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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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 하나은행 클럽원 한남PB센터 지점장 전 하나은행 본점 영업1부 PB센터·도곡PB센터  프라이빗뱅커
김병주 하나은행 클럽원 한남PB센터 지점장 전 하나은행 본점 영업1부 PB센터·도곡PB센터 프라이빗뱅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고 또 그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인문주의의 전통이 됐고, 사람은 무의식 상태에서도 자신이 대단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매일매일 상당히 비합리적인 판단과 결정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 결과가 비록 실패로 드러나더라도 결정하기 전까지의 과정은 합리적이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전통 경제학에서 바라보는 인간은 합리성에 근거해 항상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존재로 간주됐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주목받는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왜 비합리적 판단과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 학문이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합리성을 굳건히 믿는 전통 경제학과는 달리,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심리와 본성에 주목한다. 아울러 인간의 비합리성은 일정한 경향성을 띠는데, 이런 경향성을 알고 적절히 통제하면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인한 문제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손실로 이어지는 투자자의 비합리적 판단들

행동경제학에서 주목하는 인간의 비이성적인 행동은 투자의 세계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다. 일반적인 투자 행위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비합리적인 행동이 나타난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우선 ‘손실 회피 경향’이다. 우리는 유사한 물건임에도 내가 소유한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그 가치가 지속될 것이라고 낙관하는 경향이 있다. 투자한 펀드가 큰 손실을 보고 있는데도 환매를 주저하는 이유는 ‘언젠간 원금이 회복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펀드를 환매하면 손실이 확정된다는 심리적인 거부감 때문이다. 이는 이익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간의 본성과도 관련이 있다.

실제로 펀드나 주식에 투자할 때 많은 사람은 본인이 보유한 펀드의 가격이 조금만 오르더라도 다른 특별한 이유 없이 앞으로 가격이 떨어질 것을 걱정해 곧바로 팔아 치우곤 한다. 반대로 펀드 가격이 폭락한 경우에 그 손실을 외면한 채로 가격이 언젠가 다시 오를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를 하며 보유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다음은 ‘현상 유지 편향’이다. 사람은 누구나 현재의 익숙한 상황을 가장 편하게 생각하며 이런 상태가 지속하기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투자에서도 한 번 결정한 사항은 쉽게 바꾸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펀드가 있는 반면, 금융 시장 환경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수시로 점검하고 리밸런싱(rebalancing·재조정)해줘야 하는 투자 상품이 있음에도, 몇 년 전에 결정한 포트폴리오가 한 번도 변경되지 않고 유지되는 경우도 많다. 투자를 결정하기까지 긴 시간 생각과 분석을 하였음에도 막상 투자가 진행된 이후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 역시 허다하다.

‘자기 양 떼 효과’라는 것도 있다. 양은 한두 마리가 울타리 한쪽으로 이동하면 나머지 양이 따라 움직여서 결국 넓은 목장의 한구석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습성이 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행동을 기준으로 삼는 대중 심리를 ‘양 떼 효과’라고 하는데, ‘자기 양 떼 효과’는 앞서 했던 자기 행동을 기준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비슷한 행동을 답습하는 현상을 말한다. 특정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해 이익을 냈을 경우, 반복적으로 그 종목이나 펀드에 투자하는 게 대표적이다. 중국 주식형 펀드에 투자해 한 번 이익을 낸 경험이 있으면 다음에도 특별한 이유 없이 중국 주식형 펀드를 선택하는 행위 등을 예시로 들 수 있다.

인간이 가지는 ‘심리적 회계’ 또한 비합리적인 경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100만원짜리 스마트폰을 살 때는 흔쾌히 구입하지만, 마트에서 콩나물 2000원어치를 살 때는 가격을 비교하며 주저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스스로 사용할 현금의 계정을 ‘스마트폰 회계 계정’과 ‘콩나물 회계 계정’으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금 계좌에 현금을 보유한 상태에서 그보다 더 금리가 높은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아 이자로 인한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 이는 스스로 예금과 대출을 각기 다른 항목의 회계로 분리해뒀기 때문이다. 현금을 보유하면서 투자 타이밍을 노린다는 주장도 틀리지는 않으나 대부분의 사람은 명확한 이유 없이 예금과 대출을 동시에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비이성적 투자 막는 안전장치 있다

비합리적인 투자 과정을 막기 위해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퇴직연금에서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도 도입된다. 이는 퇴직연금에서 운용 중인 상품이 만기가 되는 경우, 6주 동안 가입자의 운용 지시가 없으면 사전에 정해둔 운용 방법으로 적립금이 자동 운용되도록 하는 제도다. 퇴직연금 가입자의 관심을 통해 적극적인 수익률 관리를 권장하는 제도이며 앞서 예를 든 ‘현상 유지 편향’에 대응하는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비합리성의 덫을 피하기 위해서는 투자 결정 과정과 포트폴리오를 제삼자의 시각으로 수시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때로는 금융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전문가도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의 투자 및 자산 관리 업무에서 비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고객에게는 제삼자의 관점에서 합리적인 투자 방향을 설정할 가능성이 크다.

은퇴 자산 관리도 마찬가지다. 은퇴 생활을 하고 있거나 은퇴를 앞둔 고객과 노후 준비를 위한 투자 계획을 점검해 보면, 이런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안전한 정기예금에 넣어 두고 신경 쓰지 않겠다’ ‘내가 여태까지 해 온 방식대로 자산을 투자하겠다’ ‘이미 다양한 펀드에 가입한 상태이며 괜찮은 펀드가 있다면 추가로 추천해 달라’고 한다.

하지만 소득이 발생하는 기간의 투자와 은퇴 이후의 투자 방식 및 포트폴리오는 분명 달라져야 한다. 앞으로 만회할 기회가 많았던 시기와는 달리 이 시기에는 앞서 기술했던 다양한 유형의 비합리적 행동이 반복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가령 30% 가까운 손실이 발생하고 있는 펀드가 있는데도 전망에 대한 분석 없이 ‘지금 많이 떨어졌으니 앞으로는 좋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게 바람직하다. 이럴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채권이나 주가연계증권(ELS) 등으로 전환해 연간 5~7%씩이라도 수익을 기대하는 투자로 바꾸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은퇴 후에도 본인의 투자 상태에 관심을 두고 최대한 합리적 투자를 추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성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