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시 ‘500스타트업’ 사무실에 입주한 이탈리아 출신의 클라우드 교육 서비스 기업 ‘클라우드 아카데미’ 창업 멤버들이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 : 조선일보 이인묵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시 ‘500스타트업’ 사무실에 입주한 이탈리아 출신의 클라우드 교육 서비스 기업 ‘클라우드 아카데미’ 창업 멤버들이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 : 조선일보 이인묵 기자>

초저금리 지속으로 은행권 대출에 대한 부담이 작아지면서 미국 기업의 부채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기술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에 따라 초저금리와 돈풀기로 지속해온 경제 회복이 한계에 직면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 모바일 앱 검색엔진 퀵시(Quixey)를 운영하는 같은 이름의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은 구글 본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본사를 두고 있다. ‘문장 검색’이 가능한 검색엔진을 표방해 주목받으며 지난해 초 중국 알리바바와 일본 소프트뱅크 등으로부터 6000만달러(약 668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당시 기업 가치는 6억달러였다.

그러나 퀵시는 얼마 전 3000만달러(334억원)를 금융권에서 대출받았다. 토머 카간 퀵시 창업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자금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 유치에 더해 대출을 함께 받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기대만큼 실적이 따라오지 않는 상황에서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 대출받은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미국의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리코드(Recode)는 퀵시가 2015년 연말 성수기 매출 목표 달성에 실패하면서 최고운영책임자(COO)와 최고기술책임자(CTO)를 교체했다고 지난 2월 보도했다.


우버, 고금리로 1조2800억원 대출받아

올해 상반기에만 무려 12억7000만달러(약 1조4000억원)의 적자를 낸 차량 공유업체 우버는 지난 7월 레버리지론 형태의 고금리 대출로 11억5000만달러(약 1조28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로부터 35억달러의 자금을 투자받은 후 한달 만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우버가 대출 자금에 대해 5%의 높은 금리를 지급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우버는 공들였던 중국 시장에서 현지 업체 디디추싱(滴滴出行)에 완패하며 쓴맛을 봤지만 700억달러에 육박하는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주된 동력은 빚이 아닌 투자다. 거물 벤처 투자자들이 제2의 구글을 찾아 큰 몫을 챙기기 위해 밤낮없이 동분서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투자를 받을 수 있는 행운은 극히 일부의 몫이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벤처 투자 열풍이 가라앉기 시작한 것도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부채 증가를 부채질하고 있다.


IT기업 대출 4년간 20% 증가

스타트업 대출·지원 전문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전체 대출 자금 대비 초기 스타트업 대출금 비율은 2001년 35%에 달했지만 현재는 6%로 크게 줄었다. 캘리포니아은행의 자회사인 SVB는 벤처캐피털에 자금과 신용을 지원하는 역할도 겸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레버리지론 시장에서 지난 4년간 기술 관련 기업 대출이 20% 늘었다고 최근 보도했다. 전체 평균 증가율보다 훨씬 큰 폭의 증가다. 소프트웨어 기업의 수익 대비 부채 비율은 금융위기 이전 4.2배에서 5.3배로 크게 늘었다.

에릭 그로스 바클레이즈캐피털 채권 투자 전략가는 관련 보고서에서 “차입 자금의 상당 부분은 인수합병(M&A) 등 위험성이 높은 기업 활동에 사용된다”며 “이를 통해 수익이 개선된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크레디리요네증권 아시아(CLSA)는 최근 보고서에서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신용평가 대상 기업의 부채 규모가 금융위기 발생 직전인 2007년 대비 80%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또 보고서는 미국 기업 부채의 증가 속도는 경제 성장률의 5배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이전까지 미국 기업들이 세계경기 불확실성 속에 투자를 줄이고 현금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애플과 구글 등 초우량 기업 이야기일 뿐 대다수 기업은 부채가 급속히 늘면서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비(非)금융권 기업의 지난해 말 기준 현금(현금성 자산 포함) 보유 규모는 사상 최고치인 1조7000억달러(약 1902조원)에 달했다. 기업별로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알파벳(구글의 모회사), 시스코, 오라클순으로 상위 5개 기업이 모두 대형 정보기술(IT) 업체였다. 이들 5개 기업의 현금 보유액만 5040억달러(약 564조원)로 미국 전체 기업 현금 보유액의 30%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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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리지론(leveraged loan) 금융회사가 이미 상당한 부채를 안고 있는 기업들에 해주는 추가 대출을 말한다. 대체로 투자 등급 이하 기업들이 리파이낸싱이나 인수합병(M&A), 운영자금 확보 목적으로 자금이 필요할 때 받는다. 이 대출은 위험이 크기 때문에 금리가 높다. 은행들은 이 대출을 채권으로 만들어 다른 금융회사나 투자자에게 파는 형태로 대출 위험을 분산한다.

Plus Point

美 신용카드 빚, 경제 뇌관 되나

늘어난 빚으로 고민하는 건 기업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신용카드 빚이 최근 눈덩이처럼 커져 경기 회복에 암초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미국 신용카드 빚은 직전 3개월간 약 20조원 늘어나 금융위기 발발 직전인 2007년 이후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신용카드 빚의 가파른 증가세는 최근 미국 은행들이 발표한 실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웰스파고의 올해 2분기 신용카드 대출은 전년 대비 10% 증가했고, 시티그룹과 선트러스트의 대출은 같은 기간 각각 16%, 26% 급증했다. 미국 통계청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자료 등을 종합해보면 신용카드 빚을 지고 있는 가구의 부채 평균은 1만6048달러(약 1780만원)로 3년 새 10% 늘었다. 이처럼 신용카드 빚이 급증한 배경에는 은행들의 대출 경쟁이 있다. 초저금리 장기화로 수익이 감소한 은행들이 고객 확보를 위해 항공사 마일리지와 캐시백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며 경쟁적으로 신용카드 사용을 부채질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대출 사업은 은행 사업 중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꼽힌다. 현재 미국의 신용카드 대출 이자는 평균 연 12~14%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