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가락 농수산물시장에서 한 상인이 경매가 끝난 배추를 쳐다보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서울 송파구 가락 농수산물시장에서 한 상인이 경매가 끝난 배추를 쳐다보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주부 강리연(34)씨는 새해 첫 장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배추 세 포기에 1만3000원, 한 포기에는 4500원. 작년 이맘때는 3000원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무는 한 개에 3100원. 조류 인플루엔자(AI) 파동으로 달걀 가격은 한 판에 1만원이 넘었다. 쓰레기봉투·라면·맥줏값도 이미 다 올랐다. 이런 푸념을 듣는 남편 김우성(34)씨 머릿속은 다른 걱정으로 분주했다. 집주인이 전세금 인상을 통보해 큰맘먹고 집을 사기로 결정했는데, 부동산 가격이 계속해서 오르자 사려던 집값도 덩달아 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물가와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물가의 괴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전년비)은 1%다. 정확히는 0.97% 상승에 그쳤다. 하지만 체감물가 상승률은 이와는 크게 다르다. 물가가 최소한 두 자릿수 인상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해 실질 경제성장률은 2.6%로 추정된다. 물가상승률을 빼면 살림이 평균적으로 1.6%포인트는 나아져야 하지만 이를 체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에 따라 정부는 체감물가와 공식물가의 괴리를 줄이기 위한 보완책 마련에 나섰다. 우선 정부는 소비자물가지수 산정 대상 품목들에 적용하는 가중치를 조정하기로 했다. 가중치 때문에 소비자물가지수 등 공식물가와 체감물가 간의 괴리가 크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또 고령화 및 1인 가구 증가 현상을 감안해 오는 11월까지 가구주 연령과 1인 가구 등 개별 가구의 특성을 반영한 물가지표도 개발하기로 했다.


물가지수 품목·기준 현실과 차이 커

체감물가와 공식물가 사이의 괴리 현상은 통계청이 소비자물가지수 산정 기준이 되는 460개 품목에 차별적으로 부여하는 가중치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통계청은 소비 비중이 큰 460개 품목을 선정한 뒤 국민 소비생활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에 따라 품목별로 가중 평균해 소비자물가지수를 산출한다.

460개 품목 중 가중치가 가장 높은 건 거주비 항목이다. 전세의 가중치는 49.6, 월세는 43.6에 달한다. 가중치의 총합이 1000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물가 산정 과정에서 전·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가깝다. 휴대전화 요금의 가중치도 38.3으로 높은 편이다. 휘발유 가격(25.1), 전기요금(18.9), 아파트 관리비(18.6), 도시가스 요금(18.3) 등에도 상대적으로 높은 가중치가 부여된다.

반면 이유식·밀가루·땅콩·식초 등은 가중치가 0.1이다. 지난해 물가지수 상승률 1, 2위 품목인 배추(69.6%)와 무(48.4%)가 물가지수 산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0.12%와 0.06%에 그친다. 주부들이 자주 사는 품목들이지만 물가에 미친 영향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수준인 셈이다.

소비자물가지수의 품목도 체감물가와 공식물가의 괴리를 가져온다. 소비자물가지수는 5년마다 개편해 최근 소비자들의 소비 트렌드를 즉각적으로 반영하기 어렵다. 통계청은 최근 품목수를 481개에서 460개로 줄이면서 소비지출액이 감소하는 품목을 증가 추세 품목으로 교체했다. 꽁치·잡지·종이사전 등이 제외됐고, 현미·낙지·파스타면·헬스기구·파프리카·식초·보청기 등이 새로 추가됐다.

물가 지표를 공식 발표하는 유경준 통계청장은 ‘평균의 함정’이라는 이론을 사용해 체감물가와 공식물가의 괴리를 설명했다. 소비자물가는 전체 가구가 소비하는 460개 품목을 대상으로 측정하지만, 개별 가구는 이 품목 중 일부만 소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름값 하락이 저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자동차가 없는 가구에서 느끼는 물가와는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또 취학 자녀가 없는 가구의 경우 교육 물가에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자물가에 포함된 품목들과 소비자가 실제 소비하는 품목은 다르다”며 “가격이 많이 오른 품목을 구매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물가가 높다고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리적 요인으로 체감물가 더 높아

체감물가와 공식물가의 가장 큰 괴리는 주택 매매 가격이 소비자물가지수에서 빠진 것에 있다는 지적이 많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연구실장은 “소비자들은 집값 등 부동산 경기와 물가를 연동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주택 매매처럼 가계 경제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품목이 물가지수에 빠져 있다 보니 체감물가와 공식물가 간 인식 차이가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관호 고려대 교수도 “국민들은 소비자물가를 측정하는 데 있어 주택 가격 상승 등 지수에 포함되지 않는 부분을 물가 상승으로 오해해서 물가 상승 폭이 크다고 여길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현재 소비자물가지수 품목에 전세와 월세는 포함되지만 주택 가격은 제외돼 있다. 통계청과 한국은행은 “투기적 수요로 주택 가격 변동성이 지나치게 크고, 주택 가격에 대한 정보가 확실치 않아 주택 가격을 물가지수에서 제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리적 요인도 체감물가와 공식물가 사이의 차이를 벌리는 역할을 한다. 소비자물가는 가격 상승과 하락을 동일하게 반영하지만 체감물가는 가격이 올라간 것에 더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사과 가격이 10% 오르고, 바나나 가격이 10% 하락한 경우 소비자들은 사과 가격이 오른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설명이다. 이른바 가격 인식의 비대칭적 성향이다. 한은은 “소비자들이 가격이 올라갈 때는 실제보다 두 배 오른 듯이 느끼고 내려갈 때는 원래 가격만큼 체감한다”는 분석이 담긴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구입 빈도도 체감물가에 영향을 준다. 소비자물가는 구입 빈도를 감안하지 않지만 체감물가는 자주 구입하는 품목의 가격 변동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콩나물과 TV의 경우 자주 구입하는 콩나물 가격이 오르고 TV 가격은 내려갈 경우 소비자물가 변동은 적지만 체감물가는 크게 오른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최근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소득 증가세가 둔화되거나 소득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점도 소비자들의 체감물가가 높아지는 이유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경기 침체 속 소득 증가율이 워낙 낮아서 물가 수준이 높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소득이 늘지 않으니 물가가 조금만 올라도 살림살이가 팍팍하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