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나스닥에 상장돼 있는 황제주 아마존이 글로벌 중앙은행장 회의에서 화두로 떠올랐다. 중앙은행장들은 구조적 저물가 원인으로 ‘아마존 효과’가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 나스닥에 상장돼 있는 황제주 아마존이 글로벌 중앙은행장 회의에서 화두로 떠올랐다. 중앙은행장들은 구조적 저물가 원인으로 ‘아마존 효과’가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사실상 완전 고용 수준을 기록한 실업률(3.9%, 7월 기준), 견조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18년 만에 최고 수준의 소비심리 등 미국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지표가 쏟아지고 있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본격적으로 돈줄을 조일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정책 목표(2%)를 밑도는 저물가 기조가 연준의 발목을 잡고 있다. 물가가 낮은 상태에서 금리를 인상할 경우 물가가 더 짓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연준이 금리 인상 시기를 저울질하면서 완만한 금리 인상을 시도하고 있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보통 경기가 좋으면 물가가 올라간다. 하지만 이런 경제학 이론이 미국 경제에서 별로 통하지 않고 있다. 실업률이 떨어지면(경기가 좋아지면) 물가가 오른다는 ‘필립스 곡선’이 무력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물가를 관리하고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중앙은행장들이 구조적인 저물가 원인을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8월 말 미국 와이오밍주의 휴양도시 잭슨홀에서 주요국 중앙은행장과 경제전문가들이 총집결한 가운데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 ‘잭슨홀 미팅’에서 아마존이 화두로 떠올랐다. 이 회의에서 공개된 알베르토 카바요(Alberto Cavallo) 하버드비즈니스스쿨 교수의 보고서에서 ‘아마존 효과’가 저물가 주범으로 거론된 것이다. 아마존이 물건을 너무 싸게 파는 바람에 가격 상승 요인이 있는 다른 경쟁 유통업체들도 ‘가격 인하 경쟁’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면서 가격 정보가 더 투명하게 공개되고, 이에 대한 소비자들의 민감도도 커진 것이 작용했다.

보고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아마존이 알고리즘을 통해 더 자주 판매 가격을 바꾸고, 이 가격을 지역을 불문하고 동일하게 적용하면서 유가나 환율 변동 같은 외부 충격요인이 발생했을 때 소매가격이 더 빠르게 오르내리게 됐다는 것이다. 김근영 한국은행 물가분석부장은 “예를 들어 글로벌 유가 하락으로 수입 비용이 줄면서 기업들의 마진이 늘어난 경우 이전에는 얼마간 이를 누리는 경향이 컸지만, 최근에는 소비자들이 얼마든지 유가 동향과 업체별 가격 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즉각적으로 가격에 반영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지 않을 경우, 가격을 낮춘 경쟁 업체에 밀리게 된다.

실제 유통업체들은 외부 변수를 가격 산정 알고리즘에 반영해 수시로 가격을 바꾸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월마트 같은 소매업체들은 경쟁사 가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평균 가격 지속기간을 2008년 6.5개월에서 지난해 3.7개월로 두 배가량 단축했다. 이런 잦은 가격 변동은 주로 아마존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전자제품, 가구, 가정용품 같은 상품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유통업체들은 또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지역별 가격 차이도 없애면서 ‘아마존 따라가기’ 전략을 택하고 있다. 심지어 오프라인 매장만 운영하는 전통 소매상점조차도 지역별 가격을 단일화하고 있다.


실물경제 파급경로 바꾼 아마존

잭슨홀 미팅에서는 아마존 효과가 임금 상승을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도 지목됐다. 앨런 크루거 미 프린스턴대 교수(전 미 경제자문위원회 의장)는 연설에서 “소수 대기업들의 수요 독점력이 높아지는 것이 낮은 임금상승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일부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면, 노동자 입장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일터가 줄어들고, 이는 곧 임금 상승을 요구하기 어려워지는 구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경제의 물가 상승률이나 실업률 수준 등을 고려했을 때 노동자들의 임금은 현재보다 최소 1~1.5% 높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마존에서 비롯한 온라인 유통업체 경쟁 격화로 외부 변수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파급 경로가 변화하고 있는 만큼 중앙은행장 입장에서는 통화정책 운용을 원점에서 재점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은재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유가나 환율 상승 등 일회성 비용 부담이 기존 경제학 이론이나 경험과는 달리 빠르게 물가 상승에 반영될 가능성이 커진 만큼 중앙은행은 전통적인 물가 분석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마존 효과는 물가를 관리하고 금리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중앙은행장들의 새로운 연구 영역”이라고 분석했다.


plus point

장바구니 물가 급등하는데
한국은행은 저물가 고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어느 나라 중앙은행이든 경기가 괜찮은데 물가가 오르지 않아 고민하고 있다”며 “아마존 효과가 큰 듯하다”고 말했다. 최근 기록적인 폭염으로 채소, 과일, 우유 등 공급이 줄면서 장바구니 물가가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중앙은행장들이 저물가로 고민하고 있다는 대목은 소비자 인식과 차이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 물가’와 ‘체감 물가’는 왜 다른 걸까.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 물가 동향에 따르면, 소비자 물가는 지난해 10월 1.8%로 떨어진 뒤 8월까지 11개월째 1%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가계가 체감하는 물가는 사뭇 다르다. 8월 소비자 물가 조사 결과를 품목별로 뜯어보면 배추, 수박, 무, 파, 상추 등 식탁에 자주 오르는 주요 먹거리 가격은 지난 7월보다 50~100% 급등했다. 시금치는 무려 128%나 뛰었다. 쌀값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3.4%나 올랐다.

소비자 물가 지수는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460개 품목의 가격을 바탕으로 가구 소비지출에서 각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가중치를 둬서 산출한다. 전문가들은 최근 가격이 폭등한 농·축·수산물 품목의 가중치는 크지 않기 때문에 이들 가격 변화가 전체 물가지수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설명한다. 또 먹거리 가격 상승이 저소득층 가계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해 체감 물가가 더 오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계 소비지출 중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엥겔계수)이 저소득층일수록 크기 때문이다. 실제 체감물가를 가늠해볼 수 있는 한국은행의 물가인식은 지난 8월 2.6%를 기록해 공식 소비자 물가(1.4%)보다 두 배 정도 높았다.

장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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