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열풍 이후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블록체인은 금융 뿐 아니라 다양한 거래에 활용될 수 있는 데이터 저장 기술로 부동산 임대 계약, 회사채 발행 등에 적용됐다. <사진 : 블룸버그>
비트코인 열풍 이후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블록체인은 금융 뿐 아니라 다양한 거래에 활용될 수 있는 데이터 저장 기술로 부동산 임대 계약, 회사채 발행 등에 적용됐다. <사진 : 블룸버그>

은행의 기본 업무는 금융 소비자의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금융거래 내역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은행은 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원장(元帳)을 관리할 중앙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시스템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다. 그런데 은행이 이런 중앙관리 시스템을 두지 않고, 은행과 금융 소비자가 직접 거래 정보를 저장한다면 어떨까. 이렇게 되면 중앙관리 시스템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거래 속도가 빨라지고, 비용도 줄어들 것이다. 이에 따른 혜택은 금융 소비자에게도 돌아간다.

이것이 바로 최근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블록체인(blockchain)’이다. 블록체인은 데이터를 기록하는 방법 중 하나로, 특정한 중앙 서버가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거래를 독립적으로 분산해 저장하는 방식이다. 거래 내역이 담긴 ‘블록’들이 암호화돼 거래가 이뤄진 시간 순서대로 연결된 데이터 ‘체인’을 형성한다는 개념이다.

블록체인이라는 개념은 이미 수십년 전에 있었다. 그런데 2009년 블록체인 방식을 도입한 디지털 화폐 ‘비트코인’ 열풍이 불며 뒤늦게 블록체인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다이아몬드 거래에 블록체인 활용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는 “블록체인은 거래 속도와 보안성, 투명성, 편의성을 높이고 비용도 상당히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가트너 역시 블록체인을 미래 유망 전략기술로 선정하며, 2022년 블록체인 기반 사업 가치가 100억달러(약 11조45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블록체인은 중앙 서버에 모든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보다 보안성이 높다. 모든 데이터를 한 곳에 보관하면 중앙 서버를 해킹해 중요한 정보를 한번에 꺼낼 수 있어 피해가 크다. 블록체인은 데이터를 거래자 컴퓨터에 분산해 저장하기 때문에 의미 있는 정보를 수집하는 데 매우 많은 비용이 든다. 사실상 해킹이 불가능한 셈이다.

거래 내역 위변조가 매우 어렵다는 측면에서도 보안성이 높다. 기록된 데이터가 변경된 블록은 다른 블록과 연결되지 않는다. 데이터 변경 흔적이 남는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사 딜로이트가 블록체인을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공유된 거래 기록을 믿을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라고 평가한 것도 이런 이유다.

또 블록체인의 데이터 정보는 모든 참여자에게 공유되기 때문에 투명성이 높고, 과거 거래 내역을 쉽게 추적할 수 있어 거래 효율성도 확보할 수 있다. 스페인 산탄데르 은행은 “2020년까지 블록체인 기술이 활용됨으로써 지불, 보안 거래, 규제 순응 분야에서 절감되는 비용은 약 150억~2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각국 중앙은행들도 관련 연구 진행

블록체인이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이라면 반드시 금융 분야에만 적용될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그렇다. 블록체인은 온라인상에서 메시지, 파일을 주고받거나 전자상거래가 발생하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이미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지난해 설립된 영국 스타트업 에버렛저(Everledger)는 다이아몬드 거래정보(일종의 원장)를 기록하는 데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했다. 다이아몬드가 그동안 어떤 여인의 손가락에서 빛났는지, 누구의 금고 속에 보관됐는지 추적할 수 있는 정보(정부와 전문업체의 보증을 받은 정보)를 거래자들의 네트워크에 분산해 저장하는 것이다. 경매에 나온 다이아몬드가 블러드 다이아몬드인지 아닌지 손쉽게 추적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에버렛저 창업자 린 켐프(Leanne Kemp)는 “블록체인 방식으로 관리되는 거래 내역은 삭제되거나 거짓 정보가 추가되기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관리되는 다이아몬드는 범죄 표적이 되는 비율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독일 스타트업 슬록(Slock)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부동산 임대 계약을 고안했다. 임대인이 사전에 정보를 입력하면 문에 설치된 스마트 잠금 장치가 임대료를 낸 계약자를 확인해 문을 열어주는 기술이다. 2009년 설립된 음원 업체 플레즈뮤직(PledgeMusic)은 최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잘못된 음원 판매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제작자가 음악을 내놓으면 음악을 듣고 싶은 소비자가 돈을 지불하는 과정에 블록체인 기술이 도입되면 음원 판매 과정에서 저작권이 침해되거나 제작자가 아닌 제3자가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경우를 막기 위한 것이다. 또 미국 온라인 쇼핑업체 오버스톡(Overstock)은 지난해 2500만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는 데 블록체인을 도입했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블록체인을 통한 주식 공모 발행 인가도 받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최근 “미 연준은 블록체인 등 금융 기술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며 “블록체인 기술은 미래 결제, 은행 시스템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영란은행과 인민은행 역시 블록체인 기술의 효용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초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서 “분산 원장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통화가 단기간에 크게 발전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관련 기술이 기존 금융시장 인프라와 금융중개기관, 중앙은행 업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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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bitcoin) 블록체인 기술이 도입된 가상 화폐다. 2009년 컴퓨터 프로그래머 나카모토 사토시가 내놓았는데,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며 2013년 11월 한때 단위당 거래 가격이 약 1151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반 화폐는 국가의 중앙은행이 보증하지만, 비트코인은 거래 당사자들의 네트워크에 기록된 거래 정보를 통해 보증된다. 비트코인은 파일 형태로 저장되는데 여기에는 고유 주소가 부여돼 그 주소를 기반으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 아프리카 분쟁 지역의 독재자나 군벌이 무기를 사들이기 위해 판 다이아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