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히스패닉계 이민자가 지난해 11월 백악관 앞에서 이민법 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한 히스패닉계 이민자가 지난해 11월 백악관 앞에서 이민법 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글로벌 경제의 가장 뜨거운 논란거리 중 하나는 이민 문제다. 유럽에서는 난민사태로 인해 몰려드는 이민자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극우 정당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미국에서도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을 부추기며 극우 세력 결집에 나섰다. ‘이민자의 천국’ 뉴질랜드 정부도 계속 늘어나는 이민자수를 통제하기 위해 앞으로 2년 동안 영주권 승인 상한선을 하향 조정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지난해 8월부터 지난 7월까지 1년 동안 뉴질랜드에 정착한 이민자수는 6만9000여명으로 사상 최대였다.

트럼프와 유럽의 극우 정당들이 이민 반대의 근거로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경제 요인은 일자리다. 취업 문제를 ‘제로섬 게임’으로 보면 이해가 어렵지 않다.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차지하는 만큼 자국민의 취업 기회가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민자들이 경제에 기여하는 몫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간단히 정리하면 경제 이슈로써 이민 문제는 ‘이민자들이 가져가는 일자리만큼 GDP(국내총생산)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린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유럽 선진국에서는 이민 노동력 유입을 통해 노인 부양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EU 회원국들에서는 현재 평균 4명의 노동 가능 인구가 65세 이상 노인 한 명을 부양하고 있다. 하지만 출산율과 기대수명 등을 고려할 때 2060년이면 두 명의 노동 가능 인구가 노인 한 명을 부양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렇다 해도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민자 수용을 위해 필요한 투자와 비용 지출이 부담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민자들이 새로 정착한 국가에 다양성과 문화적 역동성을 더해 줄 수도 있지만, 적응 실패로 국가에 대한 애착을 잃고 겉돌 경우 오히려 사회 혼란을 가중시킬 우려도 있다.


창업 성공한 이민자, 고용 더 많이 해

하지만 ‘글로벌 창조 경제’의 핵심 동력으로 떠오른 스타트업 창업에 초점을 맞추면 이민자 유입의 순기능은 좀 더 분명해진다.

세계 최대 창업 대국인 미국에서도 창업 열기는 점차 사그라들고 있는 추세다. 2014년 미국 메릴랜드 대학 경제학과의 라이언 데커 교수 등이 전미경제학회 저널에 기고한 연구 결과를 보면, 미국 전체 고용에서 스타트업을 비롯한 신생 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이전 30년 동안 30% 가까이 줄었다. 산업 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창업에 따른 기회비용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민자들은 창업을 통한 미국 경제 활성화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이민자들이 미국 창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시간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최근 발표했다.

미국 인구통계국 자료를 바탕으로 한 이번 보고서에서 이민자들은 2008년 조사 대상인 미국 31개 주 전체 고용의 15%를 차지했다. 하지만 같은 해 이들 지역의 전체 창업 기업 중 이민자 창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7.1%에 달했다. 이민자들이 창업한 기업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벤처캐피털(VC)의 자금 지원을 받아 창업하는 비율이 높다. 1995~2008년 VC 투자로 창업한 기업 중 이민자 창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31%로 높았다. 또 다른 특징은 기업 규모가 영세하다는 점이다. 이민자들의 재정 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모두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이민자들이 설립한 기업의 고용 인원은 같은 기간 평균 4.4명으로 평균 7명인 미국 현지인 설립 기업보다 규모가 작았다. 이민자들과 현지인이 함께 창업한 기업의 경우 평균 고용 인원은 16.9명으로 나타났다.

이민자 기업은 오래지 않아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았지만 살아남을 경우 향후 6년간 고용 인원과 임금 등에서 성장률이 현지인 기업보다 높았다.

이민자들이 창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에는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는 절박함과 미국 내 자국민 네트워크의 도움, 우수한 기술력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민자 창업이 성장 동력이 된 예는 미국 밖에도 여럿 있다. 대표적인 예가 칠레다.

칠레 정부는 2010년부터 창업 지원 프로그램 ‘스타트업 칠레’를 운영 중이다.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4만달러(약 4500만원)를 지원하고 1년짜리 비자도 내준다. 프로그램 시행 2년여 만에 37개국 900명의 기업가가 500개의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이에 자극받은 이웃 나라 브라질도 비슷한 스타트업 진흥 프로그램을 출범했다.


Plus Point

올해 노벨상 수상 미국인
전원 이민자·이민 가정 출신

벵트 홀름스트룀 MIT 교수
벵트 홀름스트룀 MIT 교수

올해 노벨상을 받은 미국 수상자 7명 전원이 이민자 또는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나타났다. 노벨 문학상을 깜짝 수상한 가수 밥 딜런은 미네소타에서 태어난 미국 태생이지만 부모들은 유대계로 옛 소련, 현재의 우크라이나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 왔다.

이에 앞서 올해 노벨 화학상과 물리학상,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연구자 6명은 전원 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 이민 온 이민자들로 밝혀졌다.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74세의 프레이저 스토더트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미국에 귀화한 이민자 출신이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3명의 미국 물리학자들은 전원 영국 출신 이민자들이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의 절반을 차지한 82세의 데이비드 사울레스 워싱턴대 교수는 영국에서 태어나 아직도 영국 국적을 가진 영주권자다.

노벨 물리학상의 나머지 절반을 공동으로 받은 65세 덩컨 홀데인 프린스턴대 교수와 73세 마이클 코스털리츠 브라운대 교수도 모두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자가 됐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2명 중 올리버 하트 하버드대 교수는 영국 출신으로 미국에 귀화했다. 벵트 홀름스트룀 MIT 교수는 아직 핀란드 국적을 가진 이중국적자다.

한편 1901~2015년까지 미국 국적 노벨상 수상자의 31%는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 태어났다. 전체 미국인 중 이민자 비율인 15%의 2배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