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 서울 반포동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암호화폐 루나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 뉴스1
5월 17일 서울 반포동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암호화폐 루나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 뉴스1
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 바이오 애널리스트
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 바이오 애널리스트

또다시 엄청난 규모의 투자자 피해가 발생했다. 이번엔 가상자산이다. 5월 5일 119달러(약 15만2000원)에서 5월 13일 0.00003달러(약 0.04원)로 99.99% 폭락한 암호화폐(코인) ‘루나(LUNA)’ 사태로 수많은 피해자가 생겼다. 국내 피해자만 약 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코인 발행사인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최고경영자(CEO)가 개발한 국내산 암호화폐인 테라USD(UST)는 1테라당 1달러로 가치를 유지하는 코인이다. 권 CEO는 또 다른 코인인 루나를 발행해서 테라 가치가 유지되도록 설계했다. 이 알고리즘은 달러화 같은 안전자산을 담보하지 않고 1테라가 1달러보다 가격이 내려가면 루나를 발행해서 테라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운용됐다.

문제는 5월 7일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테라 가격이 하락하자 그 담보나 마찬가지였던 루나 가격이 약 10% 폭락했다. 그러자 투자자는 매도 주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테라폼랩스가 테라 가치를 1달러로 유지하기 위해 6조 개가 넘는 루나를 발행하자 가격은 걷잡을 수 없이 급락했다.

테라(왼쪽)는 루나(오른쪽)를 통해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테라 유튜브 갈무리. 사진 뉴스1
테라(왼쪽)는 루나(오른쪽)를 통해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테라 유튜브 갈무리. 사진 뉴스1

‘폰지 사기’ 떠오르는 루나 사태

테라폼랩스가 테라 수요를 만들어내기 위해 투자자에게 현금을 주고 테라를 사서 예치하면 최대 20% 이율을 보장한다고 했던 것을 두고 ‘폰지 사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폰지 사기란 확실한 투자 수익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해서 투자자를 모은 뒤, 실제로는 별다른 투자 이익이 없으면서 신규 투자자의 투자금을 기존 투자자에게 지급해서 돌려막는 일종의 다단계 사기 수법이다. 

폰지 사기라는 말은 1919년 미국에서 찰스 폰지라는 사람이 벌인 금융 사기 사건에서 유래했다. 당시에는 나라마다 우편 요금이 달라서 IRC라는 우표를 통해 국가 간 가격 차이를 이용해서 차익 거래가 가능했다. 찰스 폰지는 증권 거래 회사를 설립한 다음 수익 50%를 보장하며 4만 명으로부터 1500만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했다. 그러나 끝은 처참했다. 결국 1920년, 그 수법이 발각됐다. 폰지 사기는 100년이 넘은 낡은 사기 수법이지만 오늘날까지도 그 수법이 나날이 진화하고 반복되고 있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폰지 사기는 불과 십여 년 전에 있었다. 미국에서 2008년에 덜미가 잡힌 ‘메이도프 사건’은 무려 20년 만에 발각됐다. 피해 금액은 650억달러. 지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83조원이 훨씬 넘는 규모의 사기를 벌인 버나드메이도프투자증권은 연 10% 내외밖에 되지 않는 낮은 수익률을 제시하며 투자자의 의심을 피했다. 심지어 버나드메이도프투자증권은 위험이 큰 자산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말로 투자자를 현혹해서 자금을 끌어들였다. 물론 실제로는 투자 없이 새로운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서 기존 투자자에게 지급했을 뿐이었다. 돌려막기 그 자체였다.

이런 폰지 사기는 비단 해외만의 일이 아니다. 국내 사모펀드 업계에서도 폰지 사기가 횡행했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2019~2020년에 일어난 일련의 유명 사모펀드의 대규모 환매 사태를 들 수 있다. 라임자산운용 사건을 비롯해 옵티머스자산운용 사건 등 다른 사모펀드에서도 환매 중단이 속속 일어나면서 결국 금융 소비자 피해 문제가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아직도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곳도 있고 대부분은 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이번 테라와 루나 사태도 그렇다. 대규모 투자 피해가 발생하면 결국 오랜 투자 사기의 전형적인 수법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곤 한다. 실제로 한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조희팔 사건(2004∼2008년까지 전국에 10여 개 다단계 판매 업체를 차리고 의료 기기 대여업으로 30∼40%의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속여, 약 5조원을 가로챈 국내 최대 규모의 유사수신 사기 사건)’ 등 희대의 사기 사건이 폰지 사기 수법과 궤를 같이할 만큼 폰지 사기는 전형적인 금융 사기 수법이다.


