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아파트 단지. 사진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아파트 단지. 사진 연합뉴스

고가 주택 구분 기준인 ‘9억원’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주택 가격은 계속 오르는데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 대상이 11년 전 기준인 9억원 초과 주택에 머물러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금융 당국이 11월 11일부터 9억원 초과 주택(실거래가)에 대해 공적 전세보증(주택금융공사·주택도시보증공사)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고가 주택 기준을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금융 당국과 주택금융공사는 11월 4일 개인보증시행세칙 개정을 통해 시가 9억원을 넘는 주택을 보유한 1주택자는 11일부터 공적 전세 대출을 받을 수 없게 했다. 새로운 제도 시행 이전에 이미 공적 보증을 받았다면 추가로 연장할 수는 있지만, 제도 시행 이후 새로 산 주택이 9억원을 넘으면 기존 보증은 한 차례만 연장할 수 있다.

이번 시행 세칙 개정은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시장 점검 결과 및 보완 방안’에 포함돼 이미 예고했던 것으로, 전세 대출을 이용한 갭 투자를 축소하기 위한 조치다. 다만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전세 수요를 고려해 다른 지역으로 근무지 이전이나 자녀 양육, 자녀 교육 환경 개선 등의 경우에는 예외 사유로 적용하기로 했다.


1│주택 중위 가격 8.7억…3년 새 50% 상승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고가 주택’ 보유자의 불만은 고조되고 있다.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해 고가 주택 기준을 상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KB국민은행의 ‘9월 주택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은 8억7272만원이다. 주택 가격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중간에 있는 가격을 의미한다. 주택 중위 가격은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는데, 2016년 5억7859만원에서 3년 만에 50% 넘게 올랐다. 2016년 서울에서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없는 분양가 9억원 초과 아파트의 일반분양 물량은 전체 일반분양 물량의 6.2%였다. 이 비율은 올해 8월 36.3%까지 치솟았다. 또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에서 공시가격 9억원을 초과하는 공동주택 비율은 2008년 4.6%에서 2019년 8.2%로 급등했다.

고가 주택을 보유한 경우 여러 규제 대상이 되기 때문에 주택 보유자로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9억원 초과 신규 분양 아파트는 중도금 대출이 안 되며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에서는 9억원이 넘는 주택을 구입할 때 실거주 목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주택담보대출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1주택자라도 9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을 팔면 양도차익만큼 양도소득세를 부담해야 한다. 실거래가 9억원 초과 주택은 취득세가 주택 가격의 3.3%다. 6억~9억원 주택(2.2%)보다 1.1%포인트 높다. 공시가격 9억원 주택 보유자는 종합부동산세도 내야 한다.


2│돈줄 조일 때마다 ‘들썩’

고가 주택 개념은 1994년 소득세법 시행령에 ‘고급 주택’이라는 규정이 만들어지면서 등장했다. 당시 공동주택의 경우 전용면적 165㎡ 이상이면서 양도가액이 5억원을 초과하면 고가 주택으로 분류했다. 1996년 금액 기준이 ‘실거래가 6억원 초과’로 변경됐고, 2003년부터는 면적 기준이 사라지고 금액 기준만 남았다. 현행 고가 주택 기준인 ‘실거래가 9억원 초과’는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10월에 만들어졌다. 당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양도소득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고가 주택 기준을 완화한 것이다.

고가 주택 논란은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를 신설하면서 처음 불거졌다. 노무현 정부는 조세 부담의 형평성을 높이고 집값을 잡겠다는 취지로 종부세를 도입했는데, 부과 대상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주택의 공시가격을 합한 금액이 6억원이 넘는 주택 보유자였다. 공시가격 6억원은 시세로 보면 9억원 정도 된다. 당시 종부세 부과 대상이 된 주택 보유자들은 “집을 팔아 이익을 낸 것도 아닌데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과도한 재산권 침해”라며 위헌 소송까지 제기했다. 2008년 헌법재판소는 “1주택자에게 동일하게 종부세를 부과하는 건 과도하다”면서도 “종부세 자체가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 것은 아니다”라고 결정했다. 이 결정에 따라 1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부과 기준은 ‘공시가격 9억원’을 초과한 주택 보유자로 완화됐다.


3│상향론 vs 신중론 팽팽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9·13 대책’으로 촉발된 고가 주택 가격 논란은 11월 4일 공적 보증 중단 정책으로 더욱 확산하고 있다. 실수요자의 주택 구입 기회를 제약하는 문제가 있어 현실에 맞게 고가 주택 기준 가격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서울 집값 상승세가 거래량은 적은 가운데 가격만 오르고 있는 데다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며 고가 주택 기준을 바꾸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실제 올해 9월까지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7만776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8% 감소했다. 5년 평균치 대비 감소 폭이 46.5%에 이른다.

또 집값 상승은 서울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와 마포·용산·성동구 등 일부 지역에 국한된 현상이라 고가 주택 기준을 변경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기획재정부는 당장 고가 주택의 기준을 조정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기준을 상향하는 것이 자칫 집값 상승을 더 부추길 수 있고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Plus Point

주택연금 문턱 낮춘다…9억원 초과 허용 검토

출처 : 조선일보 DB
출처 : 조선일보 DB

정부는 주택연금 가입 연령을 기존 60세에서 55세로 낮추는 방안을 내놨다. 이르면 내년 1분기 중 시행된다. 주택연금은 은퇴 후 고령자가 소유하고 있는 주택에 거주하면서 이를 담보로 생활자금을 매월 연금 방식으로 대출하는 공적 보증 상품이다. 60세 가입자가 6억원 주택을 담보로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사망할 때까지 매달 120만원 정도 받게 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가장 오래 근무한 직장을 그만둘 당시 평균연령은 남성이 51.4세, 여성이 47.6세였다. 현행 주택연금 가입 연령인 60세까지 최소 7년, 국민연금 수급이 시작되는 62~65세는 최소 9년 이상 소득이 없는 ‘소득 크레바스’를 겪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주택연금 가입 연령을 55세로 낮출 경우 조기 은퇴자의 소득 중단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또 정부는 ‘시가 9억원 이하’인 주택 보유자만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한 현행 규정을 ‘공시가격 9억원’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공시가격이 통상 시세의 70%에서 유지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시가 13억원 안팎의 주택 보유자도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