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트레이더가 우려 섞인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트레이더가 우려 섞인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의 장·단기 금리차(스프레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장·단기 금리차는 미국 경제의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장·단기 금리차가 축소되는 것을 넘어서 역전까지 될 경우 미국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드는 일이 많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와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이 좁아지는 장·단기 금리차를 보며 긴장하는 이유다.

지난 6일 기준으로 미국 국채 10년물과 2년물의 금리차는 42bp(1bp는 0.01%포인트)까지 줄었다. 장·단기 금리차를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인 미국 국채 30년물과 5년물의 금리차도 30bp까지 줄었다.  

장·단기 금리차 축소는 일반적인 금융 환경에서는 나오지 않는 이상 현상이다. 채권의 경우 만기가 길어질수록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장기물이 단기물보다 수익률이 높다. 미국 국채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미국 국채 10년물의 수익률이 2년물보다 높아야 하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장·단기 금리차가 주목받는 건 과거 사례들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은 1970년부터 2003년까지 33년 동안 경기 침체와 장·단기 금리차가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분석한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기간에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 경우는 일곱 번이었다. 이 중 여섯 차례에서 경기 침체 현상이 나타났다. 금리 역전이 경기 침체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는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뿐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10년물 금리가 2년물 금리보다 낮아지는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했고, 이후 세계를 덮친 금융위기가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지금 당장 장·단기 금리차가 축소되는 상황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금리차가 계속 축소되다 역전까지 되면 실제 경기 침체가 시작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채권왕으로 불리는 빌 그로스는 작년 말 장·단기 금리차가 줄어드는 현상을 보고 “경기 침체를 유발하는 수준에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도 지난 3월 기자회견에서 장·단기 금리차가 경기 침체를 예견하는 지표라는 데 동의했다. 미국의 경제 매체인 CNBC는 “장·단기 금리차가 축소되는 건 언제나 경기 침체의 중요한 트리거 역할을 했다”고 경고했다.

장기물과 단기물의 금리 차이가 역전되는 이유에 대한 뚜렷한 설명은 없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준 의장도 ‘수수께끼’라는 표현을 쓸 정도다.

다만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장기 금리보다 단기 금리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건 확실하다. 미국 연준은 2013년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은 2015년 12월이었지만, 그 전부터 시장에 공급하는 유동성(자금) 규모를 줄였다. 장·단기 금리차가 줄어들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빌 그로스 “경기침체에 가까워져”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2013년 이후 미국 기준금리와 미국 국채 2년물 금리 간 상관계수는 0.7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기준금리와 10년물 금리 간 상관계수는 -0.2에 불과했다. 기준금리와 단기물 금리 간에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인 반면 장기물 금리는 특별한 관계가 없었다. 

작년부터 미국 연준은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단기물 금리가 장기물보다 더 가파르게 오르면서 장·단기 금리차가 좁아지는 원인이 된 셈이다. 12일 열리는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25bp 올릴 가능성이 확실시되고 있는 만큼, 장·단기 금리차 축소 현상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는 것도 다가올 경기 침체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경기 침체가 시작되면 기준금리를 낮추면서 시중 통화량을 늘리는 통화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지금의 낮은 금리 수준에서는 제대로 된 통화정책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미국 연준은 경기 침체가 시작되기 전에 최대한 기준금리를 높이려고 하는 것이다. 어떤 식이든 장·단기 금리차 축소는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급등한 국제유가도 눈여겨봐야 한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기대 인플레이션도 덩달아 오르게 된다. 기대 인플레이션은 경제 주체들이 예상하는 미래의 물가 수준을 말한다. 국제유가가 오르니 앞으로 물가가 뛸 것으로 보는 것이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유가 상승은 장·단기 금리에 모두 높은 영향을 미치지만 상대적으로 단기 금리 상승과 밀접하다”며 “국제유가가 추가로 상승하면 장·단기 금리차는 더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미국 경기 언제까지 좋을까

미국 경기가 언제 침체될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 경기가 언제 침체될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 경제 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이코노미스트 60명을 대상으로 미국 경기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 결과를 보면 58.8%가 ‘2020년에 미국 경기 침체가 시작될 것’이라고 답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JP모건이 올해 4월 세계 초고액순자산보유자(지금 당장 금융 투자 가능 자산이 3000만달러 이상인 사람)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응답자의 75%가 미국 경기 침체가 시작될 시기로 2020년을 꼽았다.

미국 경제는 유례를 찾기 힘든 호황기를 보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기는 107개월 연속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1990년대 초반 120개월 연속 경기 호황이 이어진 이후 역사상 두 번째로 긴 호황기다.

하지만 경기는 늘 돌고 돈다. 언제까지 경기가 좋기만 할 수는 없다. 미국 경기의 고점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다. 최근 장·단기 금리차 축소를 미국 경기 침체의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지금 당장은 장·단기 금리차 축소 정도를 제외하면 미국 경기가 침체될 것이라는 뚜렷한 신호는 없다. 제조업 근로시간, 제조업 수주 현황, 소비자신뢰지수, 주당 민간부문 제조업 평균 근로시간 등 미국 경기를 보여주는 여러 지표가 안정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나친 낙관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 경기 침체가 시작되면 대외의존도가 큰 한국 경제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지금 당장은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한국 경제가 순항하는 것 같지만,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충격의 강도는 더 클 수 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미국이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면 금융위기 이후 신흥국에 밀려들어온 외국인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한국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지난해 반도체 세계 수요 급증으로 크게 증가했던 한국 수출도 올해는 수요 둔화, 엔화 대비 원화 환율 하락에 따른 일본산 반도체 가격 경쟁력 상승 등의 영향으로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미국 경기 침체에 대비해 주식 투자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신영증권은 미국 증시에 대한 투자 의견을 ‘중립’으로 제시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연구원은 “길게 보면 주식시장은 10년 강세장의 8~9부 능선 부근에 왔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또 “미국 증시가 못 오르는데 한국 증시가 상승하기는 힘들다”면서 “틈새 투자의 개념으로 바이오 등 중소형 성장주에 주목하는 게 그나마 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