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금융사들이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지어지고 있는 고층 빌딩의 모습. <사진 : 블룸버그>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금융사들이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지어지고 있는 고층 빌딩의 모습. <사진 : 블룸버그>

지난 7년 동안 이어진 고급 주택 붐이 주춤하면서 미국 주요 도시의 고급 주택을 보유한 임대인들이 임대료 할인에 나서고 있다. 뉴욕에서 건설 프로젝트를 완료한 일부 개발자들은 3개월간 임대료를 면제하며 임대인을 모집하고 있고, 휴스턴에서는 보증금을 받지 않는 사례도 나왔다. 미국 아파트 시장조사업체 ‘MPF리서치’ 제이 파슨스 부사장은 “올해 도시 지역 임대료는 거의 상승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 모든 지역에서 예상되는 이런 환경은 임대인들에게 매우 도전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택 가격 둔화는 수요 감소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과잉 공급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정책 결정자들 부동산 거품 우려 커

미국 주요 도시에서 부동산 건설 과열 양상이 포착되면서 개발 사업에 자금을 댄 금융사들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하며 미국 주택 시장이 붕괴한 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자산 버블 논쟁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특히 미국 금융 당국은 부동산 개발 사업 대출 규모가 큰 금융사들이 자산 시장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최근 대형 은행들에 상업용부동산펀드(CRE) 가격이 35% 하락하고 임대 부동산 가치가 이보다 더 급락할 경우를 가정한 대응안을 마련하라고 명령했다. 자산 가격 하락이 은행 건전성과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점검하는 것은 매년 이뤄지는 은행 ‘스트레스 테스트’에 포함돼 있지만, 미국 부동산 시장 거품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을 반영해 올해만큼은 이 부분에 더 집중한 관리와 대비를 주문한 것이다.

미국 대형 은행 중 다가구 주택 대출 규모가 가장 큰 곳은 JP모건으로, 2016년 4분기 기준 660억달러를 넘었다. 뉴욕커뮤니티뱅코프와 웰스파고, 캐피털원, 산탄데르US, 뱅크오브아메리카가 그 뒤를 이었다.

재닛 옐런 미 연준 의장을 비롯한 정책 결정자들은 부동산 가격 하락이 금융 부문에 미칠 부정적인 연쇄 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정책 결정자들이 부동산 시장에 주목하는 이유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환경에 힘입어 가파르게 상승한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끼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에릭 로젠그렌 미 보스턴 연준 총재는 “주요 도시에서 고급 주택 건설 붐이 지속되면서 가격이 크게 올랐다”며 부동산 시장 과열을 경계했다. 2010년 이후 미국 주택 임대료는 26% 상승했는데, 이는 물가상승률과 소득증가율보다 더 높은 수준이었다. 그런데 2016년 들어 임대료 상승폭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고급 주택 공급 물량이 쏟아지면서 공실률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4분기 미국 주택 시장에서 신규 임대가 이뤄진 주택은 5만 채였는데, 새로 지어진 주택 임대는 8만8000채로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2017년 이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전역에서 37만8000채의 신규 주택이 건설될 예정이다.

이런 추세는 CRE 가격에서도 나타난다. CRE 가격은 부동산 시장 상황을 진단하는 좋은 예측 지표로 쓰인다.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당시 40% 넘게 폭락했던 CRE 가격은 2009년 바닥을 친 이후 최근까지 거의 두 배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그런데 올해 3월부터 CRE 가격 상승세가 꺾이면서 반등하지 않고 있다. 케빈 화이트 도이치자산운용 투자전략본부장은 “문제를 일으키는 건설 붐이 나타났다”며 “우리는 이 붐을 주시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에릭 로젠그렌 미 보스턴 연준은행 총재는 최근 고급주택 가격이 지나치게 상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 : 블룸버그>
에릭 로젠그렌 미 보스턴 연준은행 총재는 최근 고급주택 가격이 지나치게 상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 : 블룸버그>

“부동산 대출 규제 강화, 은행 신용에 긍정적”

상승하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 위험은 금융 부문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아파트 리서치 전문업체 ‘액시오메트릭스’에 따르면 은행이 부동산 개발에 지원한 대출 자금은 2011년 이후 대략 150만가구의 주택을 공급하는 데 사용됐다. 은행이 내준 거대한 대출 자금이 결과적으로 부동산 시장 충격에 대한 은행 건전성을 더 취약하게 만든 셈이다. 부동산 정보 업체 ‘코스타’에 따르면 미국 은행 자산 중 주택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09년 16%에서 2010년 15%로 하락했지만, 2012년부터 계속 증가해 2016년 23%까지 올랐다. 또 지난해 말 미국 은행과 기타 예치 금융사들이 연장한 CRE 대출 규모는 2조달러에 이른다.

미 연준은 또 소규모 금융사에 대한 감시도 강화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 상황이 나빠질 경우 건설 부문에 대출 비중이 큰 소규모 은행이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 코네티컷주 리버티은행의 챈들러 하워드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부동산 부문에 대한 고위험 대출 태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며 “다른 은행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만기가 계속 늘어나는 등 부실 징후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사들이 부동산 자산에 대출을 집중한 것과 개발자들이 대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금융 당국의 염려는 매우 합리적이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금융 당국도 위험성을 경고하자 일부 은행은 부동산 시장에 풀린 자금 회수에 나섰다. 대출분석기관 ‘크레디파이’에 따르면 뉴욕의 CRE 대출은 지난해 17% 감소해 820억달러로 줄었다. 뉴욕에서 가장 큰 CRE 대부 업체 뉴욕커뮤니티뱅코프는 관련 대출 규모를 절반 이상 축소했다. 미국 연준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은행들은 지난 1분기 이전보다 대출 기준을 강화했다. 앞으로 금융사의 대출 태도는 이전보다 보수적으로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은행들이 CRE 대출 기준을 강화하는 것은 은행 신용도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은행의 대출 기준이 강화되면서 개발 자금에서 대출 비중이 줄어들고 대출 비용도 늘어나면 과열 양상을 보이던 건설 붐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은행들의 대출 기준이 강화되면서 2018년 말 정도가 되면 미국 부동산 건설 붐이 누그러질 것”이라고 말했다.