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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수형 맥킨지 한국사무소 부파트너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한국 공인회계사, 현 맥킨지  한국오피스 기업혁신 프랙티스 및 구매 프랙티스 리더
엄수형 맥킨지 한국사무소 부파트너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한국 공인회계사, 현 맥킨지 한국오피스 기업혁신 프랙티스 및 구매 프랙티스 리더

한마디로 난리통이다. ‘인플레이션’은 지난 1년간 우리가 만나 본 대부분의 경영진이 털어놓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전례 없는 원자재가 상승과 공급망 병목 현상으로 글로벌 경제는 몸살을 앓고 있다. 런던 금속 지수는 두 배 상승했으며, 유럽 천연가스 현물 가격은 팬데믹 이전 대비 12배를 기록했다.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자동차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업체들은 제품을 1년이나 지난 뒤 고객에게 인도할 수 있다. 물류난으로 해상 운임은 급상승 중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여파로 밀 가격은 지난해보다 60% 이상 올랐고, 밀 생산량 2위 국가인 인도는 식량 안보를 내세워 밀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한때 팜유 수출 금지령으로 전 세계 식용유 시장을 뒤흔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전 세계적인 이상 기후는 식량 위기로 이어지고 있어, 이것이 결코 단기적이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글로벌 거시 경제 임팩트는 특히 국내 기업에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중간재를 수입해 부가가치를 만들어 해외로 되팔던 수출 중심의 한국 제조업은 오픈소스 플랫폼을 활용하는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방법론’, 적시(just-in-time) 구매, 공급망 다변화 등의 노력을 통해 생산성을 제고하고 투입 원가를 절감해 왔다. 

그러나 현재의 원자재가 폭등과 공급망 이슈는 제조업의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식량 자급률이 40% 중반에 불과한 한국은 곡물 및 식자재 가격 변동성에 상시 노출돼 있고, 이는 소비재 기업들의 수익성과 직결된다. 여기에 더해 원자재가 상승 압력은 소비자 물가 지수 상승으로 이어지고, 급기야 임금 상승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국 소비자 물가 지수 상승률은 올해 5월, 전년 동월 대비 5.4%를 기록해 14년 만에 최고치에 달했다. 금년 1분기 대기업 근로자 임금 상승률은 13%를 기록했다. 즉 소비자 물가가 뛰면서 임금이 오르고 다시 물가를 자극하는 ‘임금 인플레이션’이 다가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최고경영자(CEO)의 가장 중요한 어젠다로 올라온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최고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맥킨지의 정기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붕괴’가 코로나19 영향력을 제치고 향후 기업 성장을 방해하는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꼽혔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을까. 오히려 현 상황은 국내 기업들이 전략적이며 담대한 목표를 수립하고, 새로운 인재 유치 및 신규 역량 개발을 촉진하는 동시에 디지털 등 새로운 툴(tool)과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매 조직은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해 있다. 더 이상 연간 입찰제안요청서(RFP)로 매년 3%의 가격 절감 효과를 꾸준히 얻을 수 있다고 목표를 세우는 것이 실행 가능한 운영 모델이 되는 세상이 아니다. 비용 증가 이슈를 해결하려면 다양한 솔루션을 통해 다각도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단기, 중기 및 장기에 걸친 주요 활동을 단계적으로 설계하고 실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향후 6개월간 해야 할 첫 번째 단계는 구매하는 자재, 부품, 서비스의 실제 비용을 사실에 기반해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자동차 회사의 경우, 원부자재의 가격 변화를 추적하는 대시보드를 만들고 상세 원가 분석 데이터를 활용해 가격 인상이 실제 공급 업체 비용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정량화한다. 이러한 대시보드는 기업이 공급 업체와 사실에 기반한 협상을 수행하는 데 도움 되며 과도한 가격 인상을 방지하고 가격 인상의 영향이 양사 간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한다. 또한 경영진은 가격 결정 및 구매 전략을 효과적으로 수립하고, 주요 품목의 안정적 공급을 확보하며, 제품 설계 또는 사양을 변경하여 비용을 절감할 기회를 빠르게 찾을 수 있다.

다음으로 향후 6~12개월간 해야 할 중기적 조치는 사업 운영의 효율성, 품질 및 생산성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업은 동일한 노동력, 자재 및 에너지 투입으로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 이는 린(Lean)과 같은 기존의 아날로그 접근 방식과 4차 산업 혁명 기술 등 디지털 방식의 조합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장기적 조치를 해야 한다. 향후 2~3년 내 가치사슬과 비즈니스 모델 모두에 대한 구조적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많은 글로벌 기업은 기존 생산 국가의 임금이 급속도로 상승함에 따라 생산지를 새로운 저비용 지역으로 빠르게 옮기고 있다. 일부 회사는 부품 자재를 원생산자로부터 직접 구매하기 위해 유통 업체 및 중간 공급 업체를 우회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수직적 통합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선도 자동차 OEM들은 1차 리튬 이온 베터리 생산업체 및 전기 자동차 핵심 부품에 대한 투자를 공격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넷제로(net-zero·탄소 중립) 전환의 일환으로, 유럽의 트럭 및 건설 장비 제조 업체는 화석 연료가 아닌 수소를 사용해 제조된 ‘녹색 강재(鋼材)’ 생산 업체와 장기 물량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앞으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단기, 중기 및 장기적 조치를 실행하고 조율하는 것은 모든 기업에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밸류체인의 한 부분에서 내려진 결정은 사업 전반에 임팩트를 가져오기 때문에 교차 기능적(cross-functional) 관점이 필수다.

이를 수행하는 한 가지 방법은 비용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컨트롤 타워는 전사적인 절감 활동 로드맵을 설계하고 우선순위화하며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기능 간 협업을 위한 촉매 역할을 할 것이다.

미래에도 인플레이션이 중장기적으로 지속한다면, 비용 상승에 대한 노출을 줄이기 위한 결정을 신속하고 단호하게 내리는 기업은 성장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 것으로 판명되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 위에서 논의한 접근 방식의 진정한 힘이다. 비용 상승에 대응하는 데 도움 되는 수단은 가격 하락 시에도 유효하다. 예를 들어 구매 가격이 떨어질 때, 정확한 원가 분석 모델은 구매팀이 공급 업체로부터 절감액의 공정한 몫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디지털 툴은 투입 자재, 노동력 또는 에너지 가격 변화에 관계없이 원가 및 품질 경쟁력과 생산 유연성을 개선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