루나 사태는 과거 사모펀드 사태와 닮아

투자자가 이런 유형의 금융 사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해서는 폰지 사기가 어떻게 수많은 사람의 의심을 피해 가며 인기몰이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발생했던 최악의 폰지 사기들은 높은 인기만큼이나 피해 규모 또한 상당히 컸다. 그들이 과연 어떻게 비판과 의심을 뚫고 수많은 투자자의 마음까지 현혹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공통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수법을 써왔다.

테라가 20%라는 높은 이율을 보장한다고 했듯이, 현재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사기 및 부정 판매로 판정돼 전액 환급을 명령받고 법원에서 재판 중인 라임자산운용의 무역금융펀드와 펀드 명세서의 투자 자산을 허위로 공시한 것으로 밝혀진 옵티머스자산운용의 공기업 채권 펀드 등도 모두 안정적인 수익을 내세웠다. 안정적 수익을 보장하며 투자자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든 것이다. 

테라 개발자들이 테라 알고리즘에 대한 비판을 쉽게 간과해버렸듯이 사모펀드도 너무 쉽게 안정적 수익을 자신했다. 일부 사모펀드 운용사는 AUM(운용 자산 규모)이 꾸준히 늘어나면 괜찮을 거라고 자신하며 계속 신규 펀드를 만들어서 기존 펀드의 환매를 돌려막았다. 심지어 무역 금융 펀드는 규모가 약 6000억원에 이르렀는데 무역 금융 대출 담보가 확실할 뿐만 아니라 여러 헤지 펀드에 분산 투자하므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약 5000억원 규모의 공기업 채권 펀드는 공공기관 발주 사업을 수주한 기업이 발주처에서 받을 매출 채권에 투자한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모두 허위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불법 행위도 저질렀는데 계약서나 펀드 명세서도 모두 허위로 작성했다. 

사모펀드 사태에서도 개인 투자자가 사모펀드 자산을 일일이 검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실제로 대부분 운용사나 판매사의 명성을 믿고 투자한 경우가 많았다. 테라와 루나 사태도 마찬가지다. 테라가 유지되려면 시장에서 루나를 계속 사줘야 하는 불완전한 구조이기에 결국 테라와 루나를 믿고 마지막에 루나를 산 사람이 모든 손실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가상자산 폰지 사기, 규제 사각지대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행법상 루나 사태를 금융 사기라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일단 가상자산은 현행 자본시장법이 규제하고 있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5월 17일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테라와 루나 사태와 관련해 “이번 사태와 관련한 피해 상황과 발생 원인을 파악해 앞으로 제정될 디지털자산기본법에 불공정 거래 방지, 소비자 피해 예방, 적격 ICO(암호화폐 공개) 요건 등 재발 방지를 위한 방안이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도 “관계 법령 부재에 따라 감독 당국의 역할이 제한적인 상황”이라고 인정했다. 금융감독원도 상황을 주시하겠다고는 하지만 당장 이렇다 할 법을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가상자산이 초유의 피해를 발생시켰지만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 답답한 사람들은 권 CEO를 사법 처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싱가포르 경찰 움직임에 여론이 주시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아 보여서 피해자 보상은 과연 가능할지, 문제가 심각하다.

사후약방문 같아 씁쓸할 따름이나 이번 투자자 피해는 또 한 번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세계가 주목했던 뛰어난 천재도 투자에서만큼은 절대적으로 옳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사모펀드 사태도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업계 1위의 사모펀드 운용사와 은행에서 터졌다. 결국 가장 큰 피해는 명성과 평판을 믿고 마지막에 들어간 이들이 입었다. 투자자는 투자 대상을 잘 알고 투자해야 한다. 잘 알기 어렵다면 투자하지 않는 것도 충분히 훌륭한 투자 판단일 수 있다. 새로운 것이 없는 당부지만, 기본에 충실해서 나쁠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