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우정저축은행이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된 9월 28일, 류자진(呂家進) 은행장(왼쪽)이 상장 기념식에 참석했다. 우정저축은행 상장은 중국국제금융(CICC)이 UBS와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IB와 함께 주관했다. <사진 : 블룸버그>
중국우정저축은행이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된 9월 28일, 류자진(呂家進) 은행장(왼쪽)이 상장 기념식에 참석했다. 우정저축은행 상장은 중국국제금융(CICC)이 UBS와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IB와 함께 주관했다. <사진 : 블룸버그>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 UBS 등 세계적인 투자은행(IB)들이 아시아에서 인력 감축에 나섰다. 이유는 물론 실적 악화다. 그런데 아시아 금융 허브 홍콩의 올해 기업공개(IPO) 규모는 세계에서 가장 컸다. 그런데도 글로벌 금융회사가 아시아에서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중국계 증권회사가 이들을 제치고 일감을 따냈기 때문이다.

외신에 따르면, 골드만삭스그룹이 홍콩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 투자은행 인력의 25% 이상을 정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골드만삭스는 아시아 지역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왔다. 특히 헨리 폴슨 전 CEO는 중국 진출에 공을 많이 들였었다. 하지만 올 들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에서 골드만삭스의 증권 발행 순위는 지난해 2위에서 11위로 추락했고 증권 발행 규모는 29% 줄었다.

수수료 수입도 줄었다. 아시아 지역 투자은행 중 골드만삭스는 2014년과 2015년에 가장 많은 증권 발행 수수료 수입을 올렸다. 그러나 올해는 9월 25일까지 3억1900만달러를 버는 데 그쳤고 순위도 4위로 떨어졌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4억77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골드만삭스, 아시아 인력 25% 감축

다른 투자은행도 아시아 지역에서 경영 부진을 겪고 있어 인력을 줄이고 있다. 스위스 UBS AG는 지난 7월 아시아 지역 투자 담당 공동대표 자리를 없앴다. 이 은행은 아시아에서 증권 업무가 줄어 2분기 세전 수익이 48% 줄었다. 일본 노무라홀딩스와 호주 맥쿼리그룹도 올해 구조조정으로 인력을 감축했다.

글로벌 투자은행의 실적이 악화됐지만, 올해 홍콩에서 진행된 기업공개 금액은 가장 많았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회사의 기업공개 금액은 올해 9월까지 169억2000만달러로, 전 세계 기업공개 실적의 22.1%를 차지했다. 2위는 상하이증권거래소(82억2000만달러), 3위는 뉴욕증권거래소(70억9000만달러)가 차지했다.

홍콩과 상하이에 기업공개가 몰린 것은 중국 본토 기업 상장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9월 28일 홍콩증시에 상장한 중국우정저축은행은 기업공개를 통해 74억달러를 끌어모았다. 이는 2014년 알리바바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후 최대 규모다.

홍콩 최대 부호 리카싱(李嘉誠) 회장과 그의 아들이 중국우정저축은행 H주의 11.6%를 사들였고, 조지 소로스도 투자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인기도 많았다. 홍콩증권협회 베니 마우 회장은 “중국이 올해 불경기를 겪고 해외 시장도 좋지 않지만 많은 중국 본토 기업이 계속 자금을 모으길 원한다”고 말했다.

비록 홍콩 증시의 기업공개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컸지만, 지난해보다는 60% 감소한 수치다. 하지만 골드만삭스 등의 실적이 악화한 것은 이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의 기업이 예전처럼 글로벌 투자은행 대신 중국의 증권사를 통해 기업공개를 하고 있는 게 주된 이유다. 올해 홍콩 증시에서 진행된 기업공개를 보면, 규모가 큰 10건 중 7건이 중국 본토 증권사가 주관했다.

금융정보 제공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일본과 호주를 제외한 아시아에서 인수합병, 자본 조달 등을 통해 투자은행이 벌어들인 수수료 수익의 60%가 중국 증권사 몫이었다. 현재 아시아 지역 투자은행의 전체 실적 상위 5위까지는 모두 중국 증권사고 상위 10개 회사 중 7개가 역시 중국 증권사다.


中 증권사, 홍콩에서 글로벌 IB 제처

투자은행 업무로 벌어들인 수익은 중신건투증권(中信建投證券·CSC)과 중신증권(中信證券·CITIC)이 공동 1위였고, 3위는 궈타이쥔안(國泰君安), 4위는 광파증권(廣發證券·CF), 5위는 중국국제금융(中國國際金融·CICC)이 차지했다. 2년 전인 2014년까지만 해도 골드만삭스를 선두로 도이체방크, 크레디트스위스, 시티그룹, JP모건체이스가 상위 5위권을 형성하고 있던 시장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골드만삭스 아시아 실적이 곤두박질치는 것을 설명하면서 “중국 투자은행이 월스트리트의 점심을 먹어치우고 있다”고 묘사했다.

투자은행 업무의 이익률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게 문제라는 분석도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골드만삭스의 인력 감축은 투자은행이 저(低)마진 사업이 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20년 전에 중국 본토 기업이 홍콩이나 미국에 상장하려면 어쩔 수 없이 외국의 투자은행을 이용해야 했지만, 1997년 차이나텔레콤이 상장할 때 중국 증권사가 골드만삭스와 공동 주관사로 참가한 것을 계기로 상황이 달라졌다. 게다가 세계의 투자자들도 중국을 예전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됐고 중국 기업을 연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때문에 투자은행 간에 일감을 따내기 위한 경쟁은 더 심해졌고 이익은 줄어들었다.

올해 상장사 중 최대 규모인 중국우정저축은행 기업공개엔 총 26개 회사가 공동 주관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중 중국 금융회사는 중국국제금융, 초상증권(招商證券), 교통은행(交通銀行) 등 16개사였고 UBS와 골드만삭스 등 외국계 투자은행은 10개사였다.

투자은행의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이 회사에서 해고된 인력들은 재앙과도 같은 상황에 맞닥뜨릴 전망이다. 골드만삭스에서 해고된 인력이 중국 본토의 은행이나 투자자문사 등에 취업할 경우 1년에 수백만달러의 연봉을 받던 인재라도 수십만달러를 버는 데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