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상승세가 둔화되고, 전셋집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조선일보 DB
전셋값 상승세가 둔화되고, 전셋집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사진 조선일보 DB

“전세 물건이 아주 많은 건 아니지만 이젠 골라서 전셋집을 구할 정도는 돼요. 찾는 분들이 아주 많지도 않아서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때가 된 집주인들 사이에서는 조금씩 가격을 낮추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M공인중개업소)

전셋값 상승세가 둔해지고, 전셋집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졌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온다. 통계 수치도 그렇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1월 첫째 주(3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02% 올랐다. 전달(2021년 12월) 셋째 주(0.06%)나 넷째 주(0.04%)에 비해 상승률이 둔화했다.

전세수급지수도 94.5를 기록해 전주(95.7)보다 1.2포인트 떨어졌다.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지난해 12월 들어 약 1년 6개월 만에 기준점인 100 이하로 떨어진 이후 5주 연속 기준선을 밑돌았다. 전세수급지수가 기준선보다 낮으면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는 의미다. 전세 수요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 대표 학군지 서울 대치동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왜 갑자기 전세 시장의 분위기가 바뀐 걸까.


1│비싸도 너무 비싸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셋값이 너무 많이 올라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수요자가 줄었다는 점을 가장 먼저 꼽았다. 학군지라는 이유로 전세 수요가 많기로 유명한 대치동 은마아파트 사례로 보면 최근 이 아파트 전용면적 84㎡의 신규 전세 계약은 7억5000만~8억원 수준에서 거래됐다. 

하지만 2년 전인 2020년 1월엔 5억~6억원 선에서 거래됐다. 2년 전에 은마아파트에 전세를 구한 사람이 같은 아파트에서 다시 전셋집을 구하려면 적어도 1억5000만~3억원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대치동과 가까운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 전용면적 59㎡의 전세 상황도 비슷하다. 최근 이 아파트 59㎡의 전세 호가는 10억5000만원. 불과 2~3개월 전인 2021년 9~10월에는 11억~13억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2년 전과 비교해보면 차이는 크다. 당시엔 7억~9억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2년 전에 개포동에 자리잡은 세입자가 같은 아파트 같은 평형 주택의 전세를 구하려면 1억5000만~3억5000만원이 더 필요한 셈이다.

대치동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말이 1억~2억원이지 이걸 단숨에 융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면서 “요즘같이 신용대출도 받기 어려운 때는 전세보다는 반전세 위주로 계약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오른 전셋값만큼 현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만큼 많지 않다는 뜻이다.


2│전세 대출이 끊겼다

학군지 전세 수요자는 중·고등학생이 있는 가정인 경우가 많다. 온 가족이 살던 집을 팔거나 전세를 주고 그 자금으로 대치동에 전세살이를 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는 학부모 중 한 사람과 자녀만 이사를 하기도 한다. 부모 중 한 사람은 직장생활 등을 이유로 살던 집에 살고 전세자금대출로 자금을 융통해 자녀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대치동 전세살이를 택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출 규제 여파로 이런 수요가 자취를 감췄다. 우선 2019년 12·16 부동산 대책에 따라 시가 9억원 초과 주택을 가진 1주택자는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됐다. KB부동산에 따르면 2019년 12월 서울 아파트 매매 중윗값은 8억9751만원, 2020년 1월 서울 아파트 중윗값은 9억1216만원이었다. 서울 아파트를 가진 사람은 웬만해선 전세자금대출을 이용해 대치동 전세를 들어오지 못하게 됐다는 뜻이다.

지난해 6월 17일에 발표된 부동산 안정화 대책에선 그 기준이 더 강화됐다. 규제지역에 3억원 초과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됐다. 대치동 J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가족 단위로 전세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 최후에는 학교를 마칠 때까지 1~2년만 자녀를 학생기숙사에 넣어두기도 한다”면서 “가족 단위 전세 수요가 대출 규제로 사라졌다”고 했다.


3│집주인도 목돈이 필요하다

공급이 늘어난 것에는 종합부동산세 고지서가 날아오면서 집을 전세로 돌리겠다고 결심한 임대인이 늘어난 것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있다. 다주택자는 물론 은퇴한 1주택자 중에서도 전세를 주고 본인은 더 싼 전세를 얻는 방식으로 자금을 마련해 종합부동산세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종합부동산세는 예상보다 높은 수준에서 책정됐다. 특히 2주택 이상 소유자들의 타격이 컸다. 공시가격이 오른 데다 지난해부터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에게 적용되는 세율이 종전 0.6~3.2%에서 1.2~6.0%로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주택을 매도할 계획이 없다면 올해 상황도 다를 것이 없다. 정부에서 1가구 1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방안을 오는 3월까지 내놓기로 했지만 다주택자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표준지·표준단독주택 공시지가 상승률을 보면 올해 내야 할 종합부동산세를 포함한 보유세 부담은 작년보다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일부 임대인들은 전세금을 올려 세금을 대응하는 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종합부동산세와 보유세 등 거액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경우엔 월세보다 전세를 올리는 편이 자금 조달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월세의 경우 소득으로 잡히면 종합소득세를 더 내야 하고, 준조세 격인 건강보험료가 오르는 문제도 있다. 특히나 은퇴자라 지역가입자로 건강보험료를 내야 하는 경우는 월세 소득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대출 규제는 임대인에게 영향을 준다”면서 “대출 상환자금이나 불어난 세금을 전세보증금 상향으로 채우겠다는 사람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 같은 최근의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셋값이 단기간에 급등한 데다 정부의 대출 규제까지 맞물리면서 잠시 수요가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주택 공급 자체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국면이 아니기 때문에 전셋값이 계속 떨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도 “올해 계약갱신청구권 만료 후 전세 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전세 수요는 여전한데, 내년에 신규 공급 물량이 줄어 수급불균형으로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연지연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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