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EU의 브렉시트 협상이 영국 국내정치로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주변국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앤다 케니 아일랜드 총리가 독일 베를린 소재 아일랜드 대사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영국과 EU의 브렉시트 협상이 영국 국내정치로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주변국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앤다 케니 아일랜드 총리가 독일 베를린 소재 아일랜드 대사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현실화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중장기적으로 본다면 글로벌 투자자들이 영국 대안으로 아일랜드를 택할 수도 있겠죠.”(브라이언 카우언 전 아일랜드 총리)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로 아일랜드가 반사이익을 본다고요? 영국이 EU 관세동맹에서 탈퇴하는 순간 아일랜드 식품 산업은 절름발이 신세가 될 겁니다.”(존 브루턴 전 아일랜드 총리)

브렉시트가 또 다시 예측불허의 상황에 빠져들었다. 지난 3일 영국 고등법원은 의회 승인 없이는 ‘리스본조약 50조(EU와 협상)̓를 발동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영국 정부는 의회 승인 없이 내년 3월부터 EU와 협상을 개시하려고 했었다. 이론적으론 브렉시트 철회까지 가능하지만 실현가능성은 떨어진다. 전문가들은 고법 판결로 브렉시트 일정이 늘어지는 것은 물론 불확실성만 높아졌다고 우려했다.


“브렉시트는 아일랜드 경제에 재앙”

영국 사회가 혼돈에 빠져들면서 영국 경제 의존도가 높은 아일랜드를 비롯한 주변국 시름은 깊어지는 모습이다. 10월 25일 존 브루턴, 버티 아헌 전 아일랜드 총리가 영국 런던의 상원 EU 특별위원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특별위는 브렉시트에 따른 주변국 영향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두 사람의 표정은 다소 침울했다. 앞서 24일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와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알린 포스터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수반, 카린 존스 웨일스 자치정부 수반 등이 브렉시트 방안에 대해 논의했으나, 각 진영의 이견만 확인하고 면담을 마친 터였다.

브렉시트의 후폭풍을 놓고 이웃 국가인 아일랜드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해외에서는 브렉시트로 아일랜드가 영국의 대안으로 떠오른 만큼 국가적 호재라는 분석과 반대로 아일랜드 국내에서는 브렉시트에 따른 파운드화 급락과 투자 불확실성으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백발이 성성한 브루턴 전 총리의 목소리는 격앙됐다. 그는 “브렉시트가 아일랜드에 미칠 경제적 악영향이 영국보다 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영국과 아일랜드 기업 관계가 와해된다면 이는 아일랜드 경제에 재앙이나 마찬가지”라며 “영국이 상호 이익의 측면에서 좀 더 창의적으로 EU와 브렉시트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일랜드 경제인연합회(IBEC)의 퍼거 오브라이언은 “타격은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영국 파운드화 가치 급락으로 아일랜드의 영국 수출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얘기다. 아일랜드 공산품 수출의 40%는 영국으로 들어간다.

농수산물 수출도 비슷한 비중을 차지한다. 육류와 낙농업자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생산품의 80%를 영국으로 수출한다. 더블린 경제사회연구소의 앨런 배럿 연구원은 “아일랜드 중소기업은 수출 대상이라고 하면 영국부터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1973년 EU에 함께 편입됐으며, 양국 기업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브렉시트로 인한 파운드화 가치 하락은 아일랜드 물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는 브렉시트가 결정된 이후 파운드화 가치가 20% 이상 떨어지자 제품과 서비스 가격에 이를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가격 변동 국가에는 영국뿐만 아니라 아일랜드도 포함됐다.

오브라이언은 “아일랜드는 영국과 수요 공급 체인을 공유하고 있다”며 “(브렉시트로) 관세와 검수 제도가 바뀌면 식품 표시부터 시작해 환경 기준까지 모든 규정이 바뀔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일랜드 노동자들이 해외 취업 경험과 훈련을 할 수 있는 곳도 영국이다.


영국 소재 글로벌 금융사 이전 기대도

아일랜드에 브렉시트가 기회라고 주장하는 측도 있다. 아일랜드 소재 컨설팅 기업은 런던에 유럽 본사를 둔 은행들에 대유럽 은행 면허를 유지하려면 아일랜드로 본사를 이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선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PwC아일랜드는 보고서를 통해 “영국 은행 본사를 아예 유럽으로 이전하거나, 철수하는 것보다 더블린으로 옮기는 것이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낫다”고 홍보했다. 도이체방크는 보고서를 통해 바클레이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가 영업점을 더블린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아일랜드 정부는 브렉시트에 따른 악영향은 줄이고, 호재로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고 있다. 아일랜드투자청(IDA아일랜드)은 아일랜드의 고학력 노동력과 낮은 법인세를 홍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법인세율은 12.5%다. 아일랜드 민간 연구 기관은 양국 소재 금융사 이전으로 아일랜드에 최소 2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브렉시트로 입을 피해를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영국 소재 글로벌 금융사 몇개사가 옮겨오는 것은 ‘위로금’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니 펄롱 정치평론가는 “브렉시트 여파가 적으면 적을수록, 아일랜드에 낫다”며 “따라서 아일랜드는 유럽 나머지 국가에 영국의 브렉시트 연착륙을 설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Plus Point

아일랜드·영국 국경 불안

아일랜드 정부는 북부 얼스터 지방(북아일랜드)과 국경 문제도 주시하고 있다. 영국은 잉글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 등 4개 지역으로 구성된 연방국이다. 식민지였던 아일랜드가 독립할 때 북부 얼스터 지방(1921년)은 영국에 남아 오늘의 영연방이 완성됐다.

북부 얼스터 지방은 통일 아일랜드를 요구하는 시민군과 공화당 사이에 내전을 겪었다. 1998년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 북아일랜드의 지치정부는 남북 국경 통제를 해제하기로 합의했다. 아일랜드의 정치애널리스트인 노엘 윌런은 “영국이 유럽 단일 시장에서 이탈하게 되면, 북방 지역의 불안이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