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시장이 심상치 않다. 고질적이던 전세난(전세 물량 부족 현상)이 아닌 역전세난(전세 물량 과다 현상)으로 시끌벅적하다. 돌이켜보건대 지난 수년간 대한민국은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지방권까지 지역 구분 없이 아파트값 급등과 이에 따른 전세난으로 힘겨워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올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신3고(고물가, 고환율, 고금리)가 엄습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특히 고금리는 대출을 통한 부동산 거래가 대중화한 현실을 감안할 때 부동산 시장에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강력한 위협 요인으로 자리했다. 실제로 이는 한국부동산원이 매주 발표하는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서울 및 수도권, 지방권 구분 없이 매매가, 전세가 모두 하락 폭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아파트 매매 가격 및 전세 가격 급등으로 고심했던 정부 입장에서 보면 골칫거리가 저절로 해결된 셈이다.
그런데 엉뚱한 데서 새로운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역전세난과 전세 사기 이 둘은 최근 부동산 관련 기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내심 주택 시장 안정화를 원했던 정부라지만 역전세난과 전세 사기 문제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일 것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역전세난의 재등장
역전세난은 전세난과 함께 주택 시장의 생애주기(활황기와 침체기의 순환 형태)에 따라 반복되곤 해왔다. 역전세난은 전세 만기가 돌아왔음에도 전세 가격이 급락하면서 기존의 전세금(전세보증금) 수준에서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돈을 돌려주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보통 주택 시장이 강세장에서 약세장으로 전환됨과 동시에 입주 물량이 쏟아질 때 집중 부각된다.
한편 적지 않은 사람은 전세 가격을 등에 업고 주택을 매입하는 갭투자가 작금의 역전세난을 확산시킨 주범이라고 말한다. 관련하여 특이한 점은 근래 들어 지속적인 금리 인상 여파로 고금리에 부담을 느낀 세입자들이 전세 매물보다는 월세 매물을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고금리 여파로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전세 자금 대출 시 연이율이 최고 6%를 넘어선 작금의 현실에서 차라리 월세를 내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확산한 까닭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은 앞으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더 올라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얼마 전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전월세 전환율에 따르면, 전국은 연 5%대 후반, 서울은 연 4%대 후반이었다. 이미 시중은행의 전세 자금 대출 이율이 5%를 넘어 6%대를 향해 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전세의 월세화 현상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역전세난의 가장 큰 피해자가 집주인도 갭투자자도 아닌 선의의 세입자라는 데 있다. 역전세난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다. 현행 제도하에서 세입자가 역전세난에 대처해 전세금을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는 사전적 예방 차원에서 전세권설정등기, 확정일자, 전세금반환보증보험 가입 등이 있고, 사후적 관리 차원에서 임차권등기명령을 이용하는 방안이 있다.
전세권설정등기 또는 확정일자, 임차권등기명령 등을 통해 확보된 우선변제권에 기인해 전세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법적 회수 절차, 즉 법원 경매 절차를 거쳐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세금 전액을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관련하여 최근 정부는 세입자가 사는 집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갔을 때 해당 주택에 부과된 국세(종합부동산세, 상속세, 증여세)보다 전세금을 먼저 받을 수 있도록 개정안을 마련 중이다.
한편 세입자가 전세금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하게 되면 전세계약 종료 시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보증기관을 통해 전세금을 손쉽게 되찾을 수 있다. 별도의 법적회수절차 없이 보험금 청구만 하면 된다. 최근 역전세난이 부각되면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건수 역시 급증했고, 신규 가입 금액 역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전세금반환보증보험이 역전세난의 해결책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다만 가입 조건이 조금 까다롭다는 점은 아쉽다. 임대인 동의 요건을 없애는 등 예전보다 가입 조건을 완화시켰다고는 하지만 전세 계약 기간이 1년 이상 남아있어야 하고, 가입 대상 주택 유형, 선순위 채권 규모에 따라 제약이 따르고 보증 한도도 달라질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기승 부리는 전세 사기
최근 주택 시장 침체 및 역전세난과 맞물려 전세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낭패를 보는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하여 대표적인 전세 사기 사례를 알아보고 이에 대한 사전 예방책 및 사후 대응 방안을 살펴보자.
첫째, 전세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월세로 계약된 사례다. 해당 물건을 다루는 부동산 중개인이나 관리인에 의한 이중 계약 형태가 전형적이다. 주로 전세 매물이 귀한 도심지 소형 아파트나 오피스텔, 원룸주택에서 발생하며, 실상은 전세임에도 매물을 소개한 중개인이나 관리인이 집주인에게는 월세로 속여 계약서를 작성한 후 전세금 차액을 챙기는 수법이다. 이 경우는 사후 대응 방안보다는 사전 예방책이 중요하다. 반드시 부동산 소유자인 집주인과 직접 만나 전세 계약을 하고, 계약금, 중도금, 잔금 등 일체의 돈거래 역시 등기부등본상의 실소유자 통장으로만 진행해야 한다.
둘째, 예고된 깡통주택에 전세로 들어가는 사례다. 보통 건축 업자들이 분양이 잘 안 되는 신축 빌라를 처분할 때 사용하는 방법인데, 비싼 전세 가격으로 세입자를 들인 후 제삼자에게 매각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신축 빌라의 경우 거래 사례가 전무해 제대로 된 시세를 알 수 없어 감정평가액이 부풀려지기 쉽다는 점이다. 사실상 깡통주택으로 예고된 셈이다. 만일 전세 계약 만료 시점에 다른 세입자를 구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초기 전세금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책정돼 세입자를 못 구할 경우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 사전 예방책으로는 전세 시세를 알기 어려운 매물은 가급적 피하되 부득이 입주를 원한다면 반드시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금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셋째, 집주인의 배 째라 사례다. 돌려줄 전세금이 없으니 맘대로 하라는 집주인을 만났을 때 생기는 일이다. 입주 물량 급증, 건물 노후화, 시세보다 비싼 전세금, 유해 시설 입지 등으로 마땅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지만, 여하튼 만기가 됐음에도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악의의 집주인이라면 이 역시 넓은 의미에서 전세 사기로 볼 수 있다. 이때 세입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계약 기간 만료에 따른 전세금 반환’에 관한 내용증명을 보내는 일이다.
그럼에도 집주인의 반응이 없다면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직접 다른 세입자를 찾아 그 세입자에게 임차권을 양도하고 전세금을 받아 가는 것이다. 또 전입신고와 확정일자의 효력을 유지할 목적으로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고 확인 후 이사하는 것과 최후의 수단이지만 ‘전세보증금 반환소송’을 진행해 받아내는 방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