 전 연준 의장의 지휘 아래 ‘인플레이션은 어쩔 수 없는 미국 경제 구조의 한 부분’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통화 정책을 통해 물가 수준을 조정하는 것보다 노동조합의 영향력, 생계비 임금 지수, 환경 보호, 산업 안전, 연금 혜택으로 발생한 비용을 규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받아들여지던 때였다. 번스는 유가와 식량 가격 충격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쉬운 미 경제의 제도적인 결함을 강화했다고 주장했다. 연준을 탓하기보다 시스템을 탓하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976년 8월 볼커가 연준 의장 자리를 넘겨받았을 때 받았을 당황스러움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당시 1980년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4.6%로, 이는 전년 대비 11.8% 폭등한 수치였다. 볼커는 미국 인플레이션 기세를 꺾을 기준금리 문턱을 찾아야 했다. 볼커는 연준의 가격 안정 권한을 공식화한 1978년 험프리-호킨스 법(미국에서 완전 고용과 균형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만든 법)을 이용해서 통화량을 정책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지원을 끌어내고는 이내 행동에 들어갔다. 연준은 기준금리를 1979년 7월 10.5%에서 1980년 4월 17.6%까지 올렸다. 이후 1981년 6월 19.1%로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월별 최고치의 통화 정책 긴축이 재개됐다. 그제야 두 자릿수 물가 상승 열기가 꺾였다. 

1982년 말, 미국 경기가 극심한 불황에 빠지면서 연간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4% 아래로 떨어졌다. 연준은 기준금리를 낮추면서 강력한 긴축 정책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연준은 여전히 미국을 단단히 사로잡은 인플레이션 심리를 의식하면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인플레이션 고비를 한차례 넘긴 볼커는 연준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 의장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40년이 흘렀다. 그리고 파월의 문제는 분명하다. 오늘날 세계는 예전과는 확실히 다르지만 현대 연준은 번스 시대에 연준이 행한 실수를 잊은 듯하다. 지난해 (파월을 비롯해) 미국의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이 초기 인플레이션을 일시적인 것으로 봤을 때, (번스의) 데자뷔를 보았다. 연준은 코로나19 쇼크를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다고 간주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통화 정책을 시행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책 실수였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나고 경제가 빠르게 재개되자 대규모 재정 부양책으로 늘었던 수요는 보복 심리로 더 타올랐다. 그리고 지금은 만성적인 공급망 파괴에 직면해있고, 우리 세대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직면했다.

파월의 문제는 실질 금리 인플레이션 측면에서 보면 더 분명해진다. 그가 연준을 이끈 51개월 동안(2022년 4월 기준) 기준금리는 평균 -1.95%를 기록했다. 이는 현시점에 맞지 않는다. 비교하자면, 기준금리는 번스 시절 8년간 평균 -0.05%, 버냉키 시절 8년간 평균 -0.7% 그리고 파월의 전임자 재닛 옐런 시절 4년간 평균 -0.9%였다. 더욱이 볼커 시절 8년간은 평균 ‘플러스(+)’4.4%였다. 파월의 연준이 뒤늦게 인플레이션을 심각하게 여기고 신속하게 움직이겠다고 했지만 나는 기준금리가 2023년까지 미국의 인플레이션율보다 낮게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파월 연준 의장의 재임 59개월째가 되는 오는 12월 기준금리는 평균 -2.25%에 이를 것이다. 

나는 파월이 볼커의 통화 긴축 정책을 따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다만 연준이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와 같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피하고 싶으면, 볼커의 4.4% 기준금리와 파월의 -2.25% 기준금리 사이의 격차를 깨달아야 한다. 광범위하고 부드러운 경제 정책이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건 망상이다. 파월은 볼커처럼 그의 임무를 새겨야 한다. 그래야만 볼커와의 비교가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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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8월부터 1987년 8월까지 재임한 연준 의장. ‘인플레이션 투사’로 불린다. 그가 재임할 당시 1980년대 미국 경제는 매년 10%가 넘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었다. 볼커는 기준금리 4%포인트 인상을 시작으로 과감한 초(超)고금리 정책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1979년 9월 11.5%였던 미국 기준금리는 반년 만인 1980년 3월 20%까지 급등했다. 시중 돈줄이 마르면서 주식과 집값이 폭락했고, 이는 기업의 줄파산과 실업률 폭등으로 이어졌다. 연준 건물로 시위대가 몰려왔고 볼커는 살해 위협까지 받았다. 경기 침체라는 희생을 치른 볼커는 결국 1980년 13.5%였던 물가 상승률을 1983년 3.2%로 낮췄고, 인플레이션이 잡히자 미국 경제는 안정 궤도로 접어들었다.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라고도 한다. 미래 지침이란 뜻으로 중앙은행이 앞으로의 통화 정책 방향을 외부에 알리는 조치를 뜻하는 말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영국 등 중앙은행들이 시장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 도입한 통화 정책 수단이므로, 시장 혼란을 최소화하고 통화 정책의 유효성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과거 미 연준은 2012년 12월 실업률 6.5%, 기대 인플레이션 2.5%가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는 조건이라며 처음으로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했다.


1970년 2월부터 1978년 1월까지 재임한 경제학자 출신 첫 연준 의장. 번스 재임 당시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날로 치솟았다. 번스는 인플레이션을 막으면 고용 성장이 저해된다고 생각해 정부가 물가를 낮게 유지하도록 개입하는 소득 정책을 옹호했다. 번스는 물가가 올라도 긴축 정책을 쓰지 않고 통화팽창 정책을 이어갔는데, 이때 인플레이션 수치를 가능한 한 낮게 보이기 위해 ‘근원인플레이션지수’를 만들었다. 이는 소비자물가지수에서 변동성이 큰 식음료와 유가를 제외한 것으로, 근원인플레이션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달러화가 무제한 발행돼 인플레이션 폭등을 불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