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P2P 대출 업체 렌딩클럽 창업자 르노 라플랑셰. 그는 지난 5월 부정대출 사건으로 CEO를 사임했다. <사진 : 블룸버그>
미국 P2P 대출 업체 렌딩클럽 창업자 르노 라플랑셰. 그는 지난 5월 부정대출 사건으로 CEO를 사임했다. <사진 : 블룸버그>

직장인 전모(27)씨는 1년 전 친구와 이야기하다 귀가 솔깃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인터넷 플랫폼에서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십시일반으로 모아 투자하면 연 10%에 가까운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씨는 호기심에 새로 문을 연 맥줏집에 투자해 매달 꼬박꼬박 은행 이자의 5배에 가까운 돈을 이자로 받고 있다. 그는 “저금리에 쉽고 간편하게 투자할 수 있는 방법 같다”며 “어디에 투자할지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했다.

수중에 수십만~수백만원의 여윳돈이 생겼다면 어디에 투자해야 할까. ‘은행은 이자가 너무 낮고, 주식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P2P(개인 간) 대출이 괜찮은 투자처로 떠올랐다. 사업자금, 주택자금 같은 흔한 경우부터 호텔 리모델링, 결혼자금, 대학 학자금, 걸그룹 멤버 생활비까지 투자 대상도 다양해졌다.


대학 학자금, 걸그룹 생활비에도 有用

국내 P2P 대출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235억원이던 P2P 대출 잔액은 올해 6월 말엔 1129억원, 9월 말에는 2087억원으로 늘었다. 불과 3개월 만에 84.9% 늘었다.

민간 업체 통계에 따르면 대출 금액은 더 많다. P2P 대출 시장을 분석하는 크라우드연구소는 올해 10월까지 누적 대출액이 4032억원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소는 올 연말까지는 P2P 누적 대출액이 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P2P 업체수는 103개이고, 전체 평균 투자 수익률은 연 12.7%였다.

최근 P2P 대출은 부동산 투자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이종아 선임연구위원은 “누적 대출 실적이 많은 P2P 대출 업체의 상당수는 부동산 P2P 대출을 취급하고 있다”며 “부동산 대출은 개인 대출보다 건당 대출 금액이 많고 담보 설정으로 안전성도 높아 중개 업체나 투자자 모두 선호하는 추세”라고 했다.

부동산 P2P 대출은 아파트·빌라·상가·오피스텔 신축 자금을 지원하는 건설자금 대출이 대표적이다. 부동산 P2P 대출 중엔 아파트 계약금 대출, 전·월세 보증금 대출도 있다. 이 연구위원은 “사회 초년생이나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개선된 주거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주거 사다리가 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했다.

대출 규모는 작지만 대출 대상은 다양해지고 있다. P2P 대출 업체 ‘8퍼센트’는 지난해 12월 한 걸그룹 멤버 생활자금을 중개했다. 600만원 모집에 55명이 참여했으니 한 사람이 11만원씩 투자한 셈이다.

투자자들은 다양한 재무 정보를 활용해 투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이 여성의 개인신용등급은 6등급이었고, 기존에 은행·제2금융권·대부 업체에 총 2772만원의 대출이 있었다. 월 소득은 300만원, 월 가처분소득은 58만원이므로 대출 기간 18개월 동안 원리금 37만원씩을 상환할 수 있다. 연 수익률은 14.43%다. 물론 이 여성이 채무를 갚지 않으면 원금 손실을 볼 수 있다.

8퍼센트에 따르면 당시 이 여성의 투자금 모집은 5분 만에 마감됐다. 회사 측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 걸그룹 멤버는 “대출이 필요해 은행권으로 알아보다가 지인이 추천해줬다”며 “신용등급이 높지 않고 시간이 없고 이동이 불편한 사람에게 P2P 대출을 해보라고 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비가 부족한 대학생에게 투자하는 P2P 대출도 있다. P2P 대출 업체 ‘캠퍼스펀드’에 올라온 한 대출 건을 보면, 연세대학교 응용통계학과 16학번인 한 학생은 50만원을 연 이자율 9.6%에 2명으로부터 빌렸다. 개인 신용등급은 4등급이고, 소득은 15만원(과외), 올해 1학기 학점은 3.95였다. 이 학생은 “2명의 학생에게 각각 15만원, 40만원의 금액으로 과외를 했는데 40만원의 과외비를 내던 학생이 고3이 되면서 과외를 그만둬 생활비에 차질이 생겼다. 부모님은 기초생활수급자여서 손을 벌릴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곧 다시 과외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상환 기한 내에 꼭 돈을 다 갚겠다!”라고 상환 계획을 적었다.


P2P 대출 업체에서 다양한 조건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빌리는 대학생들.
P2P 대출 업체에서 다양한 조건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빌리는 대학생들.

정부 규제에 업계 “너무 심해”

국내 P2P 대출이 올 들어 빠르게 성장했지만 앞으론 성장이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가 최근 마련한 규제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투자자 피해 등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며 지난 2일 P2P 대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발표했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일반 개인 투자자는 연간 1개 P2P 대출 업체 기준으로 1명의 차입자에게 최대 500만원, 총누적금액 1000만원까지 대출해줄 수 있다. 이자·배당 소득이 2000만원이 넘는 개인 투자자는 연간 최대 4000만원까지, 법인 및 재산이 10억원 이상인 개인 전문 투자자는 별도의 투자 한도를 두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국P2P금융협회는 “국내 P2P 업체 대출액 중 투자금액이 1000만원 이상인 비율은 평균 73%”라며 “개인 투자 한도를 1000만원 밑으로 낮추겠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했다. 가이드라인을 따르다 보면 자금이 부족해 대출 시장 성장이 어려워진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규제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부동산 P2P 대출 수요 중엔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에서 이미 담보대출을 받은 사람이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초과해 추가로 대출받으려 P2P 대출 업체에 대출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집값의 최대 90%까지 후순위로 빌려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연구위원은 “아파트 계약금 대출이나 LTV가 높은 주택 대출은 가계 부채 부담이 큰 한국에서 다소 민감한 대출 형태로 분류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외국엔 P2P 대출 업체가 자금을 횡령하는 등 금융사고도 발생했다. 미국 렌딩클럽은 올해 5월 내부감사에서 2200만달러(약 260억원) 규모의 대출이 부적격자에게 나간 것을 확인했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르노 라플랑셰 등 일부 임원은 대출 자격 기준에 맞추기 위해 대출 신청자가 제출한 서류를 조작한 혐의도 받았다. 라플랑셰 CEO는 이 일로 사임했다. 중국의 ‘e주바오(租寶)’도 지난해 12월 허위 정보로 500억위안(약 8조5600억원)의 자금을 모집해 유용(流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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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P 대출(Peer to Peer Lending) 돈이 필요한 사람(대출자)과 여윳돈을 굴리려는 사람(투자자) 사이를 인터넷으로 연결해주는 대출 방식. 영어 단어‘to’의 발음이 숫자 ‘2(two)’와 같아서 ‘P2P’라고 쓴다. P2P 대출은 개인들이 서로 돈을 빌려주고 갚을 수 있는 중개의 장을 마련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돈이 필요한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P2P 대출 업체에 대출 신청을 하면, 업체는 신청자의 신용도를 평가해 ‘대출 펀드’를 만들어 인터넷에 올린다. 투자자는 대출 펀드의 금리와 대출 기간 등을 보고 돈을 투자한다. 대출자는 빌린 돈을 정해진 기간에 원금과 이자로 나눠 갚고 이 돈은 P2P 대출 업체가 약간의 수수료를 뗀 뒤 각 투자자에게 나눠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