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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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진  플랫바이오 대표 서울대 의학 박사,  전 텍사스 주립대 휴스턴 MD 앤더슨 암센터  암생물학부 암전이 및  임상이행연구센터 교수
김선진 플랫바이오 대표 서울대 의학 박사, 전 텍사스 주립대 휴스턴 MD 앤더슨 암센터 암생물학부 암전이 및 임상이행연구센터 교수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차츰 정상화되면서 바이오산업계에 종사하는 지인들과 크고 작은 모임도 조금씩 늘었다. 요즘 그런 모임에서 단골로 오르내리는 단어가 ‘흥행’이다. 

바이오산업계에선 흥행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쓰일까. 일반적으로 비상장사가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하는 주식 공모, 혹은 상장사가 운영비나 연구개발비 확보를 위해서 하는 유상 증자 등에 얼마나 많은 기관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냈는가를 일컬을 때 쓰인다. 상장하는 회사가 발행하는 주식에 대한 수요를 예측할 때 주식을 사고자 하는 기관 수와 요구하는 물량이 많을수록, 희망 가격이 높게 결정될수록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다음 과정인 개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공모 과정에서도 주식을 사고자 하는 투자자의 절대 숫자가 많고, 증거금이 많이 예탁될수록 성공적이라고 평가한다. 다시 말해 청약 경쟁률이 얼마나 되는가, 희망 주식 매수 가격이 얼마로 결정되는가를 기준으로 흥행의 성패가 정의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상장사의 유·무상 증자의 경우, 그리고 회사의 성과와 호재를 알리는 언론 기사 등의 반응이 긍정적일 때 흥행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한다. 

비상장사든 상장사든 흥행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상장사는 상장 심사의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하고, 상장사 역시 자금 마련을 위한 유상 증자나 전환 사채 발행 등을 위해 투자자들에게 (돈을 걸어도) 안전하다는 확신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비상장사가 상장하는 경우부터 살펴보자. 상장을 시도하는 회사는 예외 없이 연구개발 인력의 탁월한 개발 능력과 보유 중인 물질이나 기술에 대한 독보적 가치, 그와 관련된 특허 개수, 개발 중인 파이프라인 수, 기술 수출 성과 및 천문학적인 액수의 기대 수익 등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정보를 알리려고 최선을 다한다. 상장하기 위해서는 거래소가 상장 요건으로 내건 조건들을 우선적으로 충족시켜야 하므로 상장을 시도하는 회사의 홍보 내용은 대부분 엇비슷하다. 그렇다면 왜 상장 과정에서 흥행하는 회사보다 흥행하지 못하는 회사가 많을까?

그에 대한 이유로 경기 하강으로 인한 투자시장 침체를 꼽는 이가 많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시장이 위축돼 투자 심리가 냉각되면 자연히 기관 및 개인 투자자들은 투자를 회피하게 된다. 여기에다 기술 수출된 물질 반환, 임상 실패, 개발 일정의 지연, 혹은 바이오 상장사들의 실적 부진으로 인한 주가 하락 등 악재까지 더해지면 자연히 바이오 분야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지고, 투자분에 대한 수익 창출은 불확실해져 흥행을 보장하기 어렵게 된다.

비슷한 맥락이지만 조금 다른 해석도 있다. 흥행 부진은 바이오 투자 학습 효과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때 바이오 회사에는 늘 투자가 몰렸고, 어느 정도 요건만 만족시키면 어렵지 않게 성공적인 흥행을 이뤄 상장할 수 있었다. 이른바 판을 깔면 ‘묻지 마 투자’가 이뤄졌던, 그야말로 바이오 붐을 만끽했던 황금기였다. 바이오 회사들은 밀려 들어온 투자금 덕택에 여유롭게 개발, 임상 프로젝트, 심지어 외도성 사업까지 할 수 있었고, 투자자들은 곧 들려올 낭보를 기다리며 주가 상승 덕에 투자금 이상의 이익을 누릴 수 있었다. ‘바이오 불패’가 상식으로 통하던, 회사와 투자자가 모두 꿈에 부풀어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상장 전이나 상장 시 투자했던 기관들은 큰 이익을 얻고 엑시트한 반면, 뒤늦게 투자한 소위 개미 주주들은 회사가 공언했던 여러 목표가 달성되지 않거나 지연되면서 하락한 주가 때문에 적지 않은 손실을 보게 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러한 선례들이 바이오산업 전반에 걸쳐서 습관적으로 발생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에게 부정적인 학습을 시켰고, 이것이 투자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됐다. 

