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로고. 사진 블룸버그
테슬라 로고. 사진 블룸버그
김용석 성균관대전자전기공학부 교수 반도체공학회 부회장,전 삼성전자 상무
김용석 성균관대전자전기공학부 교수 반도체공학회 부회장,전 삼성전자 상무

애플과 테슬라는 시스템반도체를 자체 개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제품에 기존 범용 반도체를 사용하면 차별화된 성능을 갖기 어렵고, 타사와 경쟁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기존 범용 반도체는 말 그대로 범용성은 뛰어나지만 제품 서비스 구현에 필요한 고성능 연산이 어렵고, 필요한 특정 용도에 맞게 적용하기에는 비효율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기성복에 비유되는 메모리반도체와 달리, 시스템반도체는 고객의 주문에 따라 만드는 맞춤복에 비유된다. 시스템반도체에서 ‘시스템’의 의미는 ‘제품(세트)’을 뜻한다. 그러므로 제품을 만드는 제조사가 고객이다.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65% 정도를 차지 할 정도로 큰 규모로 성장했다. 본래 반도체 칩 개발은 반도체 회사만의 전유물이었지만 반도체 기술 발전으로 설계와 제조의 분리가 가능해졌다. 반도체 설계는 시스템을 잘 아는 제품 제조사의 상품 개발자가 직접 맡게 됐고, 반도체 회사는 칩을 제조하는 형태의 새로운 역할 분담이 이뤄지게 됐다. 시스템반도체 산업이 설계전문기업(팹리스)과 제조전문기업(파운드리)으로 나뉜 배경이다. 이제는 제품 제조 기업들이 팹리스 업체와 손잡고 반도체 설계를 주도하고, 반도체 제조는 파운드리 업체 선택을 통해 얼마든지 가능해졌다. 이 때문에 글로벌 제조 기업들이 자체 시스템반도체 개발에 나서고 있다. 


자체 시스템반도체를 탑재한 애플 노트북. 사진 블룸버그
자체 시스템반도체를 탑재한 애플 노트북. 사진 블룸버그

자체 반도체 탑재로 성능 높인 애플·테슬라

대표적인 기업이 애플이다. 애플은 세계 최고의 시스템반도체 개발사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애플은 PC에 들어가는 칩을 공급하는 인텔과 결별하고 자체 시스템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그 결과물이 애플의 컴퓨터인 맥(Mac)에 들어가는 ‘M1’이라는 고성능 시스템반도체 칩이다. M1은 CPU(중앙처리장치)와 GPU (그래픽처리장치), 신경망처리장치(NPU), 메모리(RAM) 등을 하나의 칩으로 통합한 시스템반도체다. 이 반도체 칩은 모바일 프로세서에 주로 쓰던 5㎚(나노미터) 미세공정을 적용해 칩 면적dms 줄이면서 전력 효율성은 높였다. 

그 후에도 M1 프로, M1 울트라를 내 놓았고, 마침내 M2를 내 놓았다. M2는 기존 M1 대비 CPU 속도를 18%, GPU 성능은 35% 끌어올린 제품이다. 이어 더욱 성능을 높인 M3 시스템반도체 칩도 개발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애플은 시스템반도체부터 운영체제(OS), 하드웨어까지 자신들이 원하는 성능을 발휘하기 위한 기술을 독자 개발하고 있다. 애플은 2012년부터 이미 독자적으로 시스템반도체 칩 개발을 시작했고, 이때부터 꾸준히 반도체 관련 회사를 인수하고 최고의 전문가를 영입하면서 기술력을 높였다. 

아이폰에도 애플이 자체 제작한 시스템반도체가 들어간다. 애플이 중앙처리장치(AP)를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자사 제품에 사용하고 있는 이유는 오포, 비보, 샤오미 같은 중국 기업들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앞세워 중저가폰뿐만 아니라 프리미엄폰에도 도전하고 있어서다. 애플은 중국 기업들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자사 프리미엄폰 성능을 높이고, 차별화된 기능을 넣기 위해 자체 제작한 시스템반도체를 넣고 있다. 중국 스마트폰이 전력 소모와 발열이 많은 범용 반도체인 GPU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애플은 빠른 연산 성능과 적은 전력 소모가 특징인 인공지능(AI) 코어 시스템반도체를 탑재하고 있다. 애플의 아이폰에 들어가는 스마트폰 AP인 A시리즈는 최고의 성능을 자랑한다. 

물론, 자체 반도체 칩을 개발하는 회사가 애플만 있는 게 아니다. 테슬라도 자사 차량에 완전자율주행(FSD∙Full Self Driving) 시스템반도체 칩을 자체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다. 자율주행차의 핵심은 시스템반도체와 구동하는 소프트웨어에 있다. 차량 전방에 보행자나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을 피해 갈 것인지 그냥 갈 것인지 혹은 어떤 길이 안전한지 위험한지 등을 판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테슬라는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하는 반도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독자 개발한다. 사업 초기에는 모빌아이, 엔비디아에 의존했지만 2019년부터 자율주행 관련 반도체와 소프트웨어를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이것이 테슬라가 전기차 및 자율주행차 업계에서 최고 회사로 인정받게 된 이유다. 테슬라는 또 반도체 공급난의 피해를 가장 적게 본 업체로도 꼽힌다. 자체 개발한 시스템반도체를 사용해 원활한 물량 확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여러 가지 기능을 통합한 한 종류의 시스템반도체를 사용하지만 타사는 스피커제어, 음성 인식 등 각각 기능에 따라 다른 많은 종류의 시스템반도체 프로세서 칩을 사용한다.

이 밖에도 아마존과 구글의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MS)도 클라우드용 서버용 시스템반도체 칩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 이유는 좀 더 싸게 자사 서비스에 최적화한 반도체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시스템반도체. 사진 셔터스톡
시스템반도체. 사진 셔터스톡

제품 제조사 팹리스와 원팀으로 반도체 개발 필요

삼성전자가 TV 분야에서 전통적 강자였던 일본의 소니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TV 기술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시기에 자체 개발한 시스템반도체를 탑재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했기 때문이다. 대만의 팹리스 업체인 미디어텍의 성공 요인도 5세대(5G) 스마트폰 통신 규격 변화 시기에 5G 반도체 칩을 가장 빠르게 오포, 비보, 샤오미 같은 기업에 제공한 점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사물인터넷(IoT), AI 기술은 자율주행차, 스마트팩토리, 스마트시티, 디지털 헬스케어 등 새로운 미래 먹거리 사업을 만들었다. 이러한 미래 사업의 경쟁력은 시스템반도체에서 나온다. 최근 산업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한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가 본격화하면 대용량 데이터 처리와 연산이 필요해져 메모리반도체와 고성능 프로세서 시스템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것이다. 시스템반도체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주도해야 한다. 시스템의 창의적인 아이디어 원천은 제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팹리스와 한 팀으로 긴밀하게 시스템반도체를 개발해야 한다. 최근 삼성전자는 모바일경험(MX)사업부(세트)와 시스템LSI사업부(반도체)가 공동으로 좀 더 긴밀하게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서 2025년에는 애플을 넘어서는 갤럭시 전용 AP 상용화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시스템반도체 1등을 위한 당연한 행보다. 애플과 테슬라 같은 미국 기업들이 자체 시스템반도체 개발에 집중한 것은 반도체가 제품 경쟁력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제조업 국가다. 제조업 발전을 위한 전략에는 시스템반도체의 자체 개발이 반드시 함께 고려돼야 한다. 제품 사업과 시스템반도체 사업을 동시에 바라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