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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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 연세대 경영학,전 신영증권 제약· 바이오 애널리스트
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 연세대 경영학,전 신영증권 제약· 바이오 애널리스트

하반기 주식 시장이 소폭이나마 반등할 것을 예상하는 이들은 이제 슬슬 ‘기업공개(IPO) 대어(大魚)’라고 일컬을 만한 기업의 화려한 증시 입성을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IPO 시장에는 여전히 냉기가 흐른다. 이는 IPO 흥행에 실패한 개별 기업 문제일 수도 있다. 다만 투자자들은 개별 기업 문제로 보기보다는 시장 전체의 문제로 보고 있다. 이들 마음속에는 하반기에도 IPO 시장이 쉽게 살아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조금씩 싹트고 있다.

금리 인상, 자금 경색, 증시 폭락 등 세계적으로 IPO 시장은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서 2~3년 동안 IPO 시장이 호황을 겪은 뒤로 줄줄이 IPO가 참패하는 것 또한 이유가 있을 터. 시장이 IPO에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이유 세 가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1│‘공모주 투자=단타 매매’라는 시장의 학습 효과 누적

우선 최근 2~3년 동안 IPO 기업의 소위 ‘따상(상장일에 공모가 대비 두 배의 시초가에서 거래돼 상한가를 기록)’이 무색하게 주가가 폭락하며 IPO는 단타 매매(단기 보유 후 매도)의 장이 됐다. 상장 기업들의 주가가 시간이 지날수록 부진하며 공모가를 밑도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지면서 투자자에게는 ‘상장 직후 바로 공모주를 파는 것’이 IPO 투자 바이블로 자리 잡게 됐다.

결국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게 되는 기업이 많아지며 시장에서는 IPO 시점에서의 기업 가치, 즉 공모 가격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시장이 활황이었을 때는 용인됐던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산정 방식)에 관해서도 보수적으로 적용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 이처럼 상장 직후부터 주가가 부진한 이유로는 우선, 공모주 투자의 인기를 따라가기에 제도적 미비점이 많기 때문이다. 또 이를 둘러싼 투자자 신뢰가 하락한 것도 공모주 부진에 영향을 준다.

IPO 대어로 손꼽히는 기업은 대부분 이름난 벤처캐피털(VC), 자산운용사, 해외 투자자 및 대기업에서 투자받는다. 그리고 이들은 인정받은 기업 가치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공모 가격을 인정받고자 한다. 예전 같으면 투자자들이 이름값만으로도 수긍해주는 분위기도 더러 있었지만, 이제는 시장 안목 자체가 사뭇 높아졌다. 설령 앞으로 시장의 투자 심리가 개선되더라도 IPO를 통해 돈을 벌기란 예전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IPO 시장이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비대칭성을 해소하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IPO는 이미 거래되고 있던 비상장 주식을 공개하는 과정이기에 근본적으로 누군가에게는 기울어진 운동장일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 유리할까. 이는 공모가에 투자하는 신규 투자자에 비교해 현저히 낮은 가격에 투자한 기존 주주일 수도 있고 내부 정보를 잘 알고 있는 경영진일 수도 있다. 또는 일반 투자자 대비 유리한 조건으로 주관사로부터 공모 물량을 배정 받는 이들일 수도 있다. 


2│공모 물량 배정,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다

현행 IPO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공모 물량 배정 방식이다. 상장 주관을 맡은 증권사는 일부 외국인 투자자에게 막대한 물량을 배정하는데, 이는 보호예수(일정 기간 보유 주식 매매 제한) 의무조차 없는 물량이다. 증권사들은 주식 매매 주문을 많이 넣는 외국인 투자자를 VIP 손님으로 모시기 급급한 탓에 상장 물량을 통 크게 배정해준다. 일종의 손님 모시기 수단이다. 상장 직후 쏟아지는 대부분 물량이 바로 외국인 투자자에게서 나오지만, 아직도 감독 당국의 감시망을 피해 있는 실정이다.

현재 조 단위 규모의 몸값으로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한 기업은 상장 직후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소액 주주에게까지 보호예수 확약을 받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안타까운 점은 기존 주주 보유 주식을 아무리 묶어놓아도 신규 공모 물량을 버젓이 받아 간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물량은 어찌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제도상의 허점에서 그치지 않는다. 공모 물량을 막대하게 배정받기 위해서는 동전의 양면처럼 필연적으로 불법 행위가 수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이런 불법 행위부터 먼저 손봐야 한다.

그러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2020년 해체된 이후로 금융 당국은 금융 범죄와 관련해서는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고 조사에 자진 협조할 것을 요청하기만 한다. 이처럼 조사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 왔기에 IPO 시장도 외국인 투자자에게는 무법천지가 된 지 오래다. 실제로 이런 허점을 이용해 IPO 물량 확보와 공매도 등만을 목적으로 최근 몇 년 사이에 국내 증시에서 활동하며 막대한 차익을 거둔 ‘여의도 외국인 투자자’가 많다.


3│상장 후 주식 수급·펀더멘털 문제 등 종합적 보호 대책 필요

지난해 12월 카카오페이 상장 후 1개월 만에 대표이사를 포함한 경영진이 스톡옵션을 팔아치우며 거액의 차익을 얻은 일이 있었다. 소위 ‘먹튀’ 논란이다. 다행히도 올해 초에 신규 상장 기업 임원이 스톡옵션 행사로 취득한 주식에 대해 6개월간 처분하는 것을 제한하는 금융 당국의 규정이 생겼다. 미국의 경우 스톡옵션 매도에 대한 계획을 사전에 공시해서 개인 투자자가 이에 대응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상장 이후 일반 투자자가 예상할 수 없는 수준의 매도 물량이 출회되는 주식 수급에 관해서 금융 당국은 법적으로 계속 보완해 나가야 한다.

또한 기업의 펀더멘털(본질적 체력) 측면에서도 IPO 과정에서 면밀히 검증돼야 한다. 최근에는 특히 신성장 산업군의 기업 상장이 잇따르며 가치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둘러싸고 어려움이 생겼다. 예를 들어 적자가 이어지는 기업이 상장하려면 재무적 한계를 뛰어넘을 만큼의 가시적 성장성이 있는가를 IPO 과정에서 검증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신성장 기업의 상장 사례에서 상장 이후 극적인 흑자 전환이나 이에 비견할 만한 폭발적 성장을 보여준 사례가 드물기에 밸류에이션은 더 보수적으로 변하는 추세다.

또 신성장 기업뿐만이 아니라 상장을 앞둔 회사가 상장 시점에서 미래 성과를 미리 끌어다가 최대치로 올려놓고 상장 이후에는 실적이 부진한 경우도 다수 있다. 이런 행태를 투자자도 잘 감별해야겠지만 이는 상장을 승인하는 당국 차원에서도 충분히 걸러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이처럼 까다로운 검증이 IPO 자체를 너무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면, 미국처럼 부실 기업 퇴출이라도 자유롭도록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IPO 투자에 뛰어든 일반 투자자들이 관리 부족으로 인해 입는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말이다.

IPO는 연예인의 데뷔에 비유될 만큼 시장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는 특별한 행사다. 동시에 이는 기업이 금융 시장으로부터 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업과 금융 당국엔 시장을 건전하게 유지할 책임 또한 요구된다. IPO 시장에서 마음이 떠난 투자자의 관심을 다시 돌릴 수 있도록 금융 당국뿐만 아니라 증권사와 상장 기업이 자정(自淨)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