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의 상승세가 매섭다. 미국 경기에 대한 우려가 걷힌 데다 미·중 무역 협상에 우호적인 기류가 흐르면서 2009년 3월부터 시작된 미국 증시의 이번 강세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기간(128개월) 이어지고 있다. 다만 내년에도 증시가 고공행진을 이어갈지는 미지수라는 전망이 나온다.

과거 미국 증시를 뒤따라갔던 한국 증시는 수개월째 박스권(지수가 일정 범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에 머물며 고전하고 있다. 미국 증시 주도주의 변화와 한국 기업 실적 악화 등의 영향으로 한·미 증시의 탈동조화(decoupling·디커플링)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이하 다우지수)가 11월 15일(현지시각) 사상 처음으로 2만8000선(종가 2만8004.89)을 돌파했다. 7월 11일 2만7000선 고지에 올라선 후 4개월여 만에 쓴 새 기록이다. 다우지수는 2017년 한 해에만 무려 20% 가까이 올랐다가 2018년에는 5%가량 내리며 기세가 한풀 꺾이는 듯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다시 19%(11월 19일 종가 기준) 넘게 오르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다우지수와 함께 뉴욕증시 3대 지수로 꼽히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나스닥지수도 같은 날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S&P500지수는 이날까지 6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며 2017년 11월 이래 최장기간 랠리를 이어갔다.


10년째 우상향 美 증시…정부·기업 견인

미국 증시는 큰 흐름에서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정책을 발판으로 상승 곡선을 그려왔다. 미국이 양적완화(정책금리가 0에 가까운 초저금리 상태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중앙은행이 시중에 돈을 푸는 정책) 기조를 이어간 영향이 컸다. 양적완화 정책은 차츰 그 규모가 줄다가(테이퍼링) 2015년 종료됐고 이후 2016년부터 기준금리 정상화를 위한 금리 인상이 본격화됐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법인세 인하 등 기업 환경에 우호적인 정책과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 MAGA(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구글·애플)로 불리는 정보기술(IT) 기업의 약진으로 미국 증시 상승세를 지속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한 데다 기업 실적 개선세가 두드러지면서 주가가 상승 탄력을 받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격화로 우려를 샀던 경제 지표도 긍정적 흐름을 이어가며 지수를 견인하고 있다. 10월 미국의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1.3으로 지난 4월 이후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PMI가 50을 넘어서면 경기 확장, 50을 밑돌면 경기 수축을 의미한다.

미·중 간 무역 협상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태도가 시시각각 변하고는 있지만, 최소한 스몰딜 형태로라도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분위기가 우세한 것도 증시에 우호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뉴욕증시 3대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15일(현지시각)에는 미·중 무역 협상과 관련해 미국 주요 당국자들의 낙관적 발언들이 나와 증시 상승의 기폭제가 됐다.


박스권 갇힌 韓 증시…상승 기류 제한적

미국 증시 상승세가 수개월째 박스권에 갇힌 국내 증시에도 온기를 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시장 상황이 과거와 달라진 데다 국내 증시 환경이 녹록지 않아 상승기류가 확산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글로벌 투자 심리가 되살아나면서 최근 우리 증시에도 외국인 투자자의 매수세가 유입되고는 있지만 미국 증시와 비교하면 박스권에 가깝다. 미국 증시는 올해 들어 20% 가까이 올랐지만 코스피 지수는 4%(11월 20일 기준)대 상승에 그쳤다.

2011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경기 회복이 한국의 경기 회복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한·미 증시가 유사한 흐름을 보이는 동조화(coupling) 현상이 있었다. 미국 증시가 좋으면 한국 증시도 뒤따라가는 흐름이 나타나면서 일종의 증시 선행 지표처럼 여겨졌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이 반도체·화학·철강 등 중간재와 IT, 자동차, 조선 등 최종 소비국의 경기 상황과 소비력에 민감한 재화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화학·철강재의 경우 중국 공급량이 늘면서 시장에서 밀려났고 자동차와 조선 산업 역시 경쟁력이 후퇴했다.

한국 증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 비중이 커지면서 반도체 업황에 따라 증시 방향이 결정되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한·미 증시의 탈동조화 현상이 더 뚜렷하게 관찰됐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미국 증시 주도주가 금융주로 옮겨오면서 한·미 증시의 디커플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하인환 메리츠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증시는 상반기 IT 업종 중심의 상승을 보이다 8월부터 반도체와 은행 중심으로 상승했다”며 “미국 증시 상승 요인이 경기적인 요인이라기보다 ‘볼커 룰’ 완화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으며 IT 중심 강세장과 달리 한국 기업의 수혜가 제한적이다”라고 했다. 이어 “한국 증시의 경우 최근 다시 이익 추정치가 하락하고 있어 단기적으로 상승 여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별개로 전문가들은 미국 증시 상승세가 내년까지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변수가 많다고 분석했다. 강재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내년 미국 실업률이 반등하면서 고용이 악화되고 하반기 경기 침체가 올 경우 미국 기업이 10년간 저금리를 바탕으로 부채를 크게 확대해왔기 때문에 신용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고 주식시장도 하락장에 접어들 수 있다”고 했다. 또 재선(2020년 11월)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 표심을 고려해 대중(對中) 고율 관세 카드를 포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미·중 간 완전 협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plus point

2020년 ‘볼커 룰’ 폐지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킨 금융기관의 시스템 부실을 방지하기 위해 2010년 마련한 금융개혁법 ‘도드-프랭프법’의 부속 조항. 은행이 고수익을 내기 위해 자사의 자산이나 차입금으로 채권과 주식, 파생상품 등에 투자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은행이 헤지펀드, 사모펀드를 소유하거나 투자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자기 자본 거래로 큰 수익을 내왔던 대형 투자은행은 볼커 룰이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며 끊임없이 규제 완화를 요구해왔다.

볼커 룰은 2010년 1월에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발표됐는데 만으로 10년이 되는 2020년 1월에 족쇄가 대부분 풀린다. 금융기관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될 것이란 기대 속에 금융주 주가가 크게 오르는 요인이 되고 있다. 다만 이번 개정안에서도 이른바 ‘프롭 트레이딩’(proprietary trading)으로 불리는 은행의 자기 자본 거래 및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는 계속해서 금지된다.

김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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