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동 일대 아파트. 한국은행이 사상 첫 ‘빅스텝’을 단행하면서 부동산업계에서는 시장이 장기간 침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동 일대 아파트. 한국은행이 사상 첫 ‘빅스텝’을 단행하면서 부동산업계에서는 시장이 장기간 침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2022년 여름 들어 시장이 갑자기 얼어붙고 있다. 잇따른 금리 인상에 투자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몸을 사린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개인적으로 우리가 스마트폰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스마트폰 보급률이 93%를 넘어섰다. 정보를 동시다발적으로 수용하면 생각도 엇비슷해지고 행동도 닮아간다. 무리 지어 움직이려는 ‘군집행동(herding behavior)’이 나타나는 것이다. 군집행동이 요즘 부동산 시장의 주요 트렌드다. 원래 군집행동은 상승기에 많이 나타난다. 지금이라도 집을 사지 않으면 영원히 집을 못 살 것 같은 불안감과 초조감에서 무리 지어 집을 사는 것이다. 하락기에는 상승기보다 군집의 강도가 세지 않을 뿐 군집행동은 나타난다. 외부 충격으로 공포 국면이 조성되면 심리적으로 같이 행동하려는 성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주식시장처럼 매도자의 투매보다는 매수자의 심리 냉각으로 거래절벽으로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일종의 생존본능이 발동하는 것이다.

서울 압구정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강남 지역 아파트 매매가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서울 압구정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강남 지역 아파트 매매가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서울 밖부터 아파트값 뚝뚝

이번 하락장은 비강남, 비서울부터 시작된 것이 특징이다. 특히 경기 같은 수도권 아파트값이 두드러지게 하락세를 보인다. KB국민은행 아파트 시세에 따르면 올 들어 6월까지 안양 동안구(-1.76%). 수원 영통구(-1.73%), 화성(-1.49%)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하락했다. 서울이 강보합세(0.84%)를 나타낸 것과 대조적이다. 수도권 아파트값이 많이 하락한 것은 소득 대비 가격 자체가 부풀려졌기 때문이다. 최근 2~3년간 2030세대가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수도권으로 대거 몰려갔다. 마침 곳곳에서 GTX 개발 호재까지 터졌다. 주로 갭 투자 방식의 ‘탈서울 내 집 마련 수요’가 폭발했다. 이러다 보니 경기 남부 아파트값은 서울 강북지역 아파트를 뺨칠 수준으로 많이 올랐다. 아파트값이 많이 상승했으니 당연히 차익 매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2023년 5월 9일까지 조정 대상지역에서 시행되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한시적 감면 조치로 절세매물까지 나와 시장을 짓누른다. 서울 다주택자 입장에선 살지 않는 집을 먼저 처분하려고 할 것이다. 집값까지 많이 올랐으니 매도 욕구가 더 강할 것이다. 말하자면 수도권은 단기 급등에 따른 후유증에 양도세 절세매물까지 겹치니 하락압력을 크게 받는 것이다. 실거래가를 보면 더욱 실감이 난다. 화성, 수원 일대를 중심으로 지난해 10월 고점에 비해 2억~3억원 하락한 곳이 수두룩하다. 지방 역시 최근 부동산 랠리가 저금리와 유동성에 기인했던 만큼 수도권 집값 흐름과 동조화할 수 있다. 이미 올 상반기 세종(-3.41%), 대구(-1.41%), 대전(-0.7%)이 약세를 띠고 있으나 내림세는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잇따른 금리 인상에 맷집이 강했던 강남권도 약세다. 압구정동과 잠실동 일대를 중심으로 지난해 10월 대비 3억~4억원 하락한 단지들이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아직 수도권만큼 낙폭은 심하지 않다. 7월 둘째 주 현재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제외된 서초구는 아직 소폭 플러스다. 하지만 금리 인상 같은 ‘시장 위험’이 커지면 나 홀로 상승이란 없다. ‘똘똘한 한 채’라도 일정 기간은 버티겠지만 악재가 누적되면 큰 흐름을 피해 가긴 어렵다. 다만 지역보다 좀 덜 빠질 뿐이다.

