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8일 서울 하늘에서 바라본 제2롯데월드와 강남 아파트 단지. 한국의 생산가능인구가 내년부터 감소하지만 일본처럼 주택 가격이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최근 제기됐다. <사진 : 연합뉴스>
10월 18일 서울 하늘에서 바라본 제2롯데월드와 강남 아파트 단지. 한국의 생산가능인구가 내년부터 감소하지만 일본처럼 주택 가격이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최근 제기됐다. <사진 : 연합뉴스>

“주택 구매는 42세에 가장 활발하고 전체 소비는 47세에 최고점에 달한다. 한국 경기는 2018년 이후에 침체하겠지만 주택 시장은 2013년 이후 침체할 것이다.”

“서울의 주택지수는 1999년 이후 약 두 배 올랐는데 향후 40% 넘게 하락할 것이다. 집값이 하락하면 가계 주택담보대출도 재조정될 것으로 본다.”

인구구조 변화를 보고 투자전략을 제시하는 것으로 유명한 해리 덴트 HS덴트투자자문 대표는 2013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덴트의 예측은 일단 빗나간 것으로 보인다. 전국적으로 주택 가격이 뛰었고 서울 강남에선 재건축발 부동산 광풍이 불었다.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커지며 가계부채 1200조원 시대가 열렸다.

한국 부동산 시장이 일본식으로 붕괴할 것이라는 주장은 덴트의 주장처럼 인구구조 변화에 근거를 두고 있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서 주택 수요층이 감소해 가격이 하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는 일본과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주택을 구매하는 장년층이 늘었고 생산가능인구 감소 시점도 늦춰지고 있다.


노후 대비 월세 소득 위한 주택 구입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전국 주택 가격은 연평균 2.0% 상승했다. 서울은 0.1%로 상승률이 낮았지만, 6개 광역시 평균은 3.4%로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 지난해에는 전국 주택 가격이 전년보다 3.5% 올랐고 서울은 4.6%, 6개 광역시는 4.1% 상승했다.

주택 가격 상승은 일반적으로 저금리와 전세가격 상승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2013년엔 3.86%였으나 지난해에는 3.03%로 떨어졌다. 전세 가격은 더 빠르게 올랐다. 최근 5년간 전국 전세가는 평균 5.2% 올랐고 지난해 서울 전세 가격은 7.2% 상승했다. 전국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전세가율)은 2013년 69.6%에서 74.6%로 치솟았다. 은행 예금금리가 떨어지면 주택 소유자가 전세금을 받아 얻는 수익이 줄고, 이 때문에 주택을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거나 전세금을 올리게 된다. 전세금이 올라 집값과 큰 차이가 없게 되고 저금리로 대출 이율도 낮아지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하려는 수요도 늘어난다.

그런데 주택 가격 상승을 설명할 때 짚어봐야 할 새로운 흐름이 최근 나타났다. 과거 주택 주요 구매층은 30~40대였지만, 50~60대가 시장에 큰손으로 등장했다. 한국감정원 산하 부동산연구원이 작성한 ‘최근 5년간 연령대별 아파트 구입자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아파트를 구입한 사람 중 60대 이상은 11만2036명으로 2011년보다 57.2% 늘었다. 비중으로는 2011년 10.5%에서 지난해 14.1%로 상승했다. 50대의 비율도 늘었다.

장년층이 주택 구입을 늘리는 것은 노후에 대비해 월세 소득을 받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집값 상승을 기대하는 심리도 있다. 주택 가격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인식도 전문가보다 긍정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4월 경제 전문가 400명과 일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주택 시장 전망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올해 하반기에 집값이 완만히 상승(상승률 1% 이상 3% 미만)할 것이라고 내다본 국민은 26.1%였지만 이 응답을 한 전문가의 비율은 20.0%였다. 대폭 상승할 것이라는 응답은 일반 국민이 2.1%, 전문가는 0.3%였다.

만약 인구 구조가 집값에 영향을 준다면 은퇴했거나 은퇴 시점이 가까워지는 50~60대는 잘못된 판단을 한 게 된다. LG경제연구원은 10월 초 내놓은 ‘2017년 경제 전망’에서 내년이 한국의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드는 첫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년부터 주택 가격이 하락세를 그릴 수 있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도심 인근에 있는 주거지. 미국은 전체 인구 중 생산가능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고 있지만 주택 가격은 상승 추세다. <사진 : 블룸버그>
미국 샌프란시스코 도심 인근에 있는 주거지. 미국은 전체 인구 중 생산가능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고 있지만 주택 가격은 상승 추세다. <사진 : 블룸버그>


인구 구조보다 경제성장률이 중요

부동산 시장에 인구구조가 중요하다는 주장은 일본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는 1996년부터, 총인구는 2010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전체 인구 중 생산가능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2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본의 실질지가지수는 이때쯤부터 하락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장기간 하락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설명이 일본 주택 가격 하락 해석의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홍춘욱 키움증권 연구원은 인구 구조 변화보다 90년대 초반 버블이 붕괴했을 때 일본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부동산 가격 하락세의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자산시장 붕괴로 디플레이션 위협이 부각되던 1990년대 초반 일본의 실질 정책금리는 2%를 웃돌았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2002년 펴낸 보고서에서 “1989년 버블이 붕괴될 때 일본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만 2%포인트 이상 내렸다면 디플레이션 악순환이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볼 때 인구학적 설명은 대체로 잘 맞지 않는다. 생산인구가 감소했지만 급격한 부동산 시장 침체를 겪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2000년대 중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는 시점을 전후해 부동산 시장이 붕괴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원인은 베이비붐의 은퇴가 아니라, 주택 시장 수요와 공급과 관계 없이 무분별하게 벌어진 대출과 금융파생상품 발행(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에 있다는 것이 대부분의 해석이다. 미국 주택 시장은 2011년 이후 다시 호전돼 최근엔 사상 최고치를 회복할 정도로 가격이 회복됐다.

