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정례 회의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하는 제닛 옐런 FRB 의장의 발언을 시청하는 미국 금융회사 직원들. <사진 : 블룸버그>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정례 회의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하는 제닛 옐런 FRB 의장의 발언을 시청하는 미국 금융회사 직원들. <사진 : 블룸버그>

‘세계경제 사령부’인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내놓는 각종 문서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것은 1년에 4번 나오는 경제전망보고서(SEP)다. 2012년 도입된 SEP는 FRB의 의사소통 강화 노력을 보여주는 상징 같은 존재다. 하지만 SEP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FRB의 공식적인 설명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SEP 도입 당시 FRB를 이끌었던 벤 버냉키 전 의장(현 브루킹스연구소 상임연구원)이 11월 말 자신의 블로그에서 SEP 독해법을 내놨다.

SEP는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전, 회의에 참석하는 재닛 옐런 FRB 의장을 비롯한 FOMC 이사들과 12개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이 연방 기금금리 전망을 비롯해 경제성장률·실업률·근원 인플레이션 등 주요 경제지표 예측치를 내놓으면 이를 취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미국 금리 결정에 참여하는 이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자료이기 때문에 금융시장은 SEP를 FOMC 의사록이나 베이지북보다 더 중요한 자료로 간주한다.

SEP 안에서 가장 관심을 많이 받는 내용은 셋째 쪽의 ‘점 도표(dot chart)’다. 점 도표는 FOMC 이사와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이 내놓은 당해 말부터 2년 뒤까지 3개 연도의 금리와 그이후의 장기적인 기준금리 전망치를 한 명당 점 하나를 찍어 표시한 그림이다. FOMC 각 구성원의 금리 전망과 성향을 압축해 보여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 세계 금융시장은 FRB 금리 정책을 분석할 때 늘 점 도표를 주요 판단 근거로 사용한다.


버냉키의 해설 1 |
SEP는 통화정책 변화 감안한 전망

버냉키 전 의장은 먼저 SEP가 FRB의 통화정책 목표는 아니라고 말했다. 점 도표에 표시된 미래 기준금리 전망치대로 FRB가 금리를 올리거나 낮추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주요 경제 지표 예상이 그저 학계나 금융회사 등이 내놓는 것과 같은 중립적인 전망치라는 것도 아니다.

대신 버냉키 전 전의장은 “FOMC 참가자들이 내놓는 향후 경제 전망은 각자가 ‘바람직한 통화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FRB가 움직였을 때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각 FRB가 미래에 특정 통화정책을 펼치는 것까지 감안한 ‘조건부 전망’이라는 것이다. 가령 현재 제로 금리 정책을 유지할 경우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는 ‘매파’ FOMC 이사가 있을 경우 그가 SEP에 반영시킬 전망은 저금리-인플레이션의 조합이 아닌, 현재보다 높은 기준금리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버냉키의 해설 2 |
가상 여론조사로 받아들여라

정책 목표를 엿볼 수 없고 객관적 경제 전망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SEP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해 버냉키 전 의장은 “SEP는 가상 여론조사(straw test)”라고 말했다. “FOMC는 참가자들의 합의가 중요한 기구”라며 “점 도표에서 나타난 FOMC 참가자들의 판단은 FOMC에서 어떤 논의가 오갈지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물론 SEP에 나타난 FRB 이사들과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의 예상이 그대로 기준 금리 결정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6월 SEP에 나타난 2016년 말 기준금리 전망치는 9월 SEP보다 0.5%포인트 가량 높았다. 이렇게 기준금리 전망치가 낮아졌지만 FOMC가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내려간 것은 아니라는게 버냉키 전 의장의 설명이다. 오히려 소폭 인상에 군불를 지피는 FRB 관계자들이 늘고 있다.

또 장기 금리 전망치는 2015년에는 연 4%가 넘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연 2.5~3% 정도가 많다. 그동안 FOMC 참가자들의 판단이 큰 폭으로 바뀐 것이다.


버냉키의 해설 3 |
FRB의 장기 목표를 알려준다

FRB는 물가상승률, 실업률 등 장기 목표가 어떤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ECB(유럽중앙은행)·일본은행·한국은행 등 다른 나라 중앙은행이 물가상승률 목표치 등을 공표하고 있는 것과 다르다. FRB는 2012년 딱 한 번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공개했지만, 이후 비공개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버냉키 전 의장은 SEP가 FRB의 장기 목표를 알려주는 유용한 도구라고 설명했다. 그는 “실질적으로 FRB는 SEP를 통해 모든 FOMC 참가자들의 인플레이션 목표가 연 2%임을 효과적으로 밝혔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SEP에 제시된 실업률과 경제성장률도 자연실업률(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 최대한 낮출 수 있는 실업률 수준)과 잠재성장률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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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 인플레이션(core inflation) 식량과 석유 제품 가격을 제외한 나머지 일반 제품과 용역의 물가상승률. 통화정책의 효과를 반영한 물가 수준을 알기위해 중앙은행이 사용한다.
FOMC 의사록 1년에 8번 FRB가 미국 기준금리를 결정하기 위해 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의사록. FRB 이사회 사무국의 경제전망, FOMC위원들의 경제전망. 통화정책 의결 투표 결과 등이 공개된다.
베이지북(beige book) FRB가 1년에 8번 발간하는 경제동향보고서. 표지 색깔을 따서 이름이 붙었다.

Plus Point

대외 소통 강화 위해 SEP 발간

FRB는 민간의 통화정책 예측 가능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난 20여년간 여러 장치를 마련해왔다.

원래 FRB는 2년에 한 번 하원에 통화정책 보고서를 제출하고, FRB 의장이 하원의원들에게 이를 설명하는 게 대외 소통의 전부였다. 그러던 것이 1994년 기준금리 목표치를 제시하고, FOMC 의사록에 통화 정책 변화의 근거를 제시하도록 하면서 금융 시장과의 소통이 본격화됐다. 2002년에는 각 FOMC 참가자들의 표결 내용을 공표하도록 했고, 2003년에는 향후 목표 금리를 제시하도록 했다. 2007년에는 1년에 4번 FOMC 의사록에 수치화된 형태로 향후 경제 전망을 담도록 했다. 지금의 SEP 모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FRB는 대외 소통 창구를 대폭 강화했다. 2011년부터 FRB 의장이 직접 경제 전망과 관련된 기자회견을 하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전 FRB 의장은 대중 앞에 좀처럼 나서지 않았고 모호한 발언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버냉키 전 의장이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 방침을 알리면서 직접적인 소통이 ‘뉴 노멀’이 됐다. 2012년부터 발간된 SEP도 이를 위한 주된 수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