이보다 더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원인도 있다. 소위 ‘양치기 소년 효과’다. 신약 개발을 위해 의욕적으로 출범한 바이오 회사가 연일 전하는 임상 진입 및 진행, 기술 수출 낭보와 상상하기 힘든 규모의 계약이나 기대 수익은 투자자들을 한껏 들뜨게 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뒤이어 임상 진입 실패나 임상 중단, 또는 기술 수출 물질의 반환 소식이 들려오면 이는 엄청난 후폭풍으로 작용한다. 특히 바이오 회사가 발표한 기대수익(대개 임상의 모든 단계를 달성하고, 상용화에 성공해 최대 판매에 이르렀을 때까지 누적 수익이 포함된다)과 실제로 해당 바이오 회사가 수령한 액수의 차이를 깨닫는 순간, 투자자는 단순히 실망하는 수준을 넘어 회사에 대한 신뢰마저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투자자는 회사가 어떤 소리를 해도 믿지 못하게 되고, 부정적인 정서가 바이오산업 전체로 번지는 것이다. 바이오 회사가 투자 유치 홍보 활동(IR)이나 홍보에 있어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정직하고 적절한 수준의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이유다.

비(非)선도적이고 차별화가 쉽지 않은 기술 플랫폼으로 거품을 조장하고 투자를 유인하던 시대는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다. 전문 지식과 경험이 부족했던 과거와는 달리, 바이오 분야를 전공하고 산업 분야에서 실무를 통한 지식과 경험을 쌓은 인력들이 투자사에 속속 합류해 바이오 회사를 전문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도 촉(觸)이나 감(感)보다는 점차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해 투자하고 있다.

 

바이오 회사, 옥석 가리기 본격 시작

이런 상황을 바이오 업계에서는 ‘투자가 얼어붙은 겨울이 왔다’ ‘끝이 안 보이는 어둠의 터널이다’ 혹은 ‘바이오산업의 혹독한 시련기다’라고 표현하곤 한다. 하지만 염세주의나 비관론에 빠질 필요는 없다. 그저 바이오 회사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시작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차근차근 내실 있고 알찬 연구개발을 하는 바이오 회사에는 오히려 진정한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는 ‘전화위복’의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투자 혹한기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는 흥행 보증 수표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기만 하면 무조건 흥행에 성공하는 배우처럼 말이다. 이들은 여러 작품에서 연기력과 흥행성을 인정받아 신뢰를 얻은 이들이다. 충분히 대중의 검증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신뢰를 얻게 되면 대중은 이들의 부족함마저도 예술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바이오 회사도 다를 바 없다. 축적된 실적으로 투자 기관과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탄탄한 신뢰를 쌓으면 흥행 보증 수표가 될 수 있다. 

여기에 흥행의 마술사가 보조적 역할을 담당할 수도 있다. 이들은 출연진과 무대 조건이 열악하거나 심지어 최악인 경우에도 기가 막힌 연출과 기획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예술성을 끌어올려 성공적인 흥행을 이뤄낸다. 바이오 업계도 한정된 자료와 열악한 여건에서도 물질의 장점을 찾아내고 최적화된 전임상, 임상을 수행해 회사의 가치를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결과물을 도출하는 바이오산업계의 흥행 보증 수표, 흥행의 마술사를 필요로 한다.

한편 변화한 환경 속에서 투자자는 바이오 회사의 발표 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연구 인력 경험과 과거 개발 실적 등 여러 가지 변수를 분석·이해해 가치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 투자 여부와 규모 등을 정하는 성숙함을 지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