홍 연구원은 주요국의 경제 성장률과 실질주택가격의 상관 관계를 분석해 보면 인구 구조보다 경제 성장률이 주택 시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는 “주요국을 대상으로 생산활동인구 변화와 실질주택가격 관계를 조사하면 강력한 연관 관계가 없다”면서 “미국을 비롯해 호주·영국·프랑스·캐나다 등 베이비 붐 세대가 2000년대 중반 이후 은퇴를 시작한 다른 나라도 주택 시장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한국 주택 가격은 아직 저렴한 수준”

홍 연구원은 일본 주택 시장이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인 것은 대규모 주택 공급에 원인이 있다고 봤다. 1990년대의 주택 공급량은 버블이 형성되던 1980년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반면 미국은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로 주택 시장 버블이 붕괴된 후 주택 공급을 급격히 줄였다. 1980년 이후 연 평균 150만호의 주택이 공급됐지만, 2008년 이후에는 50만~110만호 수준에 그쳤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키움증권은 앞으로 한국의 주택 가격이 하락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홍 연구원은 “산업 구조가 IT와 자동차 등 수출 위주여서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더라도 생산성 둔화 위험이 낮고, 외국인 인력 유입이 가속화되고 있어 인구 감소 시점도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 부동산 시장은 일본보다는 미국·서유럽과 비슷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더라도 주택 가격이 호조를 보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 정부가 공급 관리에 나섰다는 점도 주택 가격이 일본이 아닌 미국의 길을 따라갈 것이라는 주장을 강화하는 근거가 된다. 정부가 8월 25일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 방안’에선 가계부채 대책으로는 최초로 ‘주택 공급 관리’가 포함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올해 공급하는 공공택지 물량을 작년의 58% 수준으로 줄이고 내년도 추가 감축을 검토하며, 국토부와 지자체 협력으로 과도한 신규 주택 인허가를 자제하도록 유도한다는 내용이었다. 주택 공급을 줄여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수요를 줄이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시장에선 앞으로 주택 공급이 줄어든다는 소식에 집값이 뛰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국의 주택 가격이 저렴한 수준이라는 점도 일본과 같은 급격한 가격 하락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의 한 근거가 된다. 주택버블지수 기준으로 볼 때 1996년부터 2014년까지 18년 동안 실질주택가격 상승률은 실질소득증가율에 못 미쳤다. 주택버블지수는 실질주택가격 상승률에서 실질소득 증가율을 빼 계산한다. 한국의 부동산 버블이 다른 나라보다 심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반면 한국 주택 시장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고 일본과 닮아갈 것이라고 판단하는 시각도 여전히 강하다.

한국은행은 ‘최근 건설 투자 수준의 적정성 평가’ 리포트에서 “주택 수요층의 인구 증가가 정체를 보이는 가운데 주택 공급이 크게 늘어나고 있어 초과공급 현상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보고서는 “주택 주요 수요층인 35~54세 인구가 2012년부터 감소했고, 생산가능인구도 2017년부터 감소할 전망이다. 반면 주택 비수요층인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크게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분석 결과 고령층 인구 비중 증가는 주거용 건설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고, 따라서 한국도 앞으로 주택 수요 기반이 약화된다는 논리다.

일본 요코하마의 아파트 단지. 일본은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후 주택 가격이 하락하다가 최근 약간 반등했다. <사진 : 블룸버그>
일본 요코하마의 아파트 단지. 일본은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후 주택 가격이 하락하다가 최근 약간 반등했다. <사진 : 블룸버그>


“일본 전철 밟을 것” 의견도 여전

주택 초과공급도 문제다. 한국은행이 통계청과 국토교통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2년 이후 주택 수요는 34만호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주택 공급은 크게 확대됐다. 지금도 공급과잉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늘어나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5월부터 미분양 아파트 물량이 증가하고 있고, 올해 7월엔 6만3127가구를 기록했다. 부동산114는 “대규모 공급과잉 여파로 3개월 연속 미분양 물량이 증가했다”면서 “당장 내년에는 올해보다 30% 이상 늘어난 33만4452채의 아파트가 입주를 앞두고 있어 미분양 물량이 많은 지역에는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한국은행도 일본과 한국은 주택 구입 트렌드가 달라 인구구조 변화가 주택 수요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어느 정도 줄어들 것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한은은 “소득 향상, 재건축 활성화로 멸실(滅失) 주택수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은 주택 구입 연령이 늦고 노후 대비 목적 등으로 고령층의 주택 보유 동기가 큰 편”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송인호 KDI 연구위원은 2014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고령화를 포함한 한국의 연령별 인구구조 변화는 20년 전 일본 모습과 유사하다”라며 일본의 고령화 효과를 한국의 주택 시장에 적용해 장기 추세를 분석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14년부터 2020년까지는 연평균 3.5%, 2021년부터 2030년까지는 2.2% 상승한다고 가정했을 때 한국의 실질주택가격은 2019년부터 연평균 1~2%쯤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부유층들도 국내 부동산 경기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16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부동산 경기가 앞으로 나빠질 것이라고 보는 비율은 21.0%로, 좋아질 것이라고 보는 비율(18.8%)보다 높았다. 전체 응답자의 67%가 앞으로 부동산 투자로 높은 수익을 거두기 어렵다는 데 동의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 연구소가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응답자 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부자’들은 2012년 이후 부동산 자산 비중을 줄이고 있다. 2012년에는 전체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59.5%였지만 올해는 51.4%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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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주택가격 일반적으로 매겨지는 주택 가격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산정한 가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