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인도 델리의 식료품점에서 남성 소비자가 상품을 사고 페이티엠으로 결제하고 있다. 인도에선 모디 총리의 화폐개혁 이후 페이티엠을 이용한 전자결제가 크게 늘었다. <사진 : 블룸버그>
2016년 11월 인도 델리의 식료품점에서 남성 소비자가 상품을 사고 페이티엠으로 결제하고 있다.
인도에선 모디 총리의 화폐개혁 이후 페이티엠을 이용한 전자결제가 크게 늘었다. <사진 : 블룸버그>

인도에서 모바일 결제가 급성장하고 있다.

‘검은돈’을 근절하기 위해 고액권 사용을 중지한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화폐개혁이 불러온 나비효과다. 은행 계좌를 가진 인도 국민은 절반에 불과하고, 상거래의 98%가 현금으로 이뤄질 정도로 인도인들은 현금 거래를 선호해 왔다. 이 점을 감안하면 모바일 결제의 폭발적 성장은 놀라운 변화다.

인도 결제 문화를 바꾸고 있는 기업은 모바일 결제 시장 선도 업체 페이티엠(Paytm)이다. 페이티엠의 모회사는 인도 전자상거래 업체 ‘원97커뮤니케이션즈(이하 원97)’이고, 원97의 최대주주는 마윈(馬雲) 회장이 이끄는 중국 거대 IT 기업 알리바바의 금융 계열사인 앤트파이낸셜(마이진푸·蟻金服)이다. 이 회사는 모바일 결제 시스템 ‘알리페이’를 서비스하고 있다. 페이티엠이 화폐개혁을 틈타 인도에서 모바일 결제 문화를 퍼트린 데엔 알리페이의 기술력이 큰 보탬이 됐다. 화폐개혁 부작용으로 위기에 처한 모디 총리를 알리페이가 구해준 셈이다.

모디 총리는 2016년 11월 국내총생산(GDP)의 20~3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세수 확대를 위해 화폐개혁을 실시했다. 500루피(약 8900원)와 1000루피(약 1만7800원)의 고액권 지폐 사용을 중단하고, 500루피와 2000루피 신권으로 교환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이 조치로 시중에 유통되던 화폐의 86%를 사용할 수 없게 됐다.


현금 거래 선호 印 문화 바꾼 페이티엠

화폐개혁은 인도 경제에 혼란을 일으켰다. 특히 은행 계좌가 없고 현금 사용이 많은 빈곤층과 중산층이 큰 타격을 받았다. 일용직 근로자는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해 생필품 구매를 줄였다. 은행에서 신권을 교환하는 데 3~4시간 이상 걸려 서민들은 새 화폐를 손에 넣기도 힘들다. 하루 생업을 포기하고 은행에 줄을 서기도 한다.

이 때문에 모디 총리는 정치적으로 타격을 받았다. 제1야당 소속으로 직전 총리였던 만모한 싱 상원의원은 “화폐개혁 목표(검은돈 근절)에는 동의하지만, 이번 조치는 사실상 합법적이고 조직적인 약탈”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이번 조치로 GDP가 최소한 2%는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야당은 화폐개혁에 반대하는 전국 규모 시위를 했다.


中 알리페이 기술 도입해 빠르게 확산

중국 상하이의 한 노점상.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로 결제할 수 있게 바코드가 붙어 있다(사진 위).인도의 상점에서 페이티엠 앱과 QR코드를 이용해 결제하는 장면. <사진 : 손덕호 기자, 페이티엠>
중국 상하이의 한 노점상.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로 결제할 수 있게 바코드가 붙어 있다(사진 위).
인도의 상점에서 페이티엠 앱과 QR코드를 이용해 결제하는 장면. <사진 : 손덕호 기자, 페이티엠>

정치적 위기에 처한 모디 총리에게 희망을 준 것이 페이티엠이다. 서민들이 지갑에 현금을 갖고 있지 않아도 생필품을 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현재 페이티엠으로 하루에 결제되는 거래는 650만건이다. 화폐개혁 이후 1달 반 만에 3배로 급증했다. 인도 PTI통신에 따르면 페이티엠 거래액은 1일 평균 12억루피(약 212억7600만원)다. 페이티엠은 인도 인구 13억명 중 1억5000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원97의 비자이 샤르마 CEO가 지금을 ‘인생에 한 번 오는 기회’로 보고 1만1000명인 직원을 3배로 늘릴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페이티엠으로 결제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페이티엠에 가맹된 상점에서 물건을 고르고 대금을 지불하기에 앞서 계산대에 놓인 페이티엠 QR코드를 고객 스마트폰의 페이티엠 앱으로 읽는다. 페이티엠이 상점 정보를 확인하면, 고객이 지불해야 할 금액을 페이티엠 앱에 입력한다. ‘지불(pay)’ 버튼을 누르면 상점 주인의 스마트폰에 대금이 들어왔다는 문자가 온다. 그러면 구매한 물건을 갖고 나가면 된다.

페이티엠은 QR코드를 이용해 결제할 수 있는 방법을 2015년 10월 도입했다. 중국의 알리페이와 같은 방법으로, 페이티엠과 알리페이가 맺은 전략적 제휴의 결과물이다. 중국에선 알리페이로 백화점과 고급 식당은 물론, 노점상과 지하철 자판기, 택시에서도 결제할 수 있다. 신용카드는 받지 않아도 알리페이로는 결제할 수 있는 상점이 많다.

앤트파이낸셜은 2015년 3월 페이티엠에 5억7500만달러를 투자해 25%의 지분을 확보하고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같은 해 9월엔 6억8000만달러를 더 투자해 지분 40%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인도의 영자 경제 일간지 이코노믹타임스는 2016년 1월 “알리페이는 페이티엠에 전자결제 기술과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제공해 페이티엠이 더 빨리 성장하고 고객이 뛰어난 결제 경험을 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키란 바시레디 페이티엠 수석부사장은 “우유를 사고 택시와 영화 티켓을 예약하며, 공과금을 전자결제로 처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 경제지 차이신(財新)은 원97의 샤르마 CEO가 알리바바 본사가 있는 중국 항저우(杭州)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QR코드 기술을 이용한 알리페이의 결제 노하우를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샤르마 CEO는 “중국을 방문하기 전까지 페이티엠의 누구도 QR코드를 이용한 결제가 인도에서 널리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모디 총리도 페이티엠과 같은 전자결제 서비스 보급을 장려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전자결제를 한 판매자와 소비자를 대상으로 2016년 12월 25일부터 100일간 매일 1만5000명을 추첨해 1000루피씩 지급한다. 또 1주일에 한 번씩 소비자 7000명에게 최대 10만루피의 상금을 주고, 전자결제로 물건을 판 상인을 대상으로 추첨해 최대 5만루피의 상금을 지급한다. 100일이 끝나는 2017년 4월 14일에는 1등 당첨자를 추첨해 1000만루피를 줄 예정이다.

모디 총리는 이 제도를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면서 “현금 없고 부패 없는 인도로 이행하려는 시도”라고 했다. 앞서 인도 재무부도 신용카드와 전자결제를 이용해 주유비를 결제하면 0.75%를 할인해주는 등 디지털 거래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모디 총리의 화폐개혁으로 디지털 거래가 증가하고 부패 청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2016년 11월 인도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기존 고액지폐 유통을 중단한 것은 ‘지하경제’에서 ‘투명 경제’로 이행하는 중요한 조치”라며 “인도는 수년 내에 가장 디지털화한 경제권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