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모터스의 저렴한 전기차량 양산계획 발표 이후 친환경 차량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파리협약에서도 수송 부문의 감축량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오랜 문제였지만 최근 핫이슈로 떠오른 노후 경유차 등에 의한 도심 미세먼지 발생문제 역시 친환경차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그러나 대세가 되고 있는 친환경차 산업을 보면서 정부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애초에 성장전략의 일환으로 녹색산업을 생각했던 우리나라다. 만약 환경이냐 산업이냐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면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한 번의 급속완충으로 300km 이상 달리는 테슬라의 전기차를 보며 전 세계가 전기차를 대세로 여기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그동안 수소차 개발에만 집중했다가 흐름을 놓쳤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처럼 정부 입장에서는 아직 국내기업들의 생산기반이 미약한 (혹은 사업성 등이 떨어지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우리나라의 잠재적인 전기차 시장을 촉진시키기도 애매할 것이다. 녹색산업의 과실을 취하지 못하고 남 좋은 일만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충전 인프라가 구축돼 있는 제주도에선 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조선일보 DB>
충전 인프라가 구축돼 있는 제주도에선 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조선일보 DB>

전기차 관련 서비스 우선 개발해야

하지만 너무 고민할 필요 없다. 완성차 시장점유율 뺏길 것을 너무 우려하면서 국산 자동차 메이커들이 전기차 기술을 테슬라만큼 확보하기를 기다리거나 수소차의 생산단가가 낮춰지기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간과하고 있는 것은 인프라 구축과 관련 서비스 개발 등 완성차 시장 외의 다른 시장 역시 선점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현재 어떤 나라도 전기차 등을 제대로 상용화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인프라를 구축해 전기차시장을 활성화하든, 전기차를 먼저 굴러다니게 해 인프라 사업을 활성화하든,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다. 우리나라는 우선 인프라와 관련 상용 서비스 부문에서 선두에 나서자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기차에 관심이 있고 실제로 중앙·지방정부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고는 있지만 현재로선 민간의 수요폭발은 기대하기 힘들다. 당장 환경을 걱정하는 필자만 해도 전기차 타고 가다가 방전될 경우 충전소가 현재 주유소만큼 자주 있지 않아 겪게 될 곤란함 때문에 구입에 부정적이다. 가뜩이나 주행거리도 짧지 않은가.

또 만약 도로 한가운데에서 정지될 경우, 보험사에서 지금처럼 긴급서비스로 보조배터리를 들고 와 줄 준비는 돼 있는지 궁금하다. 적어도 집과 회사 근처에 충전소가 설치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보험료 산정에 있어서 전기·수소차에 대해 불완전 이해로 인한 과잉 페널티는 없을 것인지 혹은 추가 할인은 제공될 수 있을지 알고 싶다.

또 완성차 직영점 외의 카센터 등에서도 수소차 혹은 전기차를 수리할 역량은 갖춰져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이런 제반 여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관공서 빼고는 어느 누구도 선뜻 친환경 차량을 구매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정부에서 현재 제공하고 있는 완성차에 대한 보조금 정책은 ‘공급단가를 줄임’으로써 판매량을 늘리려는 것인데, 기본적으로 제한된 수요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혹자는 이러한 여러 이슈가 도로에 친환경차가 많아지면 저절로 이뤄질 것이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시간 아닌가. 제반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요가 늘 수는 없다.

이론적으로는 친환경차에 대한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완성차 공급단가를 아무리 낮춰봐야 기대한 만큼 혹은 예산소요분만큼 효과가 없을 것이다. 즉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완성차 자체의 가격에 수요가 크게 반응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차라리 친환경차에 대한 자발적인 수요 자체가 증가할 수 있도록 제반여건을 개선해주자는 것이다.

물론 둘 다 하면 좋겠지만, 공공 부문이 나설 수 있는 역량 혹은 예산이 제한돼 있다는 전제에서는 인프라 구축이 친환경차를 대중화하는 데 있어서 속도가 훨씬 빠를 것이다.


인프라 구축해야 보조금 효과 커져

제주도가 왜 전기차 보급이 빠를까를 생각해보면 유사한 답이 나온다. 섬 지형의 특성상 충전소 등 인프라 구축이 쉽고, 차량이 섬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기 때문에 인프라 구축의 사업성 역시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인프라 구축이 그만큼 쉬울 것이고 그만큼 수요가 가격에 반응하는 정도 역시 커진다. 이럴 때 비로소 정부 차원에서 완성차에 대한 보조금 정책을 쓰는 것이다. 기존 휘발유·경유 차량보다 쓰는 데 불편함 없고 가격도 별 차이 없으면 왜 사람들이 마다하겠는가.

부가적으로 따라올 친환경 차량에 대한 서비스산업 강화는 덤이다.

보험상품 개발, 친환경 차량에 대한 별도의 차량튜닝업, 도로 인프라에 직접 설치하는 충전방식, 배터리 등 완성차 외에 발전시킬 수 있는 산업은 많다. 내수는 물론 수출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러한 잠재력을 못 보고 완성차의 국내시장을 뺏길까봐 연관업종의 육성을 소홀히 하는 것은 조선시대 외국의 침입을 막으려고 대로(大路) 설치를 막아 결국 발전 자체를 저해한 것과 무엇이 다를까 싶다.


▒ 유종민
서울대 경제학과, 일리노이대 응용경제학 석·박사, 한국은행 조사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