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계좌’ 스캔들 여파로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웰스파고 은행의 주가는 최근 한 달 보름동안 10.4% 가량 하락했다. 전광판에 웰스파고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자료 : 블룸버그>
‘허위계좌’ 스캔들 여파로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웰스파고 은행의 주가는 최근 한 달 보름동안 10.4% 가량 하락했다. 전광판에 웰스파고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자료 : 블룸버그>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지난 19일 미국 4대 은행인 웰스파고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이는 향후 6개월 내에 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다는 뜻이다.

웰스파고의 현재 신용등급은 A다. S&P가 은행의 등급 전망을 조정한 것은 이 은행의 ‘허위계좌’ 스캔들 때문이다. 미 금융당국은 고객 동의 없이 200만개가 넘는 예금계좌와 신용카드 허위 개설 등을 이유로 지난달 2000억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했다.

웰스파고는 지난달 미 소비자금융국과 로스앤젤레스 검찰에 기소된 이후 이번 사건에 연루된 5300명의 임직원을 해고하고 리스크 관리 및 인센티브 제도, 직원 교육 제도 재정비에 나섰다. 하지만 미 당국의 조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 연방 검찰은 웰스파고 직원들이 무단으로 고객 정보를 탈취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웰스파고 주가는 9월 이후 최근 1달 동안 10%가량 빠졌다.

미 언론은 “금융위기 이후 승승장구하던 웰스파고가 휘청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웰스파고의 실패 원인을 세가지 포인트로 짚어봤다.


포인트 1 | 허술한 직원 보상 체계

웰스파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직원 보상 체계가 부실했다는 점이다. 웰스파고 직원들이 자행한 ‘끼워 팔기’와 ‘실적 부풀리기’는 신규 계좌 유치수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시스템에서 비롯됐다. 웰스파고 직원들은 고객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단 계좌만 유치하면 인센티브를 받았다.

은행은 직원의 성과를 평가할 때 핵심성과지표(KPI)를 주로 쓴다. 이렇게 기업의 목표를 개인의 성과 목표로 세분화하는 것은 합리적인 경영 기법으로 각광받아왔다. 성과 시스템이 잘 설계돼 있으면 KPI는 직원과 기업 양쪽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KPI가 성공하려면 철저한 직원 통제와 거버넌스, 윤리적 기업 문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 같은 요건 없이 KPI를 조직 말단까지 세분화하면 직원들은 KPI를 ‘보너스를 받는 게임’ 혹은 ‘해고당하지 않기 위한 생존 게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포브스>는 “고객의 의도와 무관하게 고객이 지불하는 비용으로 직원이 수혜를 보는 구조라면, KPI를 짤 때 일부 직원이 이를 악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사전에 예상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존 스텀프 웰스파고 전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미 의회 청문회에 참석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존 스텀프 웰스파고 전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미 의회 청문회에 참석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포인트 2 | 재무제표만 챙기고 윤리 리스크 놓쳐

“저는 이번 사건에 대해 사전에 보고받은 바가 없습니다.”

존 스텀프 웰스파고 전 회장이 미 의회 청문회에서 최초로 한 발언이다. 미 언론들은 이 발언을 놓고 “몰랐다는 건 변명이 될 수 없다”며 “이는 스텀프가 최고경영자(CEO)로서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증거”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스텀프는 그 다음 청문회에서 2013~2014년쯤 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인지했다고 말을 바꿨고 2015년부터 적극 대응에 나섰다고 밝혔다. 미 금융잡지 <아메리칸 뱅커스>는 “이 문제로 2011년 이후 약 1000명의 웰스파고 직원들이 관련 행위로 해고됐다”며 “이사회의 늑장 대응은 곧 내부 통제 문제가 있었다는 걸 암시한다”고 분석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뉴아메리카재단’의 수잔오 선임연구원은 “이사회의 늑장 대응은 경영진들이 이번 사태가 미칠 영향을 ‘금전적 피해’ 차원에서만 고려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리적·사회적 리스크를 경영진이 미처 간파하지 못했단 뜻이다.

재무제표상 웰스파고의 리스크 관리 능력은 탁월했다. 지난해 웰스파고의 부실채권비율은 1.4%로 미국 상업은행 평균치(1.6%)보다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리스크 관련 부서에서 직원이 고객의 뒷통수를 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번 사태가 터진 직후 최고리스크담당자(CRO)인 클라우디아 앤더슨은 리스크 관리 태만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웰스파고는 앞으로 전사적 리스크 관리시스템으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포인트 3 | 직원들에게 비현실적 목표 부여

웰스파고 전 임직원들은 고압적인 기업 문화를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으로 꼽았다. 이번에 해고된 한 직원은 “지점에선 직원들에게 말도 안 되는 숫자를 내세우고 달성하기를 요구했다”며 “‘집중 판매 기간’이 되면 하루에 20개 이상 상품을 팔라고 닦달했다”고 전했다.

매일 아침 직원들에겐 ‘상품 판매 목표’가 하달됐다. 한 직원은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면 회의실에 불려들어가 관리자와 일대일 면담을 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해고에 대한 두려움이 큰 상황에서 판매 압박은 크게 다가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웰스파고의 창업정신부터가 윤리성과 거리가 멀다는 주장도 나온다. 웰스파고는 1852년 미 서부 개척시대에 금광 등 자원개발과 물류업으로 시작했다. 웰스파고의 빨간 마차 로고는 카우보이 마차를 상징한다. 이른바 윤리보다는 ‘총(힘)이 곧 법’이라는 문화가 뼛속 깊이 박혀 있다는 뜻이다. 스텀프 회장은 청문회에서 “과정보다는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되풀이했다.

웰스파고의 이 같은 기업문화는 은행의 수익성 제고에는 큰 도움이 됐다. 2006년에서 2015년까지 10년 동안 웰스파고의 주가는 67% 급등했다. 하지만 비현실적 목표 설정과 고압적 문화는 ‘부정행위’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조사에 따르면 은행 내에 만연한 협박 문화와 비윤리적 관행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직원은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심한 경우 해고됐다. 수잔 오 선임연구원은 “숫자를 다루는 금융회사는 경직된 기업 문화를 특히 경계해야 한다”며 “조직이 크고 복잡할수록 리스크 관리에 전 직원이 참여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