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럽연합(EU)과 홍콩이 무디스에 벌금을 부과하면서 글로벌 신용평가사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최근 유럽연합(EU)과 홍콩이 무디스에 벌금을 부과하면서 글로벌 신용평가사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최근 주요국이 신용평가사에 벌금을 부과하는 등 제재를 결정하며 국제 신용평가사의 ‘뻥튀기 신용평가’ 관행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사가 세계 금융위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여전히 자산의 투자 등급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달 유럽연합(EU) 금융 감독 당국인 유럽증권시장국(ESMA)은 무디스가 2011~2013년 EU 금융기관과 금융사 등 19곳의 신용등급을 평가할 때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는지 합리적인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며 총 124만유로(약 16억원)의 벌금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무디스 독일 지사는 75만유로, 영국 지사는 49만유로를 각각 벌금으로 내게 됐다. ESMA는 “투자자들이 투자를 결정할 때 신용평가사가 발표하는 신용등급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활용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신용평가사들은 높은 수준의 투명성을 유지해야 한다”며 “하지만 무디스가 투자자산을 평가할 때 사용한 기준에 대해 이해할 만한 방법론을 내놓지 못한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고 했다. 무디스는 ESMA의 결정을 수용했다. 다만 무디스는 “이번 결정은 회사가 내놓은 평가의 질이나 방법 자체를 문제 삼은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금융위기 후 신용평가사 개혁 실패

국제 신용평가사에 대한 불신이 나온 것은 EU에서만이 아니다. 이달 홍콩 고등법원은 지난해 홍콩증권선물위원회(SFC)가 무디스에 1100만홍콩달러의 벌금을 부과한 결정이 합당하다는 판결을 내놨다. 앞서 SFC는 무디스가 중국 기업의 신용등급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충분히 신뢰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 홍콩의 금융 규정을 위반했다며 제재를 결정했다. 무디스는 SFC의 제재가 부당하다며 항소했지만, 홍콩 고등법원은 SFC 손을 들어줬다.

2007년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세계적으로 금융기관에 대한 감시·감독이 강화됐지만 신용평가사에 대한 감독은 여전히 느슨하다. 세계 금융위기의 진앙인 미국은 2010년 ‘도드-프랭크법(Dodd-Frank Act·금융 개혁과 소비자보호법)’을 제정해 신용평가사를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기관으로 규정하고 신용평가사에 대한 감독을 강화했다. 신용평가사의 업무가 회계 감사와 증권사 기업 분석에 해당하는 만큼 법적 책임을 묻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이 법이 마련된 지 7년이 지난 지금도 신용평가사에 대한 개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유럽 금융 당국은 신용평가사들이 이해 관계 충돌을 조정하고 신용평가 방법론을 개선하도록 통제를 강화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성과를 내는 데는 권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ESMA가 신용평가사에 벌금을 부과한 사례는 이번 결정을 포함해 세 차례에 불과했고, 신용평가사가 내야 하는 벌금 금액도 매우 낮았다. 스티븐 마이주 ESMA 의장이 “금융 감독 당국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규정을 어긴 신용평가사에 부과하는 벌금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신용평가사들이 채택하고 있는 수익 모델 자체가 불투명한 신용평가와 이에 따른 불신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신용평가사가 실제보다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하도록 하는 유인이 수익 모델에 내재돼 있다는 것이다. 우선 신용평가사의 고객인 기업이 높은 신용등급을 원한다. 좋은 신용등급을 받는다는 것은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받는 것이고, 그래야 시장에서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출 수 있다. 기업이 신용평가사를 선택하면 신용평가사의 이익과 시장 점유율이 높아진다. 기업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신용평가가 이뤄지지 않으면 신용평가사의 이익이 줄어드는 구조다. 일부 투자자 역시 높은 신용등급을 원한다. 은행·보험사·연기금 등 보수적인 기관 투자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신용등급을 받은 자산에만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실제보다 높은 등급을 받은 자산에 투자하면 위기가 오기 전까지는 투자 수익률이 좋아 보이는 효과가 있다.


“신용평가사 수익 모델 근본적으로 바꿔야”

해럴드 콜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와 토마스 쿨리 스턴비즈니스스쿨 교수는 “과거처럼 증권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직접 신용평가사에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수익 모델을 바꾸는 것이 신용평가사의 느슨한 신용평가를 막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투기가 아니라 합리적인 투자에 나서는 투자자라면 신용평가사가 실제 가치보다 높은 등급을 부여하기보다 투자 위험을 정확히 평가하기 원한다는 것이다.

브루킹스연구소 역시 신용평가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경제학자 앨리스 리블린은 “기업이 신용평가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신용평가사가 배정되도록 해 기업이 좋은 신용등급을 주는 신용평가사를 선택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방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리블린은 또 “신용평가사 간 경쟁이 일어나도록 시장 구조를 개선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Plus Point

불신 키운 신평사 사업 구조

미국 뉴욕에 있는 무디스 본사. <사진 : 블룸버그>
미국 뉴욕에 있는 무디스 본사. <사진 : 블룸버그>

신용평가는 금융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투자 위험(리스크)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평가가 이뤄지면 생산적인 투자가 촉진되기 때문이다. 또 경험 많은 전문기관이 신뢰도 높은 방법을 사용해 자산을 평가하면 투자자가 직접 자산을 평가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다. 이 수요를 포착한 첫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1909년 존 무디에 의해 설립됐다. 무디스는 당시 철도 회사가 발행한 채권의 신용정보를 판매해 큰 수익을 얻었다. 이는 철도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초기 신용평가사의 수익 기반은 투자자들이 낸 수수료였다. 신용평가사들은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자산을 평가했고, 투자 자산의 가치와 위험 정보를 얻은 대가로 투자자들은 비용을 부담했다. 그런데 1970년대 신용평가사의 수익 모델이 바뀌기 시작했다. 투자자로부터 수수료를 받지 않는 대신 증권을 발행하는 기업으로부터 직접 돈을 받았다. 신용평가사의 수익 모델 변화는 시장을 크게 바꿔놓았다. 같은 기업을 평가하는 많은 신용평가사 간 신용등급 베끼기 관행이 나타나며 신용평가사들의 수익이 줄었다. 결국 신용평가사들은 증권을 발행하는 기업의 신용도를 높이 평가함으로써 수익을 얻는 대안을 채택했다. 기업들이 더 좋은 신용등급을 받을 수 있는 신용평가사를 찾아다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세계 금융위기의 단초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