 

언제까지 하락할까

부동산 상승 랠리는 이번에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것이 장기간 하락세를 의미하는 대세하락으로 갈지는 두고 봐야 한다. 금리가 관건인데, 적어도 금리 인상 랠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야 집값도 진정될 수 있다. 일단 1년 정도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일각에선 가을 이사 철을 앞두고 매매가 본격화되는 7~8월 부동산 시장이 대세 하락 여부를 판단할 분기점이 될 거란 전망을 한다.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미 분기점이 지났다. 요즘은 갭 투자가 많아서인지 주택 시장이 계절을 잘 타지 않는다. 학군 편성되기 전에 이사를 하려는 겨울방학 계절적 특수가 잠시 있지만 전반적으로 성수기, 비수기 이런 개념이 거의 없어졌다. 집값 오를 때가 성수기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세입자들이 전셋값 급등에 아예 집을 사려는 수요가 생길 수 있다. 이른바 ‘탈전세 내 집 마련 수요’다. 하지만 소나기를 피하자는 심정에서 주택 구입을 좀 더 미룰 수 있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게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80%까지 올려준다고 해도 굳이 고금리에 그것도 하락장에서 집을 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가을 이사 철이 온다고 해도 내 집 마련 수요가 살아나기 힘들다는 얘기다.

 

대단지 아파트값이 많이 떨어진 이유

사람들은 대체로 랜드마크 대단지 아파트는 가격이 잘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랜드마크 아파트는 단기적으로 오를 때 다른 단지보다 더 많이 오르고, 내릴 때 더 많이 내린다. 장기간, 평균적으로 따질 때 차별적 상승을 보일 수는 있지만 말이다. 실제로 랜드마크 대장주 아파트로 구성된 ‘KB 선도아파트50 지수’의 추이를 지켜보면 다른 일반 아파트에 비해 가격 변동성이 크게 나타난다. 이 지수는 매년 시가총액 상위 50개 아파트, 이른바 블루칩 단지를 묶어놓은 것이다. 블루칩 아파트는 주변 아파트 가격을 선도하는 대단지로 시장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바로미터 성격이 강하다. 블루칩 아파트의 가격 변동성이 큰 것은 대단지 아파트이어서 거래가 잦아 시세 포착이 더 쉽기 때문일 것으로 판단된다.

요즘 잠실동 일대에서 아파트값 하락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잠실 엘스나 리센츠, 파크리오 등 아파트는 각각 5000가구가 넘는 대단지다. 불황기에도 한두 건 팔리다 보니 거래가격이 노출되는 것이다. 가격이 하락할 때 나 홀로 아파트는 거래가 거의 없어 시세가 얼마인지 알 수 없다. 아파트를 매도하려는 사람도 거래 사실이 없어 옛 시세를 고집할 수 있다. 나 홀로 아파트들의 실제 가치는 블루칩 아파트보다 더 많이 떨어졌지만, 표시를 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외에도 잠실동의 지리적 특징도 있다. 잠실동은 강남권에 속하지만 서초구와 강남구에 비하면 완전 중심은 아니다. 하락기에는 중심보다 ‘비중심’이 먼저 하락한다. 하지만 잠실동의 약세는 대단지 아파트 착시 현상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밀려오는 금리 파도, 대응 방안을 찾아라

밀려오는 금리 파도에 수요자들은 어떻게 대응을 할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미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들은 적극 대처하기가 어렵다. 시장이 경색되어 집을 팔고 싶어도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돈이 급하면 가격을 많이 낮춰야 한다. 과감한 손절매를 결심하지 않는 한, 시장 여건이 나아질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다. 집 한 채를 실거주용으로 보유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물가 상승은 단기적으로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부동산 시장이 휘청거릴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금리 인상 파도는 금융 역사의 이벤트다. 고금리가 영원히 갈 수는 없다. 투자자라면 모를까, 실수요자는 빙하기를 잘 이겨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금리 상승으로 대출 이자가 부담된다면 대출을 슬림화하는 것은 가능하다. 

반대로 매수자는 가격과 시기 등 두 가지 포인트를 보고 판단하는 게 좋다. 시장이 불확실한데 집을 사놓고 기우제를 지내는 것은 심리적으로 힘겨운 일이다.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매수자는 일단 한 박자 쉬어간다는 생각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시기는 적어도 연말은 지나고 판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다음 가격이다. 지난해 10월 고점에 비해 중저가는 20% 이상, 고가 주택은 15% 이상 떨어진 곳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