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한화증권 투자분석 팀장, ‘주식의 시대,투자의 자세’ 저자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한화증권 투자분석 팀장, ‘주식의 시대,투자의 자세’ 저자

주가 조정이 깊어지자 투자자들의 탄식이 커져만 간다. ‘주식은 사서 들고 가면 된다’라는 투자 선지자들의 복음을 믿고 투자에 나섰던 주린이(주식+어린이)들의 상실감은 더욱 크다. 사랑한 만큼 미움이 커졌고, 더 이상 한국 증시를 기대하지 말자는 무관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증오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다. 전 세계 증시가 다 부진한데, 유독 한국 증시를 향한 실망이 극에 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시장이 좋을 때나 부진할 때나 한국 증시가 투자자들의 기대에 호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투자는 연애와 비슷하다. 투자 대상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해서다. 헤어짐을 선택한 커플 중에서 옛사랑을 그리워하며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인간 다시는 보지 말자’며 자신의 선택마저 부정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서학개미와 동학개미가 지닌 마음의 간극이 이와 비슷하다. 서학개미는 그래도 미국 주식을 그리워하지만, 동학개미들은 진저리를 치면서 시장을 떠나고 있다. 이들이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이유는 단순한 데이터 비교에서 알 수 있다. 1990년 이후 한국과 미국을 대표한 두 주가지수와 시가총액(시총) 크기의 변화다. 두 지수 모두 우상향했지만 기울기의 차이가 크다. 이는 늘어난 시총만큼 주가지수가 따라잡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우리 증시의 고질적인 문제인 더블카운팅(이중계산)의 영향이다. 

한국에서는 시장이 좋을 때나 부진할 때나 주주 권리를 훼손시키는 방식의 자회사 상장이 이어지고 있다. 지주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된 탓에 투자 결정 과정에서 지주회사는 후순위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국내 지주회사의 순자산가치(NAV) 할인율이 과도하게 높은 배경이다. 

해외에서는 모회사와 자회사의 동시 상장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가령 구글은 지주회사 알파벳을 설립하고 2015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유튜브, 구글, X, 구글 딥마인드, 웨이모 등 자회사의 기업가치는 그룹 내 유일한 상장사이자 지주회사인 알파벳에 모두 반영돼 있다. 구글이 지주회사 디스카운트(할인) 이슈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이유다. 반면 한국의 지주회사는 자기 돈이 아닌 남의 돈(부채비율)으로, 지분을 낮게 유지하는 방식으로 자회사를 늘려 갈 수 있다. 그 결과 재벌은 지주회사 제도를 활용해 적은 돈으로 더 많은 계열사를 소유할 수 있다. 국내 기업의 물적분할과 자회사 상장이 이어지는 배경이다.

 

물적분할 시 주주 권리 보장해야

지배구조가 가문(재벌)의 지배에서 주주의 지배로 바뀌어야 한다. 시장 왜곡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적분할과 자회사 상장이 시총에 반영되면서 코스피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의 시총 대비 상대 지수의 간극이 커지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기업 집단의 빅딜을 추진하기 위해 허용됐던 법적 규제 완화를 개정해야 한다. 구조조정 시기에 필요했던 법령 및 제도 개선을 미뤄서는 안 된다. 주주 권리가 보호되지 않으면 이미 주주 가치를 중시하는 글로벌 기업에 투자해본 이들이 다시 한국 주식으로 귀환하기 쉽지 않다.

변심한 주린이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물적분할 시 주주 권리 보장이다. 물적분할 이벤트의 핵심은 의결권 변화다. 국내에서 물적분할은 100% 자회사를 신설하기 때문에 연결 재무상 변화가 없다는 이유로 주주의 이익과 권리가 침해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해왔다. 하지만 물적분할로 인해 주식회사의 본질과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의결권이 사라지게 된다. 모회사 주주는 자회사가 상장과 같은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어떠한 권리도 행사할 수 없으며 주주 가치와 권리 훼손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일반주주가 물적분할의 목적을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주주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다. 2020년 이후 공시된 물적분할 중 자금조달·투자유치를 명시한 비중은 7%에 불과했다. 더불어 물적분할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승인이 필요하지만 국내 주주총회 참석률과 그룹사의 내부지분율을 감안한다면 일반주주의 의결권과 무관하게 지배주주 지분만으로도 통과가 가능하다. 사실상 일반주주가 보유한 의결권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의무공개매수 제도 도입 필요

최근 투자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이를 의식한 변화가 뒤따르고 있다. 올해 상반기 POSCO홀딩스는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물적분할해 설립한 포스코(사업회사)를 상장하는 경우 모회사의 주총 특별결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정관을 추가했다. KT는 KT클라우드를 현물출자로 분사하는 과정에서 모회사 주주 가치 보호 방안이 마련된 이후 자회사 상장을 추진하고, 모회사 주주에게 자회사 주식을 배당할 수 있도록 정관을 변경했다. 금융 당국도 일반주주의 권익 제고 방안으로 공시 강화, 주식매수청구권 도입, 상장심사 강화 등을 내놨다.

추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현물출자는 신규 설립된 회사에 부동산, 채권, 특허권, 영업권 등을 출자하고 지분을 취득하는 방식으로 물적분할과 유사하다. 하지만 주주총회 특별결의 없이 이사회 결정으로 추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주식매수청구권 회피 목적으로 현물출자 방식을 사용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의무공개매수 제도 도입도 고려할 만하다. 국내에서 지배주주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인정받고 지분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일반주주는 해당 가격에 매각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보유한 주식의 의결권과 가치에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해외에서는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통해 지배주주의 지분 매각 시 함께 매각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일반주주를 보호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1997년 도입했으나 IMF로 인해 폐지됐다. 투자한 기업이 인수합병(M&A)으로 인해 지배주주가 변경될 경우 기업의 방향성이 변화하고 투자 포인트가 소멸할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에 일반주주에게도 함께 매각하는 권리를 부여할 장치가 필요하다.

한국 증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만성적 저평가에서 벗어나려면 한국만의 잘못된 지배구조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경영권을 가진 소수의 대주주가 다수의 일반주주들의 권리를 훼손하는 걸 막아야 한다. 기업이나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기보다, 법적·제도적 주주 권리 보장 장치가 우선 마련돼야 한다. 그래야 일반주주들 역시 상황이 악화돼도, 시장을 떠나지 않고, 주주로서 지속해서 투자할 것이다. 기업 성장의 이득을 주주 모두가 누릴 수 있어야 장기투자가 가능하다. 

떠나간 연인이 그립다면 상황을 바꾸거나 나를 변화시켜야 한다. 삼성전자 주주 수가 500만 명이 넘어선 이때가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