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가 날로 커지면서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 가격도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 한국금거래소에 진열된 금 제품들 뒤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걸어가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가 날로 커지면서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 가격도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 한국금거래소에 진열된 금 제품들 뒤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걸어가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금융시장 투자자들의 선호도가 위험자산에서 안전자산으로 넘어갔다. 금방 잦아들 줄 알았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매일 수백 명의 확진자를 쏟아내며 기세를 떨치고 있어서다. ‘팬데믹(pandemic·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전염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달러화·채권 가격은 일제히 치솟았다. 차갑게 식어버린 증시는 시장을 달굴 호재성 재료를 기다리며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공포가 짙게 드리운 시장에서 한동안은 방어적인 투자 전략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에 설정된 금 펀드(설정액 10억원 이상)의 최근 3개월 수익률은 평균 14%에 가깝다. 이는 에프앤가이드가 분류하는 43개 테마 펀드뿐 아니라 북미·유럽·일본 등 지역 펀드들과 비교해도 가장 우수한 성적이다. 같은 기간 국내와 해외 주식형 펀드 수익률은 각각 1%대, 5%대에 불과했다.

금 펀드의 높은 수익률은 기초 자산인 금 시세가 날로 치솟아준 덕분이다. 현재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물 금 가격은 온스당 1650달러를 넘나들고 있다. 최근 7년 사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 올해 들어서만 10%가량 올랐다. 국내 KRX금시장에서도 1g당 가격이 한 달여 만에 9% 넘게 솟구치면서 6만3000원을 돌파했다.

금의 인기는 거래 대금 추이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2월 KRX금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 대금이 약 50억원을 기록했다. 1월보다 11% 이상 증가한 수치다. 코로나19 공포가 급격히 커진 2월 24일부터는 일 거래 대금이 100억원대로 급증하기도 했다.

금값 상승세는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공포가 투자자들의 FOMO(Fear Of Missing Out·소외되기 싫은) 매수세를 지속시킬 것”이라며 “다만 우려가 일단락될 경우 단기 차익 실현 매물이 유입될 가능성은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강세를 보이는 건 미국 달러화도 마찬가지다. 현재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1220원 부근에서 움직이고 있다. 2019년 말 1150원대에서 단기간에 크게 올랐다. 윤여삼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상호 대체 성격을 지닌 금과 달러화가 동시에 강세라는 건 그만큼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강하다는 의미”라고 했다.

채권 금리는 하락(채권 가격 상승) 추세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최근 3년 내 최저치 수준으로 추락했다. 통상 채권 투자자는 경기 부진 등의 악재 상황이 길어질 것으로 판단하면 장기 채권을 사들인다. 수요가 몰려 채권 가격이 오르면 금리는 떨어진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의 위험 회피 경향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투자 호흡을 길게 가져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주식시장은 휘청

안전자산 쏠림 현상은 주식으로 대표되는 위험자산 시장의 침체를 부추긴다. 2017년 연중 상승세를 이어가던 코스피 지수는 이후 미·중 무역 갈등, 기업 실적 둔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일본 수출 규제, 홍콩 반중(反中) 시위 등의 악재를 연거푸 만나 무너졌다. 지난해 8월 2000선이 붕괴된 뒤 회복세를 보이던 코스피 지수는 최근 코로나19 확산에 다시 비실대고 있다. 2월 중순 700선 탈환을 바라보던 코스닥 지수도 비슷한 처지다.

여기에 믿었던 뉴욕 증시마저 휘청이자 시장 참여자들의 동요는 더 거세지고 있다. 2월 24일(현지시각)에는 다우 지수가 3.56%(1031.61포인트)나 급락하기도 했다. 다우 지수가 1000포인트 이상 떨어진 건 1033포인트 하락한 2018년 2월 8일 이후 처음이었다. 이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도 모두 3% 넘게 주저앉았다. 추풍낙엽(秋風落葉) 신세인 건 유럽 증시도 매한가지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자회사인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코로나19의 팬데믹 가능성을 기존 20%에서 40%로 상향 조정했다. 이란·이탈리아 등에서 확진자가 늘고 있어서다. 이탈리아는 세계 최대 관광 대국 중 한 곳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투자 업계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의 진정 국면이 언제 찾아오는지에 따라 시장 분위기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사태가 1분기 안에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 기존 반등 추세를 이어 갈 수 있을 것”이라며 이 경우 코스피 지수 상단을 2400으로 예상했다. 곽 연구원은 “반대로 사태가 길어질 경우에는 이익에 미치는 악영향이 커져 코스피 지수가 1900~2250의 박스권으로 회귀할 수 있다”고 했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과거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의 학습 효과를 고려할 때 코로나19 악재가 한국 증시에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 센터장은 “금융시장의 투자심리뿐 아니라 경제심리에 가해진 충격의 범위와 강도를 파악하기 어렵고, 절대 밸류에이션(적정 가치) 관점에서 투자 매력이 크지 않은 상태”라며 “금융시장 변동성이 축소되는 데까지의 기간이 짧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소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문제는 코로나19 이슈를 빼놓고 보더라도 글로벌 경기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미국의 올해 1분기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4%에서 1.2%로 하향 조정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와 무관하게 향후 12개월 이내에 미국 경제가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전문가가 그렇지 않은 이보다 훨씬 많았다.

김한진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2017년부터 일본을 필두로 독일·중국·미국으로 이어진 생산 활동 둔화가 2019년 들어 다시 중국과 유럽 생산 둔화로 연결되고 있다”며 “지난해 4분기 중국과 유로존의 산업생산 개선은 긍정적이었지만, 선진국 소비 활동으로 선순환 고리를 만들지는 다소 의문”이라고 했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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