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델리의 한 식료품 상점에 페이티엠 결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인도 델리의 한 식료품 상점에 페이티엠 결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 : 블룸버그>

300년 넘게 ‘루피(인도 화폐)’가 지배하던 인도 전역의 시장에서 ‘페이티엠’ ‘모비크위크’ 등 모바일 결제 업체 스티커가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다. 상점은 물론 과일이나 채소를 늘어놓고 파는 노점상 리어카에도 스티커가 붙어 있을 정도다. 물건을 사는 소비자 역시 값을 치를 때 지갑 대신 휴대전화를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금 대신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해 11월 화폐 유통의 86%를 차지하는 고액권(500루피·1000루피)에 대해 화폐개혁을 단행한 이후 인도 전자결제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화폐개혁, 전자결제 도입 시기 3년 앞당겨”

인도중앙은행에 따르면 올해 8월 인도 모바일 결제 거래 규모는 726억루피(약 1조2400억원)로, 300억루피 수준이던 화폐개혁 이전과 비교해 두 배로 증가했다. 전자결제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고 관련 인프라가 빠르게 구축된 덕분이다. 전자결제를 기반으로 장기적인 디지털 경제로 나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셈이다. 인도 1위 모바일 결제 업체인 페이티엠을 창업한 비자이 샤르마 페이티엠 최고경영자(CEO)는 “화폐개혁의 가장 큰 성과는 많은 인도 국민이 모바일 결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이해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 전자결제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매우 큰 것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은 2020년이 되면 인도에서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결제 규모가 5000억달러(약 559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도 전자결제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모바일 결제 기업도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2010년 설립된 인도 최대 모바일 결제 스타트업 페이티엠이다. 모디 총리가 화폐개혁을 발표한 직후 신문에 “독립 이후 금융 부문에서 가장 용감하고 중대한 결정이 발표됐다”는 내용의 광고를 실어 자축한 기업이다. 중국 알리바바와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페이티엠은 2억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화폐개혁 발표 직전보다 사용자가 7000만~8000만명 정도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페이티엠의 기업 가치는 70억달러(약 7조8000억원) 이상으로 평가된다. 인텔과 대만 반도체 기업 미디어텍도 페이티엠에 투자하고 있다.

페이티엠은 간편한 결제 방식을 도입해 화폐개혁으로 열린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상인들은 스마트폰이나 스캐너 등 별도의 결제 기기가 없어도 점포에 상점 코드 스티커만 붙여놓으면 페이티엠 결제를 이용할 수 있다. 물건을 산 소비자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코드를 스캔하면 연결된 계좌에서 금액이 지불된다. 상인은 문자 메시지로 결제를 확인한다. 페이티엠은 또 전자결제에 익숙하지 않은 전국 소규모 상점에 1만명의 전문 인력을 보내 상인들을 교육하고 이들이 모바일 결제를 채택하도록 했다.


인도 정부는 지난해 11월 기존 500루피, 1000루피 사용을 금지하고 새로운 500루피, 2000루피 화폐를 유통하는 화폐개혁을 발표했다. <사진 : 블룸버그>
인도 정부는 지난해 11월 기존 500루피, 1000루피 사용을 금지하고 새로운 500루피, 2000루피 화폐를 유통하는 화폐개혁을 발표했다. <사진 : 블룸버그>

선진국 시장 노리는 인도 1위 업체 페이티엠

인도 전역에서 500만개 상점이 페이티엠 결제 방식을 채택했고, 모바일 결제 사용자 수는 2억명을 훌쩍 넘었다. 페이티엠은 2020년까지 5억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마두르 디오라 페이티엠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우리는 신용카드가 아니라 현금과 경쟁한다”고 말했다. 비상장사인 페이티엠은 실적을 공개하지 않지만,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기업 규모를 키우기 위한 투자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이티엠은 지난 2년 동안 기업 인수에 6억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모비크위크·프리차지 등 경쟁사보다 시장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앞으로 페이티엠은 인도 밖으로 더 공격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샤르마 CEO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페이티엠이 현재 인도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도전 과제는 남아있다. 삼성페이가 인도 시장에 진출했고, 인도에서 2억명의 사용자를 확보한 글로벌 메신저 왓츠앱도 결제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인도 정부가 내놓은 전자결제 서비스도 페이티엠의 경쟁자다. 인도결제공사(NPC)는 지난해 화폐개혁이 단행되기에 앞서 전자결제 플랫폼 ‘UPI(Unified Payments Interface)’ 서비스를 시작했다. 

페이티엠은 경쟁 시스템의 등장에 대해 새로운 서비스 제공으로 대응하고 있다. 페이티엠은 앱을 통해 사진과 비디오 파일을 공유할 수 있는 메시지 기능을 공개했다. 송금과 결제 서비스에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얹은 것이다. 페이티엠은 계좌에 돈을 예치한 사용자에게 이자를 지급할 수 있도록 머니마켓펀드(MMF)를 운용하는 라이선스를 얻는 작업도 준비하고 있다.


Plus Point

페이티엠 뒤쫓는 ‘모비크위크’

페이티엠보다 앞선 2009년 설립된 모비크위크는 인도 2위 모바일 결제 업체다. 지난해 11월 3500만명이었던 이용자 수는 1년 만에 1억5000만명으로 증가했다. 페이티엠과 함께 인도 정부의 화폐개혁 결정에 반사이익을 얻은 업체로 꼽힌다. 모비크위크 공동 창업자 비핀 프릿 싱은 “2016년 화폐개혁은 인도 경제에 디지털 화폐가 채택되는 시기를 적어도 3년 이상 앞당겼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벤처캐피털 세쿼이아캐피털을 비롯해 시스코·아메리칸익스프레스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올해 블랙록으로부터 1억달러의 자금을 추가로 유치하면서 기업 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모비크위크는 일반 소비자를 위한 전자결제 서비스보다 대형 회사를 위한 맞춤형 결제 시스템을 제공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구글이 최근 인도 모바일 결제 시장에 뛰어들면서 파트너로 선택한 것도 모비크위크였다. 구글은 UPI와 모비크위크 플랫폼을 통합한 서비스 ‘테즈(Tez)’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